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게 살아온 거야 오늘도 애쓴 너라서 - 당신을 위한 퇴근 편지
조유일 지음 / 모모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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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과연 이게 바르게 사는 걸까? 남들만큼 열심히 사는 걸까? 먼 훗날 나 자신을 돌이켜볼 때 크게 부끄러워지지은 않을까? 이렇게 열심히 산다 쳐도 내게 마지막에 남는 건 무엇일까?

이런 불안과 질문에 어떤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단지, 비슷한 의문과 미련을 가진 이들과 감정, 의견을 공유하고 어떤 위안, 안정을 얻을 뿐입니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이뤄졌는데 각 부(部)는 사계(四季)에 따라 나뉘었습니다. 목차를 보면 과연 각 계절마다 그리 느낄 만한, 혹은 떠올릴 만한 토픽이 들어 있고 그 하나하나의 제목 아래 정갈한 시(詩) 한 편이 등장합니다. 무엇을 체감하고 무엇이 깨달아져야 올바르게, 혹은 보람 있게 사는 건지는 여전히 확신이 안 서지만, 저자가 수 놓은 계절의 상념에 맞추어 내 자신을 돌이켜보고 생각과 성숙의 눈금을 맞춰 볼 수는 있을 듯합니다.

사실 날이 많이 남지 않은 어르신들께 당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드리는 게 자연스러운 마음씀인데, 당뇨가 있어 관리를 하셔야 하는 분이 믹스커피를 드시겠다면 참 난감합니다. 원칙대로 커피를 성분 조절해 가며 드시는 건 그나마 문제가 덜하겠는데 말입니다. 간결한 시 안에, 늙으신 부모님을 마치 자녀가 그 입장이 바뀐 듯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나 어렸을 때 편식하고 투정 부릴 때도 어머님이 이런 마음이셨겠거니 하며 말입니다. 아무리 요즘 당뇨가 흔하다 해도 흔한 만큼 고통과 심각성이 덜해지는 건 아니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맛있게 먹으면 0kcal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다 자기기만입니다. 책에는 어느 전문가의 말을 빌려 먹고 싶은 만큼만 먹으면 살이 빠진다고 하는데 이게 정답이지만 우리는 이미 "먹고 싶은 만큼"에 대해 아주 잘못된 감각을 몸에 붙여 놓고 삽니다. 저자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적당한 만큼만 가까워지거나 사랑하는 절제, 만족을 강조하며 한 꼭지를 마무리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로 태어날래(p14)." 나무는 "다가오는 너를 기다리며, 너에게 그늘이 되어 주고, 작고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또는 붉은 열매를 맺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무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을 사람으로서 이 생에서 (진심으로) 품을 수 있다면 이미 나무와도 같은 사람이 된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나무는 "아낌 없이 주는 나무"이겠으니 말입니다.

"이별이란, 연습이 없기에 잘할 수가 없다(p93)." 과연 그렇습니다. 또, 이별은 설령 연습을 통해 잘할 여지가 있다 해도, 아무도 그런 연습을, 고작 "잘하는 이별"을 하나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지 싶습니다. 그럼, 만약 이별이 아프지 않았다면, 이건 내가 잘한 건가 어떤 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그건 아마 당신이, 너무 아파서 고장이 난 것이거나, 고장난 채로 사랑을 한 것"이라 말합니다. 의외의 순간 독자에게 놓아진 일침인데 얼핏 들어도, 또 곱씹어 봐도 맞는 말이라 더 아픈 듯하네요. 바로 앞 페이지에는 "고장난 마음"에 대한 멋진 아포리즘이 나옵니다.

매번 고민하고 매번 방황(p71)하고 도대체 나아질 줄 모르는 너(사실은 "나")이지만, 이에 대한 답은 "흔들려도 괜찮다"이며, "흔들리는 것조차 (여전히, 분명히) 너"라고 말해 줍니다. 슬퍼서 제정신이 아닌 것도 나고, 너무 괴롭고 너무 아파서 초라해지고 싫어지지만 그 역시 나라는 점을, 조용히 내게 타일러 주면 사실 마음이 좀 나아지기는 합니다.

