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앙아시아의 이해
윤성학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중앙아시아는 그 지리적 범위도 명확지 않고 그 지난 역사나 문화의 흔적을 어디까지로 잡아야할지도 모호합니다. 그렇다고 이 지역이 세계사에 끼친 흔적이 미미하냐면 그건 또 전혀 아닙니다. 이 지역에서 새로운 강자가 출현하여 로컬 패권만 완성해도 인근의 대제국들조차 벌벌 떨었습니다. 이렇게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지만 1)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중앙아시아인지 불명확하다 2) 이들 문명이 남긴 흔적이 (잦은 권력 변동 탓에) 많이 남아있지 않고 그 정체성도 경계 획정이 어렵다. 등의 이유로 전문가들의 연구조차 여간 난감한 게 아닙니다.

티무르는 중앙아시아, 나아가 아나톨리아 반도, 페르시아 일대를 호령하고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산 크리스토퍼 말로의 작품에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현재로 치면 이 사람은 어디 출신이라 봐야 하나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몽골? 이에 대한 답은 한 마디로 나오지 않습니다. 티무르가 세운 제국은 심지어 제국으로 불러야할지조차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주체의 명나라를 위협할 만큼 위세가 당당했는데도 말입니다.

청나라가 그 전성기에도 벌벌 떤 적수 중 하나가 오이라트, 준가르 부족이었습니다. 청나라뿐 아니라 이른바 강건(康乾)성세(盛世)라고 해서 중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강역(疆域)이 넓어지고 무적의 국력을 자랑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때 유목의 강자로 마지막으로 등장한 게 준가르였습니다. 청나라 그 자체로도 유목-농경 통합 제국으로서 최강이었는데 이 청조를 위협하는 신 유목 세력이 그 전성기에 하필 또 등장했다는 자체가, 후대의 우리 눈에는 경이롭습니다. 영특하고 자신만만했던 건륭제도 나라의 존망이 걸렸다며 두려워했다고 전합니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이른바 "거울 제국 이론"으로 설명하는 퍼듀 교수의 재미있는 책이 있습니다(이게 절판되어 지금은 중고판이 12만원이나 하네요? 나 9만원 벌었네 ㅋ).

오이라트, 준가르는 여튼 청제국에게 박살이 나며, 이후 몇 번의 과정을 가쳐 중국 영토에 완전히 편입되었습니다. 현재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탄압이 크게 문제되는데 그 연원이 바로 여기인 것입니다. 청나라가 이후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고 마오의 공산당이 다시 권력을 다지기까지 길게는 반 세기 가까운 기회가 있었는데 동 투르키스탄이 단합하여 독립을 찾지 못하고 결국 저리된 건 그들의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만 인권 이슈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이라트의 다른 세력도 이후 러시아 제국의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인, 기타 슬라브 족이 두루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정복자들에게 밥 노릇을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마치 미국 백인 정부에 의해 사냥감 신세로 전락한 아메리카 원주민(얼마나 용맹한 전사들이었습니까)과 비교될 만합니다.

카자흐스탄은 영토가 광대합니다만 다양한 종족이 섞여 사는 통에 중앙아시아에서 큰형님으로 그리 위신이 크지 못합니다. 정복자들의 전통, 적통을 잘 간직한 건 오히려 우즈베키스탄인 편입니다.

터키는 범 투르크 족을 넘어 아예 이슬람 수니파 권역 전체에 다시 종주권을 행사하려는 분위기입니다만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장 동투르키스탄의 무슬림 형제들이 제노사이드 위기를 맞았는데도 별 목소리를 못 내니 말입니다. 중앙아시아인들이 대체로 이슬람 교를 믿으나 매우 세속적 분위기라서 어떤 종교적 믿음을 통한 단합이나 경제적 협력이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게다가 많은 나라들에서 제각각의 독재자들이 자신의 사리사욕만 내세우는 판이니 더욱 그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