뼈의 방 - 법의인류학자가 마주한 죽음 너머의 진실
리옌첸 지음, 정세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법의(法醫)인류학자(人類學者)에게는 놀이동산이라고 부를 만큼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이곳을 '뼈의 방(The Bone Room)'이라 부른다. (p8)

 

제목이 대체 무슨 뜻일까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서문에서 저런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 누구나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고, 그 전문 분야의 일을 할 때에는 마치 놀이를 하듯, 일하는 보람이 마음껏 생기게끔 신명 나게 일을 해야 마땅하겠습니다. 저자 리옌첸 박사, 그리고 이 책에 추천사를 쓴 이수정 경기대 교수 같은 분들은 아마 그런 기분으로 자신의 일을 하는 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보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사람의 뼈, 그것도 대부분은 훼손되거나 부검 과정을 통해 들여다 봐야 하는 변사체의 뼈를 다루는 직업군에서 "놀이동산"을 거론한다는 건 아무래도 일반인의 감정과는 거리가 좀 멀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이런 특출한 재능을 지닌 전문가들이, 남다른 영감을 받아 가며 자신의 업무에 몰입하는 과정이 있어야 그 숱한 미제 사건들이 해결되겠죠. 또, 이런 분들의 비범한 "놀이"를 거쳐야, 악랄한 지능범들이 그 소굴에서 안온히 쉬지 못하고 결국은 끌려나와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법의학이라고 하지 뒤에 인류학을 붙이지는 않는데, 저자께서는 홍콩 중문대에서 인류학으로 석사를 한 후, 영국 레스터 대학에서 "법의인류학"으로 박사를 마쳤다고 나옵니다. 용어가 이렇게 된 건 저런 사정을 참고해야 하겠습니다. 법의인류학과 법의학이 어떻게 다른지는 p20 이하에 상세히 나옵니다. 잠시 옮겨 적어 보겠습니다.

 

"법의학자가 주로 시체에서 사망 원인을 찾는다면 법의인류학자는 뼈에서 사망의 종류와 원인을 관찰해 낸다. 법의학자들은 연조직이 남아 있는 시체를 다루기 때문에 부패 단계에 들어서거나 백골화한 시체를 접할 일이 거의 없다. 그에 비해 법의인류학자들은 이미 부패가 진행된 시체를 다룬다. 심지어는 미라(mummy)화된 시체를 접하기도 한다."

 

이 구절을 읽고 다시 책 제목인 "뼈의 방"을 보면 우리 독자들도 느낌이 좀 다를 듯합니다. p66에도 언급되는 미드 <본즈>를 즐겨 본 시청자들이라면 책에 특히 몰입할 수 있겠습니다. 

 

"법의인류학자의 사고 방식과 연구 방법은 인류학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p21)"

 

또 우리 독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저자는 동티모르에서 경찰과 함께, 예전 인도네시아의 군부 폭정 당시 학살당한 무연고 사체를 검시한 분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일 뿐 아니라, 인류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공헌을 남기기도 했다는 거죠. 그것도 매우 젊은 나이에. 

 

"법의인류학자들은 국제 법정에서 전범을 판결하는 데 증거를 제공하기도 하고, 무연고자들이 묻힌 집단 무덤에서 사망 원인을 분석하여 고인이 생전에 학대를 당하지는 않았는지 연구할 때도 있다.(p21)"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사법 정의 구현을 위해 자주 참고한 법의학 서적이, 중국 원나라 때 저술된 <무원록(無寃錄)>이었습니다. 조선 초기 이를 보강해서 낸 책이 <신주 무원록>입니다. 학창 시절 국사 교과서나 고전문학 등에서 자주 접한 이름이죠. 

 

지금 이 책에서는 <세원집록(洗寃集錄)>이 언급됩니다(p16). 원나라보다 앞선 송나라 때 송자(宋慈)라는 분이 집필했다고 하며 저자는 이 책이 중국 법의(인류)학의 원조라고 합니다. 그 내용은, 현재 학자들이 기술하는 지식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뼈의 개수라든가), 여튼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고, 간교한 범죄자의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한 지혜와 노하우가 총동원된 뜻 깊은 책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유골을 빨리 발굴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p28)"

 

우리 나라에서 과거 무녕왕릉 발굴 때도 그랬지만 서두르거나 졸속, 경솔한 발굴은 언제나 유물과 유골에 치명적인 해를 끼칩니다. 비록 다른 구석이 많긴 하나 저자는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모두에 공통으로 적용되어야 할 중요한 원칙들이 있다고 합니다.(p29) 

 

1. 누증의 법칙(superpositikon) 
2. 공반 관계(association)
3. 반복(recurrence)

 

이 세 가지가 모여 고고학이든 법의인류학이든 모두 중요시하는 "맥락"이 형성된다고 하네요.

 

앞서 언급된 <무원록>이나 <세원집록> 등 모든 법의학서와 관련 분야 종사들이 한결같이 추구하는 건 "회복적 정의(p31)"입니다. 뼈는 평생에 걸쳐 만들어지며 훌륭한 법의인류학자는 뼈나 그의 잔해만 보고도 그 사람이 생전에 어떤 습관을 갖고 살았으며 어떤 상해나 질병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뼈보다 더 당사자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는 증거나 단서는 없다고 봐야 하겠네요.

