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은이 소통하는 법 - 일에 관한 열 가지 생각
강주은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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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날개를 보면 강주은씨는 "아주 젊은 나이에" 한국에서 당대 최고 배우였던 분과 결혼한 걸로 나옵니다. 일반인들 눈에는 그후 남편분이 여러 불운을 겪으며 커리어가 적잖게 손상된 터라 부인분이 참 힘드시겠다 생각을 한 게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TV에는 유명배우의 부인 자격으로 자주 출연하는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부인, 아니 강주은씨 본인 역시 분명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당차게 자신의 삶을 일궈나가는 분이었고, 그간 어려움이 적지 않았는데 여러 시련을 딛고 멋진 인생을 개척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p.8~9(국문), 그리고 pp.10~11(영문)에는 저자가 쓴 머리말이 나옵니다. 저자(여기서는 인터뷰이)는 영문 머리말을 먼저 쓰고 이를 다시 한국말로 옮겼을까요? 본문은 담백하고 진솔한 그녀의 인터뷰 형식 글이 이어 실려 있습니다만, 유독 이 짧은 머리말은 약간 어렵게 느껴졌는데 그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저자의 진지함과 성실함이 드러나는 것도 같아서요. 보통 책들은 머리말이 쉽고 본문이 어려운데 이 책은 반대입니다. 또 여기 나온 "일관성"이라든가 "일할 때의 나 또한 나의 모습"이란 말은, 같은 출판사에서 낸 첫번째 인터뷰 책을 염두에 두고 한 표현 같습니다. 인터뷰어는 열린책들 에디터 김미정씨라고 합니다.

첫 책을 내고(2017) 난 후의 변화, 느낌에 대해 그녀는 "인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합니다. 독자가 된 이들이 말을 걸어 오는데 책이 아니었으면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을 분들이고 시청자나 팬 외에 새로 "독자들"을 만나게 된 소감인 것 같습니다. 이분들과 소통하면서 "나만 이상한 남편과 사는 게 아니구나" 같은 느낌도 받았다고 하는데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겠습니다.

강주은씨의 경력에 대해 저처럼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이 독후감에다 p31에 나오는 사항을 좀 적자면 서울외국인학교에서 13년 동안 대외협력이사와 부총감을 역임했으며, 홈쇼핑 "굿라이프"에서 메인 호스트로 현재 4년째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이를 두고 인터뷰어는 "소통 전문가"라고 요약합니다. 김미정씨 표현대로 "전혀 다른 직종"인데, 이를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한데 묶어낼 수 있다는 게 조금 놀라웠고 동의도 하게 되었습니다.

"소통"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 남의 생각이 나와 전혀 다를 수 있고 그게 보통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주은(이하 경칭 생략)은 먼저 거론합니다. 소통은 확실히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봐야 능숙해질 텐데, 강주은은 어렸을 때(17세)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그 중에는 고급 패밀리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캐나다에서 나고 자랐음도 다시 상기해야겠습니다. 손님들 중에는 별의별 유형이 다 있고, 복잡    한 주문을 여튼 접수하여 주방으로 가면 인도 출신 요리사들이 "그 미친 사람(손님) 또 왔군!"이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낙천적이고 유쾌한 어린 강주은도 크게 따라 웃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식당 운영자는 그리스인이었다고 하니 참 다국적스런 체험이었겠습니다.

요즘 바이든 정부의 미국에서도 최저임금 관련 팁 문화가 없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여튼 북미는 팁 문화의 발달이 참 독특한 전통입니다. 어린 강주은은 일도 싹싹하게 잘했을 것 같고 팁도 넉넉하게 받는 편이었다고 하네요. 그런가 하면 손님 중에는 아무리 좋은 서빙을 받고서도 팁 없이, 혹은 7센트 정도만 남기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 <맨 인 블랙 3>에서 K가 팁을 깜빡 잊자 우주의 혜성이 이를 응징하러 지구에 날아오던 장면이 잠깐 생각나기도 했습니다(팁을 주고 나자 방위 시스템이 잘 작동하여 바로 파괴).

그녀는 실패에도 매력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말이 쉽지 실패를 통해 시행착오의 표본을 모으고 교본으로 삼는다는 건 자계서에나 나오는 교훈일 뿐 우리 같은 일반인이 실천하기가 참 힘들죠. 적어도 강주은은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는 분명한 팩트에 기대어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인 듯합니다. 우리는 간단한 저 말조차도 실패의 순간 바로 떠올리기 힘듭니다. 자책을 넘어 자신의 내면에 건설적이지 못한 깊은 상처까지 남길 필요는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

아버지도 한국인이고 자신도 한국인인데 카투사로 군대를 간다면 쉽게 가는 거라고 다들 여길 것 아니냐. 방송에도 자주 나와서 시청자도 친숙한 그 아드님이 저런 말(p74)을 했다고 합니다. 동두천 카투사 나와서 무슨 대단한 고생이나 한 양, 경우에 따라 (실제로는 아주 변변찮은) 영어 실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던 제 주변 누구하고 참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대체로, 인간 못된 건, 근거 없는 허세는 허세대로, 피해의식은 피해의식대로 정신에 고이 간직하는 경향이 있죠. 아들분의 군 복무 이슈로 인한 마음고생은 책 중후반 p196 이하에 나옵니다.

