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컨버세이션: 대담한 대담
황창규 지음 / 시공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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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 전 KT 회장, 전 삼성전자 사장은 메모리에 관한 한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누리기도 하는 분입니다. 물론 그는 슈퍼 엔지니어, 성공적인 경영자로 더 널리 알려진 인사이지만,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 경영자로서 쌓은 업적이 저 짧은 어구 안에 압축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죠. 물론 그 워딩의 기원은 "18개월마다 2배로 CPU의 성능이 증가한다"는 무어(p93)의 법칙이긴 합니다만.

황 회장은 프롤로그에서 "나는 참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회고합니다. "불과 20대 초반에 평생 해야 할 공부의 주제를 잡았고...(중략)... 좋은 스승을 수도 없이 만났으며, 평생 기술자로 살 줄 알았으나 나의 그릇을 키워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경영에서도 백전 노장이 되었다..." 그는 민간 기업계에서 거칠 수 있는 자리를 거의 다 거쳤고 이후에는 지식경제부에서 국가 CTO의 역할(p176)까지도 맡게 됩니다. 한 개인으로서 이만큼이나 누릴 수 있는 영예와 성취를 다 누린 인생도 극히 드물 것입니다. 그는 매산 황영두 선생의 손자이기도 합니다(p311).

그는 자신을 이끌었던 스승으로 이건희 회장, 클라우스 슈밥(p274), 스티브 잡스(p156) 같은 이들뿐 아니라,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순신 장군 등도 함께 꼽습니다(책 중반쯤에 보면 앤드류 그로브도 나옵니다). 한 기업, 아니 고작 한 부서, 한 팀이라고 해도 자신을 따르는 그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달린 프로젝트를 완성도 높게 마무리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십수만의 생계(좀 과장하자면 이제 수천만이라고 해도 될)가 달린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세계 톱으로 이끌었고, 위에 언급했듯 지경부 전략기획단 단장의 자리에 올라서는 나라의 반 세기 먹거리감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충무공 같은 분은 반만년 역사에 다시 나오기 어려운 성웅이지만, 기업의 성패에 걸린 수많은 이들의 생계와 국가의 장래가 달린 과제의 방향성을 걱정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방향성의 차이가 없습니다.

작금의 젊은 세대 누구나 자신의 스펙을 걱정하고 젊은 배우자의 인생마저 두 어깨에 짊어지고 책임감을 느끼겠습니다만, 이런 분의 삶의 궤적으로부터 진지한 공부를 하고 롤모델로 삼는다면, 장차 험난한 경쟁을 이겨내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정도에야 아마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네.

우리는 아주 예전, 즉 삼성 창업주 이병철씨가 삼성의 미래를 반도체에 "올인"으로 결정하던 당시 그가 그 이른 시점에서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 궁금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1994년, 즉 그의 아들인 고 이건희 회장이 다시 한번 기업의 방향성을 어떻게 잡을지를 놓고 고심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1994년이면 삼성이 지금 같은 위상이 아직은 아니었으며 해외에 나가도 브랜드를 거의 못 알아보던 시절입니다.

이때 이건희 회장은 명품 TV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듣고, 다음으로 해당 분야 개발 총책임자 황창규 이사(당시)에게 반도체에 대한 설명을 듣는 순서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삼성에서 이사를 달았다면 엄청 대단한 줄 알지만 사실 그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사내에서는 그냥 그렇게들 본다고 합니다(하물며 부장이라면 뭐...). 이사라고 해도 건물 안에서 어쩌다 그룹 회장을 스쳐지나가기라도 하면 온몸에 긴장이 바짝 도는 그 정도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건희 총수를 포함 사장단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반도체에 대한 것이 TV 같은 직접 소비재(아무리 명품이라서 극소수 하이엔드에만 어필하는 제품이라고 해도)에 대한 것처럼 피부에 와 닿을 수는 없습니다. 분위기는 겉돌기 쉽고, 결국 명품 TV에 관심 순위가 슬슬 밀려가는 듯했습니다. 황 이사가 밀리면 그를 믿고 여태 온갖 정열을 쏟아붓던 기술진, 다른 인력들도 모두 삼성 내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겁니다.

