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 프랑수아 를로르 장편소설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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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이지만 프랑수아 를로르의 기존 작품 꾸뻬 씨 시리즈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중간쯤인 p77에 꾸뻬 씨가 이 책 중에서는 처음 등장하고 이후 계속 감초처럼 나와서 울릭이 방황할 무렵 수시로 도와 주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울릭은 물론 강한 사람이라서 남의 도움이 거의 필요 없긴 하지만요.

이누이트 족은 세상이 온통 영(靈)으로 가득찼다(p17)고 믿습니다. 울릭이 어느 석유 회사와 그 외 여러 단체 협업으로 기획된 행사에서 이누이트 대사 역할을 맡아 세계적인 대도시인 파리에 왔을 때, 그는 이상하게도 여기에서 영을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이누크라서 카블루나(이누이트 입장에서 이방인이라는 뜻의 단어)의 영을 못 본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도시 사람들이나 도시 안에는 영이 이미 떠나서인 줄 나중에 (우리 독자들과 함께) 알게 됩니다. p122에는 프랑스에서도 "숲"은 영으로 충만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도시 사람들도 언제부터인지 떠나서 부재한 영을 찾기 위해 알게모르게 노력 중이며, 문제를 안 이상 도로 찾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약간 스포지만) 울릭은 방송 대담 쇼에 출연하고 광고에 등장한 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는데, 세계인들이 그에게 호응을 보낸 건 물론 개성이 재미있었서도 있겠지만 그에게서 자신들이 오래 전에 잊은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벽지 문명(현대인들이 원시 혹은 야만이라고 부르는 전통 문명)에서 한 개인이 도시를 찾아 이방인처럼 고독을 느끼는 설정은 여태 여러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 채용해 왔습니다. 이 작품이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그러겠거니 생각하는 전통 문명 출신 개인의 사고과 행동이 아니라, 보다 철저히, 진짜 현지인의 마인드와 느낌으로 주인공의 세계를 꾸려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서야 "진짜 현지인이라면 아마 이렇게 하겠구나" 같은 각성이, 기존의 선입견을 몰아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울릭은 물론 이누이트의 전형 범주에 넉넉히 속할 만한 개성이지만, 그저 정의롭고 순박하며 성실한 사람만은 아닙니다(물론 우리들 도시 사람에 비하면 여전히 그러합니다만). 그는 처음 파리에 왔을 때 고독을 못 이겨 여성을 찾는데 고향에 두고 온 구(舊) 약혼녀 나바라나바를 꿈에도 못 잊는다는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 울릭이 아직 혈기왕성한 청년임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또 p83에는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이누크 남자는 여자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도 나옵니다). 여튼 그가 파리 호텔에 묵으며 밤에 한 행동은 엄연히 성매수인데 이를 알선해 준 자가 에스키모(틀린 표현이라고 하죠)한테는 중국인이 알맞겠다고 여겼는지 중국인 성매매여성을 들여보낸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울릭은 카블루나들이 "모두 직업이 있다"는 걸 아주 특이하게 생각합니다. 이누이트는 남자는 모두 사냥꾼, 여성은 집에서 가사노동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p28에서 그는 대뜸 파리에 오자마자 이 생각부터 하며, 저 뒤, 소설 중후반 TV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이 말을 꺼내 대중의 관심, 호기심을 얻게 됩니다. "아 저 사람은 우리를 그런 식으로 보겠구나" 같은) 앞에 나온 이름 모를 그 중국인 여성은 "다정함을 판다"는 식으로 그는 이해합니다. p233에서 울릭은 "남자가 고독을 더 탄다"고 하며, p103에는 "고독과 맞서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울릭은 꿈에도 나바라나바를 잊지 못한다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의 눈으로, 고향 마을의 여성들과 이곳의 카블루나 여성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꼼꼼히도 분석합니다. 분석이라기보다 일차 관심사가 그쪽이니 그런 생각부터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를 "최악의 조건(p266)이라며 자학하는 아드린느에게 그는 "이누이트 사회에서라면 인기가 좋았을 것"이라 위로하며 저 앞 소설 중반부에서도 "도움"을 제안했었지만 거절당했던 적 있습니다. 그래서 아드린느가 나중에 울릭이 유명인사가 되고 난 후 집에 초대했던 건데 한 맺힌(?) 여성들의 열띤 토론을 듣고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농담)을 하자 그는 아니라고 합니다. 당황하긴 했지만 이누크(p218에서 이누크는 단수, 이누이트는 복수[종족명]라며 울릭이 명확히 설명하는 대목이 있습니다)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죠.