 

"동물과 사람의 뼈, 법랑질은 동식물, 음식, 식수의 근원을 반영한다.(p45)" 이른바 동위 원소 분석에 대해 자주 들어 봤을 건데요. 저자는 특히 스트론튬 분석을 통해 "어린 시절의 거주지를 추정하는 데 유용하다"고 합니다. 또 "뼈가 직접 말할 수 없을 때 우리 법의학자들은 그들을 대신해 말한다(p49)"고도 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기업의 반도체 생산 시설에서 일하던 분들이 백혈병 등의 발병에 대해 피해 배상 소송을 낸 적 있습니다. 18세기에 본격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성냥은 인류에게 많은 편의를 선사했지만 이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들은 인(phosphorus) 중독 때문에 건강에 큰 이상이 생겼다고 합니다. 주된 부작용으로는 턱뼈가 괴사하고 치아가 빠지는 것 등이 있습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남편을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소를 쓰는 것이었다(p59)." 약간은 조크가 들어갔지만 당시에는 큰 사회 문제였고 19세기 후반 크게 유행한 추리 소설에서도 가장 즐겨 쓰이던 소재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현재에도 이런 중독은 결코 사라진 문제가 아니며, 암과 골다공증 치료에 쓰이는 비스포네이트가 이런 증상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법의학에서 중시하는 단서는 (사체 다음으로) 의류품이라고 합니다. 옷에 션명한 노랑색이 남는 경우 아마도 옷을 입었던 사람이 비만이어서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옷에 난 구멍을 잘 분석해서 어떤 흉기로 어떤 방향에서 어떤 손을 주로 쓰는 사람이 남긴 흔적인지 추론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세모그룹 창업자가 수배 중 갑자기 백골화가 급격히 진전된 시선으로 발견되어 논란이 인 적 있습니다. 저자도 일반적으로 어떤 시신이 백골화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추산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강수량이 매우 많다고 하여 반드시 부패 속도가 빠르지는 않는데, 이는 파리의 알이 비에 더 많이 씻겨내려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p84). p90에서는 한국의 세월호 사건을 저자가 직접 언급하면서, 죽은 이들의 사망 원인을 밝히는 일은, 남은 사람들(유가족이나 친지)의 마음에 난 구멍을 메우는 뜻 깊은 작업이라고 강조합니다. p109에는 "죽은 사람을 잊는 것은 그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세계에 사는 종족 중에는 의도적으로 신체를 변형시키는 풍습을 지닌 이들이 많습니다. 책에서는 미얀만의 카렌 족 여성들이 목에 착용하는 여러 개의 링을 거론합니다. 그 외에도 의도적으로 편두를 만드는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 입 안에 링을 끼워 아랫입술을 비정상적으로 크게 키우는 이들, 또 중국의 전족 등 다양한 예가 있죠. 에콰도르의 수아 족은 머리를 수축시키는 문화로 유명한데, 정신과 의사를 가리키는 미국 속어인 "슈링크"도 여기서 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인체의 신비"라는 전시회는 요즘 중국 당국의 투명하지 못한 행정과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소재로 자주 쓰입니다. 물론 해당 전시회가 정말 끔찍한 만행의 결과물이라는 증거는 아직 발견된 바 없습니다. 사실 중국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까지도 인육을 먹는 악습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 왔는데 특히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p130 이하에서 자세히 서술합니다. 인육과는 별개로 이를 지탱한 인골(人骨)의 매매에 대해서도 저자는 동서양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서술합니다. 한결같이, 그 결론은 "뼈에 대해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중을 보내야 한다"입니다. 

 

앞서 언급된 법의학서들의 경우 그 제목에 공통으로 "원(寃)"이라는 글자가 들어갑니다. 이 글자는 원통하다는 뜻이며, 누군가에 대한 원한을 나타내는 "원(怨)"과는 다릅니다. 후자는 가해자라든가, 혹은 가해자로 여겨지는 사람에 대한 복수 등이 암시되지만, 전자는 그저 힘이 없어 억울하게 당했다는 마음가짐이 다입니다. 이렇게 원통한 경위로 죽은 사체는 일찍 강직이 이뤄질까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몸이 일찍 굳을까요? 아직 명확한 결론은 과학적으로 내려진 바 없으나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을 걸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선입견과는 달리 뼈는 매우 생명력 넘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혈관도 있고 신경도 있으며 그 때문에 "뼈를 때리면" 아픔이 극도에 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뼈는 그 민족이나 거주자의 특이 체질 같은 걸 다 반영하며,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국민으로 평가 받는 네덜란드인들의 경우 골반 크기로 남녀를 구분하기 힘들다고 합니다(여성들이 골반이 남자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음). 이는 키가 작아야 성장 과정에서 출산에 유리한 몸을 만들기 위해 골반을 키우는 성향 때문에 그렇다는군요.

 

한센 병은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됩니다(p161, p178 등). 이 병은 주로 피부를 썩게 하는데, 뼈하고는 무슨 상관일까 생각도 듭니다. 책에서는 나병환자의 경우 특히 손가락, 발가락의 뼈 등에 마치 막대사탕을 빨아먹은 듯한 흔적이 남는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E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규정헸습니다. 저자는 "뼈"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유기적으로 소통하게 돕는 단서이며, 현재와 과거가 순환할 수 있을 때에 우리의 문명이 진보할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저는 "잊는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모욕적이기도 하다"는 망말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고인을 잊는 걸 가리킵니다. 세상에는 뜻 깊게 자신의 목숨을 버린 이들도 많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 깊은 한을 남긴 이들도 많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영원한 생명 같은 게 보장되었다면 망자에 대해 무심해도 상관 없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망자에 대한 망각, 무관심이란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경시이자 모독일 수 있습니다. 뼈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도달하게 된 지점은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의미심장한 힌트였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