"회장님, 미국 인구가 몇인지 아십니까? 2억 7천만인데 그 중에는 사회에 짐만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1개의 반도체(엄지손톱만한 크기. p22)에는 2억 7천만 셀이 들어가는데 그 중 하나만 불량이라도 생기면 이걸 팔지를 못합니다."

1994년이면 상당히 젊은 나이인데도 어떻게 이 당시 벌써 이사였는지 궁금해할 독자도 있겠습니다. 저때로부터 몇 년 전 삼성은 해외에서 천재급 인재를 스카우트 중이었고, MIT를 거쳐 스탠포드대 연구실에 봉직(책임연구원. Reaearch Associate. p248)하던 황창규씨는 당시 교수 제의도 마다하고 "일본을 이겨 보겠다"는 일념으로 삼성에 왔다고 합니다(p20). 당시 이미 저자는 인텔의 컨설팅도 진행한 경력이 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저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정확히 가늠할 수 있었고,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이런 천재형 인간에게는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겠습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마세요." (p298. 문재인 대통령)

MIT 박사과정에서 데이비드 네이본 교수가 스승 중 한 분이었는데(p244) 이미 이 당시에 갈륨비소가 재료로 주목되었었네요. 지금은 질화갈륨이 또 시선을 받고 있으며 관련 종목 주가가 들썩거립니다.

당시 삼성이 제의한 자리는 임원이었는데 그래서는 연구 개발 실무에 전념할 수 없다 여겨 그는 자청해서 부장직(소자개발팀장. p195)을 원했다고 합니다. 이사가 된 건 그때로부터 3년 후라고 하네(p21)요. 여튼 부장이건 이사건 삼성이라는 조직 안에서 그닥 큰 존재감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걸 염두에 두고 저 일화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사실 일류, 천재 연구진, 엔지니어라고 해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저런 상황에서 격에 튀는 순발력을 발휘, 혹은 애드립을 치기란 쉽지 않습니다.

2001년, 도시바가 삼전에 조인트벤처를 제안합니다. 앞선 제안을 삼전에서는 거절했는데 다시 도시바가 형식을 조금 바꿔 수정 제안을 한 것입니다. 받아들이면 삼전은 도시바와 안정적으로 시장을 나눠 먹으며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거절하면 삼전은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강자로 도약할 수 있지만 그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황창규 등 삼전이 보유한 천재들의 포텐을 아직 그저 포텐으로만 계산한다면 말입니다.

"PC 시대에는 D램이 그저 CPU의 보조 정도였으나, 모바일 시대에는 저전력 모바일 D램이 핵심 부품이 됩니다. 플래시는 일부 기술만 보완하면 향후 우리가 세계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p28)." 이 비슷한 결론을 크리스텐슨 교수도 도출했으며 p94에 다시 언급이 나옵니다.

이런 태도, 시각은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쪽과는 거리가 멉니다. 상당 부분 본전을 날릴 각오를 하고 도박하는 체질, 기질, 배짱이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은 선대 창업주 시절부터 최고 인재를 대우하는 풍조가 있었고 2001년 기준 충분한 인적 자원, 또 그들이 쌓아 둔 지적재산이 넉넉했기에 이런 "도박"이 가능했을 터입니다. 분수나 역량을 모르고 무작정 도박하는 기질이라면 당연히 가진 것도 다 날리고 거지꼴이 될 것입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같은 심정으로 올인하는 건 흔히 봅니다만, 저 당시 삼성이면 당연히 잃을 게 훨씬 많은 시절이죠. 참고로 저 당시에 한국 대기업 중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다 망한 곳이 60%가 넘습니다. 동아, 대우, 한보, 해태, 쌍용, 한국일보... 가진 사람에게는 가진 대로, 도박은 진짜 위험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D램이 없어진다는데?"

