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 현대 주식시장의 핵심 메커니즘을 밝히다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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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래소는 아득한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군부대 내 매점을 PX라 부르는데 이 역시 "거래소"에서 온 이름이며 이 고전 서문에서 저자 막스 베버 본인이 자세하게, 혹은 난해하게(?) 설명하는 바와 같습니다. 이 간략한 고전은 본디 막스 베버(<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로 한국에는 널리 알려진, 지지난세기의 독일사회학자)가 "노동자를 위해 쉽게 거래소의 본질을 요약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사실 너무 쉬운 설명서와 PPT에 익숙해진 현대의 게으른 대중에게는 이마저도 어렵고, 아니 어렵다기보다 "거래소의 본질이 이처럼이나 심오했나?" 같은 경외감을 부르기도 합니다. 여튼 세기의 천재였던 막스(Max) 베버(Weber)의 책은 그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정독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 고전에서 베버가 주제로 삼는 건 주로 "증권거래소"입니다. 꼭 폼나는(?) 증권거래소뿐 아니라 무슨 농산물, 원유 등 중간재, 하다못해 공동어시장의 거래소 역시 그 나름 꽤 복잡한 원리에 의해 작동됩니다. 책을 통해 베버는 아마 독일의 노동 대중에게 최대한 간명하게 거래와 거래소의 본질을 가르치고 싶었겠지만, 우리가 얻는 건 간단한 이해와 끄덕거림이 아니라 체제와 현상 저 깊이에서 작동하는 근본원리에 대한 심오한 통찰입니다.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말입니다.

막스 베버는 보면 책 서문이 참 어렵습니다. 물론 본문도 어렵지만 서문이 왜 이처럼 어려운지 텍스트와 씨름하다가, 혹은 대체 왜 이렇게 서문을 어렵게 썼는지 그 의도를 이해하려 들다 잠깐 눈이 감길 만큼 어렵습니다. 사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서문을 보면 독자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게 단초를 잡아 주는 게 아니라, 아직 나오지도 않았을 초판의 내용에 대한 (평단이나 반대 진영의) 예상되는 (가상의) 반론을 놓고 미리 재반박을 뭐 한다든가, 천재 특유의, 일반인에게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부지런한 세팅(?)이 엿보일 정도지요. 이 고전도 저는 본문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서문으로 돌아와 여기여기는 왜 이런 말을 썼는지 다시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만 저의 능력으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주식을 채권과 혼동하기 쉽다(p28)." 제 주변에는 아주 감이 좋아서 주식은 물론 채권도 그저 차트만 보고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어 최상의 시점에 매도 매수를 능란하게 하는 이가 있고, 이런 분에게는 사실 주식/채권의 분별도 필요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공부를 하고 나서 무슨 투자를 해도 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 베버는 주식을 일러 "말하자면 채무 증서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채권의 본질은 채무증서와 완전히 같지만(같음을 전제로 하고), 주식은 "비슷하다"고 그는 말하는 거죠. 이렇게 말을 해야 회사법제에 대해 아무 기초 지식이 없는 노동자가 잘 이해할 수 있겠지요(그나마). 이 구절은, 본인의 그 명석하고 천재적인 두뇌로는 주식과 채권을 혼동할 우려가 꿈 속에서조차 없을 텐데도 무지한 노동자의 처지에 최대한 서 보려는 관대한 그의 태도를 증명하는 부분입니다.

현대의 주식 거래에서 많은 이들은 유상증자를 할 때 예컨대 왜 60,000짜리 "시가"의 주식을 100% 유증한다면서 30,000짜리 두 장으로 나눠 줄 뿐인지 궁금해합니다. 액면분할과 무엇이 다른가 하면서요. 베버는 이 책에서 "주주에게는 (액면) 1000마르크로 평가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하며, 주식, 혹은 지분의 가치가 일단은 액면가임을 설명합니다. 물론 실제 납입한 금액은 그때나 지금이나 액면가를 훨씬 넘는 게 보통입니다. 또 그는 "채권자의 채권(債權이기도 하고, 여기서는 債券이기도 합니다)"과 주식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파산 시 잔여재산청구권이라는 점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당연히" 채권자는 주주보다 선순위여야 한다는 거죠. 이게 바로 주식이 채권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입니다.

주식회사 제도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계 최초로 알려졌지만 법제화가 치밀하게 이뤄져서 사업가는 물론 일반 대중도 어떤 속임수나 갑작스러운 부도 위험 등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고 참여 가능한 반영구적인 제도로 주식회사 시스템이 정착한 건 독일에서 그로부터 350년 정도가 지나 악치엔레히트, 즉 주식(회사)법이 만들어진 후입니다. 즉 이것은 막스 베버와 동시대의 사건인 거죠. 베버는 "경영 자체는 관심이 없고 배당 수익에만 골몰하는 주주 혹은 투자자를 위한 제도(p33)"라며 그 본질을 정확히 짚습니다.

베버는 사회학자답게 중세의 장원제도도 예시의 하나로 듭니다. 장원 역시 영주와 농노가 일정 공동 투자를 한 산물이라는 겁니다. 영주가 외부 세력으로부터 무력적 보호를 베풀고, 농노는 일정한 토지를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으로 투자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장원에는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거나 이익을 그로부터 취할 수 없는데 "투자자"에게 배타적으로 이익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버의 설명을 들으니 주식뿐 아니라 중세 장원까지도 새롭게 보이네요.

