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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정치가들이 제시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존속 방안 - 3월혁명(1848) 이후를 중심으로
김장수 지음 / 푸른사상 / 2016년 2월
평점 :
합스부르크 제국은 유럽 최고의 명문 가문이었으나 18세기에는 프로이센 왕국 호언촐러른 가문의 공격적인 정책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고 국세가 위축되었습니다. 이미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당시 부르봉 가문과 이를 보좌한 콜베르의 영리한 책략으로 일격을 당해 타격을 입었고, 아직 민족주의가 전면에 대두할 시절은 아니지만 제국 내의 다문화 구성 때문에 운영 비용이 너무 크게 드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1848년에 일어난, 놀랍게도 슬라브 족 중심의 제국 존속 방안에 대해 분석합니다. 이 방안의 핵심을 추리자면 "연방제"의 도입인데, 황실로서는 마뜩지 않았을 겁니다. 마치 이때로부터 근 반 세기 후 독립협회가 입헌 군주제를 제안했을 때 고종이 아주 떨떠름해했듯 말입니다.
1848년이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부터 정확히 두 세기가 경과한 해입니다. 이 해에는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프랑스(2월 혁명으로 왕정의 최종적 폐지)를 위시하여 전 유럽에서 자유주의 혁명이 들불처럼 번져가던 시점이었습니다. 특히 이 해에는 시칠리아 왕국에서 본격적인 봉기가 일어나 국체가 흔들렸고 결국 십여 년 후에 왕국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포스트 나폴레옹 체제를 건설한 사람이 오스트리아 재상 폰 메테르니히인데 이 해에 그가 실각하고 국외 도피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러니 "제국의 존속"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었겠죠. 특히 제국의 상당수 영토는 슬라브 거주지로 구성되었는데 보히미아, 모라비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루마니아 일부에 걸친 제국의 판도를 생각하면 순수 게르만 지역은 오히려 적었습니다.
그러나 황실은 이를 거부하고 대신 제2의 민족 세력이었던 헝가리와 타협하여 이른바 카 운트 카(K. und K.) 제국을 새로 구축하는데 이것이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이원 제국(더블 모나키)입니다. 동군 연합으로 헝가리 왕위는 합스부르크에서 겸했습니다.
책의 취지에는 반하지만 독자인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른바 아우스글라이히, 즉 이 게르만과 헝가리 간의 대타협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시대의 조류에 역행하는 반동에 가까웠으나 헝가리인의 드센 민족적 기질을 감안할 때 황실이 그들에게 한 자리를 떼어주고 종전의 권위적 지배를 이어나갈 작정이었으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을 텐데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입니다. 아우스글라이히 이후 반 세기를 더 지속하다 1차 대전의 패배로 인해 힘 한 번 못 써 보고 그 유서 깊던 합스부르크 황실은 모든 특권을 잃고 평민의 지위로 내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