이건희 회장은 20년 전에 저 말을 했습니다만 아직도 삼전은 D램이 먹여살리며(아직은요) 현재 D램은 수익성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이긴 합니다만 2001년 저 시점에 벌써 포기하고 안정적 수익만 추구했다면 오늘날 삼성은 벌써 쪼그라들었을 것입니다. 플래시는 몇 달 전 SK가 거액을 들여 사업부문을 사 왔고, 삼전은 파운드리 최강자 자리를 대만의 TSMC로부터 뺏어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20년 뒤에 우리는 과연 지금 이 시점을 어떤 처지에서 회고하게 될까요?

저자 황창규씨는 20년 전 저 시점을 "삼성의 운명을 바꾼 순간"으로 이 책에서 자리매김합니다. 아마도 황창규 회장은 일류 엔지니어치고는 정말로 보기 드물게 현상타파 대도약을 선호하는 기질이며 이 점이 이건희 회장과 죽이 참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건 근데 실력이 되어야 가능하지, 준비도 노력도 안 된 일반인이 함부로 따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도시바가 당시 저런 제안을 한 건 벌써 레이스가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로, 기아차는 작년 하반기에 애플로부터 공동으로 애플카를 개발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바로 거절했습니다. 장래를 보면 자측이 잃을 게 더 많겠다는 계산과 미래차 시장에서의 자신감에 바탕한 결단이겠는데 어디 과연 어떻게 될지, 20년 전의 삼전 같은 길을 걸을지 아니면 어설픈 따라하기, 만용이 될지는 지켜 봐야 알 것 같습니다. 한국의 장래를 위해서는 전자가 되어야 하겠지요. p261에 정의선 부회장(당시)를 만난 이야기도 나옵니다. 참고로 p164에는 이재용 상무(당시 직책)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스티브 잡스를 만났을 무렵 사연이며 이 당시 잡스가 직접 저자에게 "언제까지 '황의 법칙'이 지속됩니까?"라고 물었다고도 합니다.

미래차 사업의 성패 여부에 확실히 기업의 현재 판도가 모두 바뀔 판인데 테슬라는 이제 힘든 고비를 넘기고 애플 같은 기업으로 도약을 하나 싶었는데, CEO의 정신 상태가 저래서는 힘들 듯하네요. 애플은 잡스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다른 여러 유능한 인재들이 있었고 견제와 협력 작용이 다양하게 이뤄졌습니다.

다만 음... 이 책에서는 일론 머스크(p108)를 높이 평가하며, 특히 젊었을 때 물리학을 깊이 연구한 데서 연유하는 그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자가 최전선에서 뛸 무렵만 해도 머스크는 그저 괴짜 정도로 여겨졌으나 저자는 일찍부터 그의 탁월한 비전을 알아봤다고도 합니다.

순전히 주가 상승만 놓고 보면 "슈퍼팬을 만들어 끈질긴 충성도를 유지하며 회사 성장의 원동력을 만드는" 머스크의 락스타 같은 맹매력을 결코 경시할 수 없으나, 이제 그의 힘도 한계를 드러내는 듯합니다. 다만 이 책이 작년 이맘때쯤 나왔더라면 한창 테슬라에열광하던 젊은 동학개미들에게 큰 공감을 불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머스크하고 황 회장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선입견이 있으나 황 회장이 kt 회장도 역임했고 미래차는 5G(혹은 그 후세대 통신망)를 이용한 자율주행이 핵심인 데이터 기반 사업임을 염두에 둔다면 둘 사이에 자연스럽게 연결 지점이 마련됩니다. p255에는 프로야구단("위즈")도 이분이 간여한 대목이 나옵니다. 지금 위즈는 리그 선두를 다투는 강팀이 되었는데 현재 모기업에서 관심이 없다거나 심지어 매각 이슈가 나온다는 루머가 있긴 합니다. 간신히 자리를 잡았는데 경기도 젊은 팬들의 성원도 있고 계속 갔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이 독판치는 식이 되어서는 기업이 잘될 수가 없으며, 이 책에서 황창규 회장도 "자신을 도운 여러 인재"들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타고난 머리의 힘만으로 뛰어난 엔지니어가 될 수는 있어도, 장기 전략을 정확히 수립하고 미래를 꿰뚫어보며 직원들을 다독이며 함께 나가는 경영자 노릇은 혼자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이건희 회장은 그에게 상급자, 고용주였을 뿐 아니라 "스승" 노롯도 겸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참 대단한 건, 1994년 저 시점에서 이 회장이 설명 받은 반도체는 말할 것도 없고 명품 TV 역시 저때로부터 대략 10년 후 유럽 시장에서 보르도 브랜드가 엄청 대박이 났다는 것입니다. 둘 다 1994년 시점이라면 "에휴 한국에서 무슨 명품이고 정밀부품이고가 가능한가? 주제를 알고 일본에서 주는 하청 일이나 그냥 열심히 하지" 당시에야 뭐 다들 이런 생각 아니었겠습니까.