주주가 받는 자본수익, 즉 배당금을 두고 그는 "자본을 빌려 준 저당권자가 받는 이자"로 비유(p34)해서 설명합니다. 물론 이는 노동자 독자의 수준을 감안한 일종의 "비유"이며, 주주의 권리는 보통 개별 부동산에 특정하여 설정되는 저당권과는 법제적으로 크게 다르지만 비슷한 구석도 분명히 있습니다.

p45에서 그는 독일 거래소만의 "물리적" 특징을 설명합니다. 상품이건 증권이건 한 군데에 모여 있는 게 특이하다는 거죠. 이 책에서 "거래소"라 함은 물론 증권거래소가 주된 토픽입니다만 역사적 발달 과정을 고려한 서술이다 보니 상품거래소도 자주 언급되며 실제로 우리가 지금 다루곤 하는 "선물"도 비록 증권화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물건이 그 본체입니다. 대두, 옥수수, 구리, 은, ...

거래소의 중개인, 입회인 등의 직책이 설명되며 이런 자리 역시 "사실상" 팔고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도 한국거래소가 국가 기관이 아니며 민간 조직에 지나지 않는데 다만 은행처럼 고도로 공신력이 높은 것뿐입니다. 서유럽(독일 포함)은 당연히 민간에서 오랜 역사를 두고 이런 제도가 만들어졌으니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영국, 프랑스 등은 독일처럼 늦게 통일이 이뤄지고 인위적으로 무슨 제도를 급히 만든 게 아니라서 당연히 거래소 조직이 한 군데 모여 있질 않았겠죠. 함부르크 거래소의 중개인들이 프랑스 등과는 달리 특권이 없다는 점도 베버는 지적하는데 이것도 연혁적으로 같은 이유입니다. 베를린 거래소는 함부르크와 사정이 달라 "상인 사회의 장로들 집단"에 가깝다고 하는데 그다운 노련한 비유입니다.

"명예감정은 모든 사회조직의 힘이다(p53)" 독일어에는 다른 언어에는 없는 독특한 개념이 많은데 저 명예감정이라는 말도 법학에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의 보호법익으로 삼곤 하는 것입니다. 사실 거래소뿐 아니라 어음 수표 제도도 그렇고 지점, 대리인, 지배인 등을 여러 지역에 둔 상인 제도 자체가, 고도의 신뢰가 없으면 애초에 유지가 안 되는 거죠. 중세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그리스의 왕족들이 즉위 후 채무를 갚지 않자 군대를 조직해서 다른 일 하는 척 하면서 엉뚱하게 콘스탄티노플로 쳐들어가 쑥대밭을 만들고 직접 채권 추심을 헸는데 그게 바로 4차 십자군 운동이었습니다. 저 말에 대해 베버는 각주에서 "나의 (이) 의견은 이 분야의 가장 유명한 전문가들과 일치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ㅎㅎ

공동어시장이나 농산물 시장에 가면 새벽 시간에 다소 기이한 형태로 "경매"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죠. 주식 거래 역시 (지금은 전산화가 완벽히 이뤄졌다뿐) 매도자와 매수자의 상호 경매 형태가 발전한 것입니다. p62 이하에서 베버는 가상의 중개인 "마이어"가 러시아 루블 화를 매매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구태여 루블화를 예시한 건 p97 각주에 나오듯 저자가 은행가 파울 폴케 스캔들을 아마 염두에 두어서인 듯합니다(스캔들은 이 책이 쓰여지기 3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 "An Sie(당신에게)!" "von Ihnen(당신에게서)!" 독어에서 경칭을 나타내는 2인칭 대명사는 저처럼 대문자로 시작하죠.

p67에는 재정거래의 개념이 나오는데 몇 달 전 비트코인에 유독 큰 프리미엄이 한국의 코인거래에서만 붙는 걸 이용해서 중국인 투자자들이 엄청 돈을 벌었다고 하죠. 이게 바로 알비트리지, 즉 재정거래의 좋은 예입니다. 베버는 이를 통해 "투기", 즉 시간에 따른 가격의 앙등을 이용한 이익 수취의 개념에까지 설명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 다음, pp.72~82로 이어지는 설명은 바로 "선물(先物. future) 거래입니다. 이 열 페이지 동안의 설명은 매우 쉽고도 정확해서, 거의 백 년 전에 이뤄진 서술이지만 현재의 선물 거래에도 그대로 적용한들 별로 어색한 구석이 없습니다. 무슨 단톡방에서 나눠주는 얄팍한 pdf보다 이 고전의 이 파트가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p67의 재정은 裁定이고 p96의 재정은 책에 나와 있는 대로 財政입니다. 발음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말이죠. 거래소의 규모가 커지면 이 품목을 거래하는 (세계) 시장 안에서의 위상도 커지고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거래소가 소재한 국가의 위상이 커진다는 말도 해당 페이지에서 베버는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잡주 잡주 하는데 이게 속어나 비어가 사실은 아니며(?) 이 책 p97에 나옵니다. 원문에는 kleine Papiere(작은 株)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독일 고전 답게 거래의 세세한 과정에서 중개인의 업무와 신분까지, 경제학적 측면은 물론 사회학적 고찰이 이뤄지며 결론부분에 가서는 미시가 아닌 "국민경제"에의 파급까지 두루 분석이 이뤄집니다. 투자의 기본은 일확천금이 아닌, 언제나 기본에 충실하고 대상에의 철저한 연구 끝에 이뤄지는 매매임을 잊지 않게 해 주는 명저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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