사람에 따라 꼭 고생을 하지 않아도 철이 일찍 드는(p81) 유형이 있던데 책 읽으면서 이분이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참고로 저 평가("철이 일찍 듦")는 인터뷰어의 말입니다. 그런데 "첳이 든다"는 것의 정의가 뭘까요? 그냥 세상사 고생스러운 걸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다소 비관적인 세계관을 갖게 된다? 남을 비교적 잘 도와 주게 된다? "독립된 정신 자세, (내면의) 단단한 나"를 갖게 되는 것 아닌지, 이 인터뷰에 나온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리도 생각됩니다.

"상대방이 나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든 실은 상관이 없어요(p93)."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내가 나에게 만족스러운 사람이 일단 된 이상, 누가 자신을 깎아내린다, 혹은 심지어 "바보 취급"을 한다 해도, "단단한 자아"가 나를 긍정 평가해 주는 이상 신경 쓸 게 없다는 뜻입니다. 누구든 간에 한국 같이 스트레스가 많은 대인관계가 이뤄지는 사회에서는 이런 평판 이슈 때문에 신경 안 쓰고 살기가 정말 어려운데, 이 대목을 읽으면서 참 달관의 경지에 도달하셨구나 싶었습니다. 아니 그리고, 일단 이처럼 흔들림 없는 단계에 딱 들어서면, 주위의 나쁜 평판(모함, 악평, 험담 등)도 수그러듭니다. 그런 사람을 저도 실제 주위에서 본 적 있습니다. 희한하게 그런 분들은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서로 닮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 강주은은 "어떻게 보면 (내가) 뻔뻔하죠"라고 덧붙입니다. 이런 최소한의 자기 성찰이 또 따로 작동하기 때문에 정말로 뻔뻔하고 공감 불능이 되는 걸 막아 줍니다. 사실 자기 주제를 전혀 돌보지 않고 남 욕하는 악질들이야말로 정말 뻔뻔한 건데(=그런 욕을 들어야 마땅한 건데), 그런 뻔뻔한 자들의 뻔뻔한 짓에 개의치 않는 사람(피해자)이 오히려 "내가 지금 뻔뻔한 게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한다는 게 정말로 기가 차죠.

한국에서 진짜 남 탓 안 하고 자기 일 열심인 워킹맘들이야말로 어찌 보면 불쌍하고 어찌보면 사람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 보살님들입니다. 아니 자기 일에 열중하기도 바쁘고(조금만 늦어도 집에 가서 애나 보지 뭐하러 회사에서 자리 하나를 차지하냐고 타박), 일을 잘하면 잘하는 대로 여자가 별스럽다며 잘난척한다며 또 흉을 보고 욕을 합니다. 남자가 일에 열중이면 감히 접근 못 하고 존중을 받습니다만 여자가 일을 하면 뭔 급한 것도 아닌 걸 갖고 구태여 찾아와서 귀찮게 합니다. 이런 일이 남이면 또 모르겠는데 가장 자신을 잘 알아줘야 할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주은씨 남편분도 "내가 만든 미니어처 어때?"라며 한창 바쁜 타임에 사진을 보내 오는데 강주은씨는 오히려 (속으로 엄청 짜증이 나겠지만도) 일부러 더 맞장구를 쳐 준다고 합니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이게 간단해 보여도 예사 경지가 아닙니다.

서울외국인학교에서 "대외협력이사"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직책인지 궁금해하는 독자도 많을 것 같습니다. p134에 나오는데 우리 생각, 또 에디터분(인터뷰어)의 생각과는 좀 다른 듯도 보입니다. 그러나 홍보물의 체계적인 제작, 졸업생 소식의 알림 등은 역시 그런 업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파티 기획, 기부 권유 등은 역시 이런 일은 강주은씨 같은 인사가 아니면 힘들겠구나 싶었습니다. 생각이 그에 미치고 나서, 아, 말하자면 영업이다, 또는 홍보다, 이런 게, 결국은 다 소통의 문제, 혹은 "진정성 있는" 소통 문제구나 하고 결론이 나더군요. 사실 요즘은 기계적이고 노련한, 가면을 쓰고 세련되게 진행하는 소통이 얼마나 또 넘쳐나는 세상입니까.