그가 책에서 이 충무공을 여러 번 언급한 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서울대 공대에서 석사까지 하고 유학을 가야했는데 군 복무를 마치기 위해 해사에서 교관으로 임관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때 난중일기 원본도 볼 수 있었는데 "각오하고 나아감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이 충무공의 정신에 특히 공명했다고 합니다. 제가 아까 과감한 기업 전략의 수립에 도박사 기질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사실 이분한테는 좀 실례가 되는 말이겠죠. 그는 젊어서부터 최전방 야전사령관의 비장한 결기를 습득할 기회가 있었던 셈입니다. "의기(意忌)"란 말이 p71에 나오는데 이건 맥락에 맞지 않은 오타이지 싶습니다. 意氣 혹은 義氣가 맞겠죠.

2001년에는 그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서도 중요한 사건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글로벌 톱이었던 노키아가 10위권 밖의 업체였던 삼전에 기한을 제시하며 노어 플래시 제조를 위탁했던 것입니다. 노키아에 납품이 보장되면 삼전의 위상은 크게 올라가겠으나 기한 내 납품이 가능할지가 의문이었으며 이때 저자는 충무공이 느꼈을 법한 긴박감과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의 성공은 그저 매출액의 대폭 신장에 그친 게 아니라 플래시 시장 전체의 판도를 바꿔 놓았습니다. 즉 노어플래시의 속도, 낸드플래시의 용량(각각의 장점)을 합쳐 "원낸드"라는 새로운 제품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노키아에의 납품을 통해 이를 현실화한 것입니다. 특히 그저 기술적 장점의 구현에만 그치지 않고 "인터페이스" 자체를 바꿔서 상대에게 확신을 심어 주는 등 삼전만이 할 수 있는 전사적 역량을 동원한 쾌거였다고 할 만합니다.

파괴적 혁신은 그저 기존에 잘 되던 방식만 폐기하는 게 아니라, 잘되던 거건 아니건 간에 시대 조류를 앞서가기 위해 선제적으로 모든 것을 갈아치우는 걸 뜻합니다. p342에는 "무너질 둑이라면 (진즉) 무너지는 게 맞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인텔은 당시만 해도 세계 정상을 달리던 기업이었으나 (얼마 전 타계한)크리스텐슨 교수는 이때 벌써 해당 기업의 취약점을 내다보고 "파괴적 혁신"을 설파했습니다. 저자도 교수의 저 논문(저가의 전통 기술이 오히려 시장을 주도하고 성장 동력이 된다는 요지)을 읽고 사장단 회의에서 거론했으며, 나중에 황의 법칙으로 일반화한 이론도 실은 크리스텐슨 교수의 학설이 반도체 시장에 응용된 결과입니다.