울릭은 용감한 사람이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북극곰 올라와 함께 영상을 찍을 때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아마 이를 본 카블루나들이 이상하게 여겼겠으나, 그는 이미 곰 두 마리를 죽인 적도 있는 타고난 사냥꾼(p68에서 자폐아 토마스가 얘기를 해 달라고 조릅니다)입니다. 다만 그는 당시 룰을 어기고 사냥을 했으므로, 이에 노한 곰의 영이 그를 벌하지 않을까가 두려웠고, 이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인과응보의 죄의식, 혹은 명예감정에 가깝죠.

울릭에게 카블루나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더 수수께끼입니다. p67에서 그는 카블루나 여성들이 "이해심 많은 남자"를 찾는다고 했을 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를 못합니다(이해보다는 동의에 가깝지만). p231에서 여성들의 대화를 듣고 난 후 울릭은 혀를 차는데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겠냐는 뜻에서입니다. p202에서는 꾸뻬 박사에게 "백마탄 왕자"라는 말이 있다는 걸 처음 듣고 자기 나름대로 "좋은 남자(줄리엣의 친구 디안[p94]이 말한)"를 떠올립니다.

당연하지만 울릭은 이누이트에게 아주 스테레오타입인 전통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습니다. p241, p244에서 그는 처음으로 "마초"라는 단어를 들었는데 무슨 뜻이냐고 묻는 울릭에게 여자들은 "한물 간 고루한 남자"라고 대답해 줍니다. 울릭이 언제나 되고 싶어했던 게 바로 그런 유형이며 이 여자들이 말하는 마초가 사실은 자신임도 눈치채게 됩니다. 아니 대체 마초가 무슨 잘못이냐, 울릭은 이렇게 생각할 뿐이지만 비단 이 부분뿐 아니라 아직은 젊은 울릭이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 점에 적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그 성숙해 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플로랑스 같은 여성은 "남자의 영을 가졌다(p108)"고 그는 여기며, p33, p180, p185 등에서 남자 없이도 자기 일을 척척 해 내는 여성들을 보고 그는 "'추장'이 될 자격이 있다"며 높이 평가합니다(p108에서 올릭은 플로랑스를 두고 "신기한 방법으로 얻은 완벽한 금발"이라 평하는데 물론 그 뜻이 뭔지는 우리가 다 잘 알죠. 한국인 중에도 많습니다). 추장은 '리더, 보스' 정도로 옮기면 적당하겠습니다. 사회에는 크고작은 다양한 보스가 있으니 말입니다.

p135에서 울릭은 "진정한 남자라면 나클리크를 타인에게서 얻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위안" 정도의 뜻입니다. 닥터 꾸뻬는 그 말을 듣고 "나는 나클리크를 파는 사람이군요"라고 대꾸합니다. 이처럼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처지 개성, 또 서로가 속한 문명의 특징을 객관화하는 과정에 깊이 몰입합니다. p81에서 나폴레옹이 많았다면 작은 문명들은 일찍 다 멸망했을 것이라고 닥터 꾸뻬가 말하자, 그를 위대한 사냥꾼으로 알고 있던 울릭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폴레옹을 침략자로 인식하는 건 독일, 영국 등의 정서인데 닥터 꾸뻬는 리버럴 성향인지 프랑스인이면서도 이러네요.

p210에서 울릭은 불과 몇 번 잤을 뿐인데도 이제 마리가 다른 남자와 자는 걸 상상도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ㅎㅎ 하긴 우리도 전 여친이 결혼했다는 소식에 분해서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울릭과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습니다.

p199 이하에는 토크쇼 장면이 나오는데 울릭은 그 당찬 여성이 객석의 파란 셔츠 입은 남자(그저 관객이며, 사실 쇼의 재미를 위해 방송국 측이 일부러 심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왜 웃어넘길 뿐인지 이해를 못합니다. 하긴 우리 나라라고 해도, 이런 쇼의 포맷과 특징에 익숙지 않은 시골 노인이라면 똑같이 이해 못 할 형식, 상황이긴 하죠. p74, p37에서 욕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누이트 사회라면 살인이 날 만했을 겁니다. p37에서 울릭은 마리 같은 용감한 여성이 왜 지나가는 남성 난폭 운전자에게 욕을 듣고도 그냥 넘기는지, 그녀의 명예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 한국에도 이런 사람은 많죠. 또 저는 p37을 읽으면서, 상대가 여자라고 무조건 무시하고 욕하는 난폭운전자가 파리에도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p162 이하에서 울릭은 마리 알릭스와 긴 대화를 나누는데, 이 대목이 현대 프랑스 돌싱 정서를 잘 보여 줘서 흥미롭습니다. 남자건 여자건 같은 또래에게는 매력을 못 느끼고 나이 어린 상대를 찾는데, 나이 어린 상대는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없으면 관심을 안 보인다는 식으로 고충을 말합니다. 물론 이는 한국도 다를 바가 없지만, 한국의 돌싱들은 또래의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게 보통이니 한국이 프랑스보다 돌싱에겐 더 나은지 모르겠습니다. 뭐 마리 알릭스의 설명에만 의한다면 말입니다.