강주은에 의하면, "팀장의 역할은 팀원의 장점을 잘 알고 칭찬해 주는 것"이 중요한 하나입니다. 이 역시 마지못해 하는 칭찬, 혹은 아첨 같은 게 아니라(팀원한테 아부할 일은 많지 않겠지만) 기회를 주고 (강주은 자신이 진정으로 그의 장점으로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알려 주고 전체를 튜닝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사실 조직에서 일을 하다 보면 민원처리가 가장 골치 아픈 부분입니다. 강주은은 "한국 사람은 각자의 특별한 장점, 이야기, 재능이 많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많다는 건 그냥 말이 많다는 건지, 재능이 많다는 건 실제로는 재능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착각들을 많이 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순수한 분 말을 의도적으로 곡해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죠). 강주은은 17세 때에도 미친 손님을 레스토랑에서 서빙한 적 있지만, 외국인학교 재직 중에도 "어떤 미친 할아버지"를 상대한 적 있다고 회고합니다.

사실 그렇게 보였을 뿐 그는 오히려 이 조직에 공로가 많았던 퇴직자였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많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워낙 진또배기 악질 진상이 많아서도 있고(그런 것들에 비하면 저분은 선녀), 정당한 요구나 의사표시인데도 이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많아서이기도 한데 북미에서 살다 온 분이 이런 걸 보면 "미쳤다"고밖에 생각이 안 될 겁니다. 이런 건 (좀 부끄럽긴 하나) 아직은 문화 차이입니다. 물론 앞으로는 다 극복이 되어야 할 부분이겠지요.

"남편은 산에, 아이들은 어리고, 부모님은 캐나다에 계시고...(p166)" 보통 시청자들은 그녀가 대학생 시절 미인대회에 입상한 경력 때문에 그저 평탄한 길을 무난히 힘 안 들이고 걸어온 사람으로 여기지만 아리랑TV에서 프로그램 진행을 할 때의 회고를 보면 그런 것과는 거리가 꽤 멀었네요. 남편분이 유명 배우(그 이상이었지만)라서 방송일에 조언을 받거나 인맥을 얻을 수 있겠다 같은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그야말로 모멸과 실망, 고난의 연속 같았습니다.

아들의 군 복무에 대한 큰 논란도 사실 그녀에게 큰 잘못이 없건만 일단 터지고 보니 아들 본인이나 강주은씨나 패닉이었습니다. 스스로를 "패닉 초보"라고 말하는데, 이때 남편분한테 탁월한 조언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대로 가능한 한 빨리 말하는 게 가장 좋아." 강주은씨는 여기서 남편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기술"을 극구 칭찬합니다. 언론을 잘 아는 최고의 전문가라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 시청자들도 그 예전 사연을 어느 정도 알기에 이게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로 안쓰럽고 씁쓸해지는 대목입니다.

나이가 80이 넘은 대기업 사모님인데 이제서야 대중교통을 타고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분이 강주은씨 지인 중에 있다고 합니다(p227). 물론 그런데요... 이런 분들이 새로 눈을 떴다고 말할 때에는 그저 감정적인 부분, 혹은 인생의 내밀한 통찰일 수도 있지만 그를 넘어 비즈니스 관련 현실적인 개안일 수도 있습니다. 전에는 예사로 보아 넘기던 게 이제는 어떤 아이디어와 연관된다면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자신의 일에 거의 확신, 성취, 이런 게 일정 부분을 넘어서고 나서 고르는 차가 "포르쉐"인 경우가 꽤 있던데 그냥 우연일 수도 있겠으나 p242에서 강주은씨도 그 얘기를 합니다. 해당 브랜드가 벤츠처럼 너무 속물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랜저처럼 별 느낌 없는 낡은 업그레이드 같지도 않고, 뭔가 자기만의 뿌듯한, 그러면서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룰 만한 성취를 상징할 수 있어서인 듯합니다.

앞에서 실패에 대해 특별한 자세를 갖고 임하는 강주은씨의 소신이 언급되었는데 p272 이하에서 특히 그녀는 "기다리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영어는 "톤이나 단어 사용하는 방법이나 표현, 분위기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나(p299)" 한국어로는 어떻게 말할지 전혀 기준이 안 잡히더라고도 고백합니다. "허벌나게"라는 말을 썼다가 주변에서 다 웃던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영어도 점잖은 자리에서 갑자기 중북부 북유럽식 억양, 어휘라든가 남부 사투리를 (그쪽 배경 없는 외국인이) 구사한다면 매우 우스울 것입니다. <엄마가 뭐길래>는 지인인 황신혜씨가 추천(p310)해서 출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역시 셀럽들이라서 일반인 눈으로는 매우 생소하거나, 역시 저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다 싶은 얘기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여전한 문화 배경 차이에 기인한 것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사람 사는 모습은 근본적으로는 다른 게 없습니다. 셀럽이라 해도 오해와 의사 충돌 때문에 트러블을 겪는 건 같고, 이런 데서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결국 일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하나의 일을 오래하는 사람은 다 각자의 비결이 있기 마련이고, 그녀의 진솔한 고백에서 배우는 바가 많았습니다. 사진이 많이 실려서 마치 인터뷰 장면을 직접 보는 느낌(인터뷰 하는 사진들은 물론 아니지만)도 좀 듭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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