앤디 그로브 인텔 CEO는 시사주간 TIME에서 1990년대 내내 토픽으로 다룰 만큼 거물이었지만 1980년대에도 유명했었고 황창규 저자는 이미 1988년에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아직은 장래가 촉망되는 연구원 혹은 초보 컨설턴트 신분이었겠지만 말입니다. 마치 이효리가 팬으로서 열광했던 강타를 실물로 처음 보고 설레어하며 팬으로의 충성심을 고백하던 장면을 떠올리게도 됩니다. ㅎㅎ

앤디 그로브도 망명자 핏줄인데 故 스티브 잡스도 그렇고 현재 미국에서 기업 CEO로 종횡무진인 인도계 인사 수십 명도 그렇고 미국은 참 이민자의 나라라는 게 맞는 말 같습니다. 저자 역시 젊어서 미국에 유학했던 "이방인"으로서 사실 정통파 미국 주류 사회라면 쉽사리 용납이 안 되는 면이 있었을 텐데 저런 아웃사이더 출신 CEO 대선배들이 그에게 동질감을 느껴 한 손을 내밀어 준 덕분이 없지 않다고 회고합니다.

칼리 피오리나는 저도 예전에 그녀가 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을 읽고 독후감을 쓴 기억이 나는데 5년 전 미국 대선 공화당 예비 경선에 나왔다가 트럼프(p278)에게 고배를 마셨었죠. 황 저자는 "엔지니어 출신도 아닌 그가 어떻게 특별한 안목을 지닐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가 분석했던 바를 책에서 말합니다. 황 저자는 개인적으로 엄청 바빴을 시점에도 책을 참 많이 읽으신 것 같습니다. 본인 자신이 위인급이니까 다른 책에서도 장점을 쏙쏙 잘 찾아내는 거겠죠. 매경지식포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이 많이 참여하는데 04년 이 자리에 피오리나 CEO, 폴 케네디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 황 저자, 로버트 먼델, 모리 요시로(그 몇 년 전에 일본 총리를 잠시 지냈었습니다. 얼마 전에 설화를 일으켜 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죠) 등이 연사로 초청되었다고 합니다.

황 저자는 이 책 여러 곳에서 "노마드 정신, 칭기스칸 기백"을 여러 차례 강조하는데 아마 2000년대 당시에는 이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정동영 장관도 "몽골 기병 정신"을 강조했었죠.

TSMC社도 그렇고 美 엔비디아도 그렇고 이쪽 업계의 뛰어난 인재는 확실히 대만쪽이 많습니다. 2002년 SF 매리엇에서 학회가 열렸을 때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를 만나 "같은 황씨를 만난 반가움"까지 느꼈다고 합니다. 엔비디아는 지금도 팹리스(fabless)로 유명하지만 당연히 훌륭한 fab을 만나야 흥할 수 있으며 p227에는 히타치의 팹을 견학한 기록이 나옵니다. 세계적으로 PC, 인터넷 붐이 일며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같은 회사도 이 무렵부터 일반인들도 그 이름을 알 만한 회사가 되죠.

신소재 그래핀은 황 저자와 거리가 먼 전공 분야인데도 CEO의 안목으로 일찍부터 알아본 듯합니다. p235에 처음 언급이 나오고 몇 페이지 뒤에는 최재영, 김필립 박사 이름도 나옵니다. p262에는 지경부 단장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삼성에서 일개 팀장으로 일할 때보다 단장으로서 정부 예산 따기가 더 힘들어 보입니다.

아직도 코로나 때문에 전 지구인이 고생입니다. p405에는 GEPP라는 말이 나오는데, 글로벌 감염병 확산 방지 플랫폼의 약자입니다. 빌 게이츠 등 여러 유명 인사들도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며, 21세기에 들어 사스, 메르스 등으로 고생한 인류 초미의 관심사가 감염병이니만큼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최우선순위의 토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빌 게이츠는 p276에도 약간 살이 찌고 늙은 모습으로 나옵니다.

책에서는 "자발적 광기"라는 말이 p251 등 여러 군데에 나오며 이 문구가 젊은 시절의 자신을 특징짓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p371에서 이용규 KT 상무 같은 이는 표준규격에 대한 합의가 지지부진해지자 "안 되면 여기서 내가 뛰어내리겠다"는 결연한 태도도 보입니다. 진심과 절실함은 언제나 길을 열어 주게 마련이며(p341) 아직 많은 시간이 남은 젊은 세대는 실패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과 미래를 향해 "대담한 대담"을 시도할 것을 충고합니다. 황 회장과 이 책을 통해 간접 대담을 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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