사실 버킷 리스트는 그리 점잖은 말은 아닙니다. 어느 영화 때문에 미국(거기서는 원래 있던 말이지만)을 넘어 한국에서도 널리 유행하게 되었으나 어원이 고상하지 못하고 뭔가 경망스럽습니다. 저자는 특히 "꿈을 먹고 사는 주제에(p103)" 이런 말을 쓰는 게 어색했는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꿈을 먹고 산다는 건 아직 젊다는 뜻입니다. 아직 살 날이 쇠털처럼 많은데 왜 저런 리스트를 만들고 의식해야 합니까. 저자는 "딱 그 정도 온도로만 삶을 대해도 괜찮다"고 하는데, 앞서 말한 "진정 먹고 싶은 만큼만 먹을 때 살이 빠진다(p30)"는 얘기, 또 사회적 거리 두기, 아니 관계적 거리 두기(p28)과도 통합니다.

아무리 틀리고, 틀려서 손해를 봤다거나 기분이 나빠졌다거나 해도 우리는 결국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저자는, "밉다 밉다 해도 결국은 너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나"와 닮았다고 합니다. 참 속상합니다. 사이코패스처럼 관계를 좀 척 끊어내지 못하고 말입니다(달리 말하면, 그렇다고 관계를 척척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란, 바로...).

"이보다 더 힘든 것도 내가 다 겪은 사람이다." 사실 이런 말은 우리 나라 사람만 입에 올리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내가 더한 시련도 다 극복했다는 자신감 표현, 호언장담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견뎌야 하는 아픔이 너무 커서 힘들어 죽겠다는 자백으로 들립니다. 저자는 그래서 "괜찮다고 거짓말하는 내가 더 우습다(p166)"고 합니다. 이건 진짜 맞는 말입니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 속마음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같은 무기력한 하소연, 무너짐, 절망, 비명 같은 것에 가깝습니다. 강하게 만든 게 아니라면 적어도 익숙해졌다는 건데, 고통과 아픔에 익숙함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 게 있다면 아마 죽음에 가까워진 방증이라는...

크게 될 필요 없으니,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으면 창피해하지 말고 허우적대라. 이게 아픈 청춘들에 대해 작가분이 해 주는 말입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목표 일부에 대해서나마 애착을 갖고 열심히 몰두하는 청춘을 그 누가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그거 다 덧없다며 진 빼는 소릴 하지 말고, 그저 도닥여 주는 게 좋겠네요. "청춘은 아프단다(p190)"라는 말이, "청춘은 원래 아픈 것이라는 격려"인지, 아니면 "누가 그러는데 청춘은 아픈 것이래!" 같은 약간의 풍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에서는 이별연습이 나왔는데 갑자기 그 대목을 읽으면서 예전 가수 원미연의 "이별여행"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p197에는 "바보 여행"이 나오는데, 여행만 떠났다 하면 집이 그리워지는, 그래서 떠난 게 약간 후회되는 바보 같은 여행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히 여행 목적지에서 돌아오는 라스트 마일 중에는 정말로 집이 그리워지긴 합니다. 또 여행 중에 집이 그리워지더라도 이건 바보라서가 아니라, 그린 느낌을 좀 받으려는 게 여행의 여러 목적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작가분은 "거절은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다(p239)"고까지 말합니다. 이 역시 "관계를 철저히 계산"해서 이어가야 가능한 경지(?)이겠는데, 그래서 저자는 저 앞에서 "관계적 거리 두기"를 이야기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토픽이 겨울을 다룬 제4부에 있고, "관계적 거리 두기"가 봄을 다룬 제1부에 나오니 돌고돌아 다시 처음("집")에 복귀한 셈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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