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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전쟁사 연구
문안식 지음 / 혜안 / 2008년 12월
평점 :
견훤은 본디 (현재의)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 웅거하던 호족 아자개의 아들입니다. 아자개에 대해서는 상당한 무력을 갖추고 해당 지역에서 행세깨나 하던 호족이라는 점, 그 자녀 등 가족들에 대한 사항, 원래 성이 이(李)씨였다는 점, 아들인 견훤과 불화했다는 점 외에는 그리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해당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원종, 애노와는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도 그저 아주 불확실한 추정이 가능할 뿐입니다.
독특한 건, 견훤이 젊은 시절 일개 장교로 근무하던 무진주에서 현지의 질서 혼란을 틈타 거병하여 자립했다는 점입니다. 사극 <태조왕건>에서는 지역 해상 군벌인 능창(별명 수달)과 한판 겨뤄 제압한 후 현지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등의 특정 상황이 자립의 계기로 작용한 걸로 나오지만 이는 작가의 상상일 뿐입니다. 능창 자체는 실존 인물이긴 합니다. 또 그는 처음에 무진주(현재의 광주광역시)에서 자립했지만 정작 도읍은 구 백제의 중심지 중 하나로 기능할 뻔했던 완산주(현 전주)로 옮겼습니다.
견훤은 여러 차례 대야성을 공략하고 이 과정에서 신라의 토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대야성은 현재의 경남 진주인데 지리적으로 이 곳이 흔들리면 신라로 향하는 길이 무주공산으로 뚫리다시피하는 게 당시의 군사. 지정학적 사정이었던 듯합니다. 이 대야성에는, 비록 말기적 증상을 노정하긴 했으나 언필칭 천년존립의 신라가 그 마지막 저력을 투입하고 있었으므로 그 공략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후백제는 인력과 물산이 풍부했던 데다 근거를 남쪽에 두고 있는 신라를 이처럼 근거리에서 궁지에 몰아넣었으므로 대야성에서 큰 승리를 거둔 후 마치 통일을 목전에 둔 듯 크게 사기가 고양되었을 것입니다.
궁예는 왕건 자신도 후에 평하기를 사람 다루는 기술과 군사적 능력 모두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자신의 폭정과 실책으로 하루아침에 정변이 일어나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공할 적수가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기반이 허약하다 여겼던 왕건이 정권을 잡았으니 견훤은 더욱 기세가 등등해졌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판도를 표시한 지도만을 보고 후고구려(마진, 태봉, 고려)의 대단한 성세를 추측하지만 이 시대의 경우 영토의 넓이와 국세가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후백제의 경우 앞서 말했듯 소출이 풍부하고 그에 걸맞은 인구를 보유했으며 지근거리에서 정통왕조를 압박했으므로 오히려 이 시대 삼국 중 최강국으로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의 후한에 오나라가 아무리 강역이 넓어도 이를 최강국에 준하여 평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후고구려는 또한 왕건이 잦은 반란에 직면했던 사실에서 보듯 내부 사정이 그리 튼실하지 못했습니다.
후백제의 견훤은 조물성 전투, 공산 전투, 삼년산성 전투에서 세 번 연달아 왕건 군대를 궤멸 직전까지 몰아붙였습니다. 왕건 개인이 (드라마 등에서 묘사되는 것과 달리) 군사적 역량 자체는 대단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는 대단한 성과입니다. 이렇게 우군이 맥을 못 추리니 가뜩이나 대야성까지 넘어간 판에 신라가 더 이상 존립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견훤이 경주까지 진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왕실의 존엄을 크게 모독한 사건은 마치 18세기에 아프샤르 왕조의 나디르 샤가 무굴 제국까지 쳐들어와 대약탈을 저지른 사실과 비슷합니다. 둘 다, 세상을 놀라게 하고 해당 정복 군주의 위엄에 온 천지를 덜덜 떨게 만들었으나 결국 승자의 뒤끝을 좋지 않게 만든 결과까지 서로 닮았습니다.
견훤이 삼국 일대에서 결국 인심을 잃었으니 국제(?) 정세를 서투르게 다뤘음도 분명하나 좀 의외인 건 국내 정치에도 결국 치명적인 실책을 저질러 엉뚱하게도 훈신과 신검 세력의 결탁을 불러 모든 것을 잃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곧바로 왕건에게 투탁한 사실도 조금은 우스운데 물론 왕건의 사람 다루는 실력이 대단했다는 점도 확인이 가능하나 견훤의 인물됨됨이나 국량이 그의 군사적 실력에는 현저히 못 미치지 않았나 하는 짐작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자신의 아들, 또 구 심복들을, 창업군주가 제대로 콘트롤 못 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점에서입니다. 이런 걸 보면 예컨대 한 고조 유방 같은 이가 얼마나 귀신 같은 재주를 보유한 정치의 천재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