"남자들은 누구한테 존경을 받지 못하면 불안해하며 이것이 바로 젊은 여성과 불륜이 터지는 주된 이유(p83)"라고 닥터 꾸뻬가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마리 알릭스의 전남편이자 자폐아 토마스의 아빠인 샤를르의 경우를 설명하면서 이 말을 합니다. 이 책에는 "아드린느, 샤를르" 등 예전 독자들이 더 눈익어할 만한 방식으로 프랑스어 인명을 표기하네요.

울릭은 어디서 교육을 받았길래 불어를 이렇게 잘하며, 또 특히 라퐁텐의 우화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는지 궁금했는데 중후반인 p245에 편지를 통해 어느 대위의 사연이 나옵니다. p34, 또 p234에 라퐁텐 우화가 "서울쥐 시골쥐", "무갈인의 꿈"이 각각 나오고 p234에서는 마리 알릭스가 감탄하는 장면 있습니다.

이누이트는 설령 탁월한 사냥꾼이 포획한 수확물도, 아무 노동 능력 없는 다른 구성원과 평등하게 나누는데 이것은 마을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대목(177)에서 탐욕스러운 석유회사의 CEO를 의식하여 청중들이 환호를 보내며, 그러나 셀럽이 되어 큰 재산을 지니게 된 울릭은 p233에서 이제 그것을 다른 이와 나누기 싫어졌다는 사실도 정직히 표현합니다. 물론 (스포일러) 다른 사정이 생기기도 했습니다만.

울릭은 고아 출신입니다. 고아의 삶이 팍팍한 건 이누이트 사회가 사정이 더 나쁜가 봅니다. 그래서 그 대위(p245)가 죄책감을 가졌었고(남이지만 여튼 고아를 더 돌보지 못하고 버리고 옴), p24에서 울릭은 "고아가 된 기분"을 느꼈다고 말하는데 원래부터 고아인 그가 왜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하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p270에 보면 "오랜 동안 봉인해 둔 고아의 기억"이 풀렸다고 하는데 이 대목이 앞 p24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겠습니다. p127에서 그는 "소년, 소녀, 그리고 장신의 여성"에 대해 "연결되는 느낌"을 가졌다고 하는데 p103에서 "고독과 맞서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 말의 동기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여성"보다는 "가족"이었으니 말입니다.

이누이트 족은 마치 몽골 족이 탁월한 시력을 가졌듯 신체 능력이 뛰어납니다. p116, p94에는 귀가 밝아서 남들 하는 말을 다 엿듣고(엿들은 게 아니라 그들이 설마 울릭이 자기 말을 못 들을 거라 여김), p159에는 역시 시야가 남달리 넓어서 득을 보는 장면이 있네요. 동물원(p220)에서 곰이 잠시 울릭을 보는데, 토마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지만 울릭은 그 곰에 "자신이 규칙을 어기고 죽인 나누크의 영(p18, p45)이 깃들었다고 여깁니다. p48에서 그는 TV 쇼 사회자가 매우 나이 많은 사람이면서도 꽤 젊어 보이는 사실에 놀라고, 점잖은 외모이지만 눈에 "사냥꾼의 날카로움"이 빛나는 걸 알고 더 놀랍니다. 울릭이 잘 본 것이, 그 사람이 그런 날카로운 눈이 있었기에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설 수 있었겠죠.

무슈 꾸뻬, 아니 닥터 꾸뻬 시리즈를 보며 언제나 느끼는 건, 이렇게 단순한 말을 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질문의 정곡을 찌르나 하는 점입니다. 읽다 보면 인생 궁극의 진리와 해답은 꾸뻬 박사한테 다 들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특히 p130). p139에서 그는 서구사회가 이처럼 방황하는 이유를 놓고 전통 사회가 이미 다 발견한 해답을 그들이 잊고 있으며 이제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라서라고 설명합니다. p150에서 출산율이 주는 이유를, 본디 서구는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하며, 가족이 생기면 이는 구속과 의무를 뜻하기에 그로 인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고도 설명합니다.

약간 슬픈 엔딩이지만 여튼 울릭 커플은 북극은 아니지만 비슷한 영혼을 지닌 이들이 사는 마을에 정착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영을 그곳에서 영원히 간직했으면 좋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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