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 게임 2 - 속임수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69
레오폴도 가우트 지음, 박우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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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시절의 로망 혹은 동경의 대상은 천재소년(소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직종은 스포츠스타 같은 것도 있겠으나, 이런 사람들은 잘 가꿔진 리그 안에서만 성취를 거둘 수 있고, 험한 세상 속에서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의 지혜로 해결해 가는 뛰어남, 탁월함 같은 건 역시 머리가 좋아야만 가능하겠습니다.

원판은 시리즈 제목이 그냥 "지니어스"이며, "게임"은 1편에 붙은 부제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설정 속의) 지니어스 게임에서 이 모든 난장판의 단초가 마련된 데다, 이 소설 전편에서 세 명의 주인공들은 일종의 게임을 하는 중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2편의 부제는 한국어판에서는 "속임수"라 붙었고 원판에서는 "The Con"입니다. 3편도 이미 미국에는 나와 있는데 "The Revolution"입니다.

시리즈이므로 당연히 1편부터 읽어야 옳겠으나 저도 그랬고 꼭 1편을 읽어야 2편이 이해되는 건 아닙니다. 이 2편에 1편 내용이 꽤 많이 요약되었고 인물들 각각의 성격은 2편만으로도 충분히 파악됩니다. 2편부터 읽게 된 독자들은 소설의 형식, 시점이 좀 낯설 수 있는데 세 명의 주인공 이름을 번갈아 가며 챕터 제목으로 붙였고 그 챕터 안에서는 1인칭 "나"가 제목의 이름과 같습니다. 즉 챕터 제목이 "렉스"이면 이 챕터에서 "나"는 렉스입니다. 제목이 "툰데"면 "나"는 그 안에서는 내내 툰데를 가리킵니다. 어차피 진행은 1인칭으로 가야 하겠고 세 사람의 비중이 서로 같아지려면 이렇게 해야 했겠습니다.

1편에서 세 명의 틴에이저들은 누명을 쓰고 세계의 공권력에 쫓겨 다녔나 봅니다. 1편을 안 읽은 저로서는 왜 "카이"라는 제목의 챕터에서 "내"가 "페인티드 울프"인지 몰랐는데, 화장을 하고 선글라스를 낀 일종의 부캐가 페인티드 울프이고 본명은 카이 장입니다. 여성 청소년이고 중국계인 걸로 나옵니다. 렉스가 얘를 은근히 좋아하고 라이벌이 될 만한 인물, 예를 들어 나이젤(p30) 같은 키 크고 멀쑥한 젊은 남성이 나오면 렉스가 긴장합니다. 저는 이런 사정을 소설 1/4 정도까지 읽은 후에야 자체 정리, 이해할 수 있었는데 책 뒷날개를 나중에서야 보니 이런 설명이 다 잘 요약되어 있더군요(ㅠ).

렉스와 툰데는 내내 그녀를 "울프"라고 부르다가 소설 중반 "카이 장"이라는 정체가 드러난 후부터는 본명대로 "카이"라고 부릅니다. 이것 관련, p186에 "페인티드 울프를 받아들인다는 건 카이를 지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진화한다는 뜻"이라는 카이의 말이 나옵니다. 이 장르가 영 어덜트 판타지이니만큼 이런 게 독자의 성숙을 간접 촉구하는 의도가 있겠습니다.
 
이 2권에서는 일단 빌런인 키란에게 (1권에서) 크게 당했다고 하는 세 주인공이 설욕을 해야 하는데, 키란은 "웬만한 국가 하나를 운용할 만한" 엄청난 힘을 가진 자라서 이 세 주인공이 상대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다만 키란은 세 주인공이 어떤 힘든 과업(스포일러이므로 설명 생략)을 완수하러 저 먼 나이지리아(툰데의 고향)까지 가서 분투하는 동안 그들을 찾아와서는 엉뚱한 제안을 하며 렉스를 지구 반대편으로 데려갑니다. 거기서 렉스는 참으로 오랜만에 형(예전의 어설픈 모습이 싹 가신)과 반갑게 조우하게 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맞죠.

렉스가 키란에게 설득당해 멀리 인도 콜카타의 실험실로 와 올리비아 등을 만날 때 올리비아가 렉스에게 다섯번째 실험실을 가리켜 "마이단"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줍니다. p219 각주에는 마이단이란 단어 뜻이 "페르시아어로 광장"이라 나옵니다. 음... 인도에서 왜 페르시아어 단어를 쓸까요? 북서부 인도는 역사적으로 이슬람 전투 종족이 많이 침투해 들어왔었고 이들이 페르시아 문화를 숭상한 까닭이 있어서입니다. 바부르가 세운 마지막 통일 왕조 무굴 제국도 궁정에서 페르시아 시스템을 널리 채용했고 이들은 인도 전통 문화를 몹시 경멸했습니다. 아마 2014년 우크라이나 시민혁명 당시 유로마이단이라는 말도 귀에 익을 텐데 이 역시 어원이 같습니다.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그 주변에 문화적 영향을 널리 끼쳤음도 확인 가능합니다.

이 책은 이처럼 한국의 어린 독자들이 문화적 맥락을 어려워하지 않게 세세한 배려를 베푼 게 또 큰 장점입니다. p155에는 중국의 민속춤 "앙가(秧歌)"라는 게 잠시 언급되는데 이게 한국식 한자음으로 일일이 고쳐 놓은 거라서 제가 읽으면서 놀랐습니다. 영어 원 텍스트에는 yangge라고 중국어 발음(당연하죠)으로만 나오기 때문입니다(한자는 당연히 없고). 보통 번역서에서는 이렇게까지 성의를 베풀지 않는 걸 감안하면 정말정말 마음에 드는 태도입니다.

p210에서 키란은 여튼 약속을 지키죠? 우리나라에도 디지털 장의사라는 게 있지만 키란도 세 주인공에게 어떤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하므로 전과(누명이지만)로 얼룩진 그들의 과거를 싹 지워 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스포) "페인티드 울프는 죽었다. 페인티드 울프 만세!"는 "The king is dead! Long live the king!"의 패러디입니다.

p236에서 툰데는 자신(들)의 과거, 이메일이나 기타 웹의 소소한 기록 포함 모든 게 지워진 줄 비로소 확인하고서도 그리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유를 찾은 기쁨이 압도적으로 더 커서이겠지만, 툰데의 다음 말은 우리 모두가 새겨들을 만합니다. "친구들, 이런 것들은 덧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어른들도 쓸데없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상실에 미련을 갖곤 하지 않습니까?

소설은 세 주인공이 전지구적 음모를 분쇄하러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니만큼 스케일이 큽니다. 나이지리아의 자연 풍광 같은 게 아주 세밀히 묘사되는 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p248의 바오밥나무 같은 건 <어린왕자>에도 나오던 거라 반갑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게, 정작 가까운 미래에 첨단 기술로 등장하는 건 공간이동 수단이나 광선검(...) 같은 게 아니라 이처럼 발전된 네트워크입니다. 망의 원리를 이해 못하면 세 주인공 같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또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아날로그식 기계 수리, 설계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한 사람은 코딩의 천재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기계 수리에 취미를 들이라고 권하기는 좀 그렇지만, 코딩은 이제 미래 사회에서 어떤 직업에 종사하건 필수 소양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아키텍처도 이 판타지 소설 안에서 일상용어처럼 언급되는데 어른 독자들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뭐 잘 몰라도 소설 즐겨 가며 읽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말입니다.

1권부터 먼저 찾아 읽어 보고 이후 국내에 번역 출간될 3권을 기다려야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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