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느른 - 오늘을 사는 어른들
최별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처음 받아들었을 때 사철제본이라서 놀랐습니다(책꽂이에 꽂아 두어야 하니 띠지를 함께 오래 보관해야겠습니다). 펼쳐 보니 내용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 사진, 그림이라서 다시 놀랐습니다. 사실 그림은 없고 도판은 모두 사진이지만, 상당수는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사진들입니다. 꿈꾸는 화가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듯한 사진...

어려서 몸 담았던 고향으로 돌아가 폐가든 뭐든 몸 붙일 집을 사는 일은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어느날 갑자기 전북 김제에 4500만원짜리 낡은 집을 덜컥 샀다고 합니다. 이미 중산층으로 이룰 정도는 다 이루신 분인데,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얼마 전 읽은 심리학책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른 모두의 마음 속에는, 어릴 적 상처를 그대로 품고 사는 어린아이가 있어서, 잘 돌봐 주지 않으면 큰 사고를 칠 수도 있다."

독자인 저도 이 구절을 근 7년 전에 읽었는데 어느 책에서 처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많은 심리학 대중서에서 쉽고 직관적인 비유로 자주 인용하는 것 같습니다. 여튼 저자는 "상당히 빡센 아이를 달래기 위해" 집을 샀고, 이런 충동구매(?) 끝에 피로감도 느꼈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지방 폐가는 4500 정도면 사는구나 하고 상식도 하나 늘렸습니다.

p43에는 아마도 저자분일 듯한 어느 여성분의 뒷모습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신 듯합니다. "아마 지난 수십 년 간은 내가 말을 걸어주지 않아 삐졌나 봐요(p45)." 이 모습은 삐진 모습이라기보다, 내가 이렇게 삐졌으니 말 좀 걸어달라는 얌전한 요청 중인 자세 같습니다. 앞에는 빨래줄, 나무, 장독, 헛간 등이 보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 인물 외에 먼저 탁 들어온 느낌은, 이 공간에서는 돈이나 효율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물건과 건물을 마구 배치해도 되는구나 하는 그 자유로움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고마운 무질서 같은 것 말입니다. 혹시 장독을 최근에 보신 적 있습니까? 우리는 장류를 대개 플라스틱통에 보관하죠.

집을 샀으니 대청소를 해야 하는데 대청소를 두고 저자는 "이 집의 버려진 사연을 치움(p48)"이라고 합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보면 아내가 남편의 직전 여인이 쓰던 신혼용품, 가구 등인 걸 알고 기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단순히 그걸 돈 주고 장만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무덤덤할 뿐이겠습니다. 특히 집에 마련된 가구라든가, 아니 방이라고 해도, 이런 것에는 전 주인이 쓰던 사연이 다 깃든 셈입니다. 청소는 위생상의 이유 외에도 확실히 이런 이유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앞 문단에서 약간은 쓸쓸한 뒷마당 풍경에 대해 독자로서 제 느낌을 적었는데, 저자는 "풍경을 4500만원 주고 산 셈(p48)"이라고도 합니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특별히 아쉬울 게 없지만, "이대로 늙어 버릴 내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덜컥 사버린 집. 주위에서는 잘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내 친구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음... 그 상황에 대입시키고 보니 저도 왠지 칭찬이 나올 것 같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런 행동의 깊은 동기, 속뜻을 잘 알고 나오는 칭찬일까요? 나는 전혀 못 할 것 같은데 너는 했으니 그런 과단성이 부럽다는 칭찬이라면, 그건 사실 칭찬이 아닙니다. 그럼 뭘까요? 역시 저 자신에 대입하고 보니, 그 실체가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갑자기 씁쓸해집니다.

p74에는 "가벼운 사람"이 나옵니다. 물론 저자 자신입니다. 생각과 행동이 가벼워서 어른이건 아이이건 쉽게 친구가 된다... 참 이런 성격이 부럽습니다. 남자라고 해도 학교나 조직에서 사람을 쉽게 사귀는 타입, 아니 이런 타입이라야 남자들 사이에서 환영받는 남자가 되니, 남자가 더 부러운 성격입니다. 하긴 이 점을 다시 저 위의 일에 대입하면, 평소에 그런 성격이시니 김제에 4500짜리 집을 샀다고 해도 너답다며 칭찬을 받겠죠. 그러고 보니 맥락이 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p77에 "이여사님"이 언급되어서 누구실까 했는데 p106에 자세히 설명이 나옵니다. "시골 어르신들 오지랖" 역시 우리가 흔히 갖곤 하는 선입견입니다. 선입견이란 참 무서워서 우리들이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도 없으면서 관계의 형성과 소통만 가로막습니다. "엄마가 내 인생의 신이 아니었다는 걸, 그저 미완의 어른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이란 구절이 p113에 나옵니다. 자녀들, 특히 딸들이 좀 마음에 새겨야 할 구절 같습니다(이 구절만 수시로 떠올려도, 특히 딸들이 모친과의 갈등은 미연에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로 저자분의 모친은 돌아가셨다고 하며, 여기서 만난 이여사님이 아마 생전, 혹은 사후의 어머니 빈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저 마음대로 짐작해 봅니다.

"세상을 떠난 화분이 다섯 손가락을 넘겼습니다." 저도 화분을 여럿 두었다가 판판이 다 죽여 본 경험이 있어서 격공하는 구절입니다. 마치 부모로서 할 일을 다 못한 자괴감이 생기기도 하는... 특히 어떤 난은 제가 이사하면서 그냥 야산에 갖다 버렸는데 마치 낙태를 한 미혼모(!)가 된 듯한 느낌이 몇 년을 가더군요(ㅠ). p181의 문장을 읽으면서 아 이 글들이 원래 저자님의 브이로그에 연재되던 글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늦게 들었습니다.

pp.100~103에는 텃밭 가꾸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저자는 내 안의 욕심이 그리도 컸던 줄 몰랐다고 하시는데, 마치 톨스토이의 동화에서 하루 동안 가장 많은 땅을 확보하느라 무리해서 뛰다가 해질녘에 죽어 버린 농부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과연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하단 말인가?" p103의 사진은 마치 밀레의 <만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대로 늙어 버릴 내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라는 말은 p48에 있었고 "집은 제대로 못 고쳐도 돼. 나를 고쳐 보자(p60)."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 아쉬움의 내용이 뭔지는 알 수가 없었는데, "그대로 앞만 보고 살다가는 나중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강제로라도 내 자신에 집중하기 위해서(p213)"라고 합니다. "이곳은 나에게 시험기간 독서실 같은 곳"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도시에서 사는 이들은, 내가 누군지에 집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대로 가다간 아예 내가 누군지 잊고 살기 쉽다는 거죠. 그렇게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무서워지기도 합니다.

p238에서는 저자분이 배추를 뽑을 때 옆집 노인분이 계속 자신은 톱질을 하다가, 배추를 다 뽑으니까 그제서야 톱질을 멈추더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습기도 하지만 본래 사람 사는 게 다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은 호기심, 반은 내 삶에 박자와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이웃이 필요하고, 힘든 일도 이렇게 호흡이 맞고 눈빛이 통하면 덜 힘들어지고...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사람 사이의 정(情)과 소통의 힘, 안도감 같은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p287에는 부암동 카페가 나옵니다! 이제서야 그나마 눈에 익숙한 모습이 나오는 걸 보고 안심이 되는 걸 보면 도시인의 감성이라는 게 어지간히도 왜곡되기 쉬운가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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