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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어디에서 왔어? - 9살의 빛 ㅣ 안 가르치는 책
황이산 지음 / 하빠꿍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안 가르치는 책" 사실 누가 뭘 얼마나 그렇게 많이 알아서, 타인에게 가르치려 들겠습니까.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이 비웃음의 목적으로 쓰이듯, 남자가 여자한테건 혹은 어른이 어린이에게건 일방적으로 뭘 가르치는 건 벌써 소통의 실패를 암시, 예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는데 이 책의 저자인 황이산 어린이는 "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도" 어른 독자에게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면 저자님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당연히, 그건 아니고 오히려 훌륭한 소통에 성공했다고 봐야죠. 이 책은 "안 가르치는 책"이지만, 책의 기획, 편집자인 최미희 선생님(동시에, 하빠꿍출판사의 대표)은 다음 번에는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 것에 관한 고민과 구상을 담아내"실 계획이라고 합니다. 역시 기대가 되네요. p10을 보면 최미희 선생님이 아마 황이산 어린이의 엄마이기도 한 듯합니다.
저자인 황이산 어린이는 현재 12살이며 이 책은 그가 9살 때 그림을 그렸고 11살 때 "책을 꾸리는 작업"을 마쳤다고 합니다. 또 기획자의 의도는 "다른 어린이 독자들이 이 책에 그림도 그리고 글도 넣으면서 책을 매개로" 9살 어린이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p6). 사실 독서를 마치면서 하나 아쉬웠던 게, 이런 기획 의도에 맞게 저도 어린이를 하나 데려와서 그림도 그려 보게 하려고 했는데 해당 어린이의 사정상 그렇게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라도 한번 권해 볼 생각입니다.
"엄마 나는 어디에서 왔어?" "하늘나라에 있다가 네가 엄마를 선택해서 지구에 온 거야." "그럼 죽으면 어디로 가?" "다시 하늘나라로 가지."(p12) 이 대화는 참... 출생과 죽음에 대해 가장 간명하고도 희망적으로 설명한 것 같습니다. 생각은 잘 안 나지만 내가 그저 지상에 던져진 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선택해서 태어났다고 여기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게 다 자유의지, 어떤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여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 책은 텍스트도 텍스트지만 어린이의 그림이 책의 핵심인데,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독후감에 싣고 싶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구해서 감상하시라는 취지에서, 또 저작권 문제가 있을까봐 생략했습니다. 그림은 아이답게 서투르기도 하고 자유롭기도 합니다. 아이의 그림은 아이다워야 우리 어른들이 그로부터 뭔가 정화되는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아이들이야 그런 의식도 하지 않겠지만).
아이는 혜아가 보고 싶다고 하는데 이건 죽고 나서 하늘나라로 요정이 되어 올라갈 때를 가정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가장 친한 친구는 혜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말은, "얘는 지금 하늘나라에 요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입니다. 그러니 이 말, 즉 요정 관련은 엄마가 말해 준 게 아니고 아이가 그냥 보충해 낸 거죠.
pp.28~29에는 산, 물, 새 등을 그렸는데 어린이의 얼굴이 산등성이만큼 크고 다칠 염려도 없는지 산등성이를 얼굴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냥 산 주변을 날개 없이 날아다니는지도 모릅니다. 책엔 "물이 파랑이란 법은 없다! 산이 초록이란 법도 없다! 새가 은색!"이라고 나오는데 말만 들어도 시원한 것 같습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그림 그릴 때, 그런 법칙에 왜 얽매여야 합니까. 그림이건 글이건 자신의 정직한 느낌, 창의적인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은 수학이 아니고, 수학도 그렇게 무엇인가에 묶여 있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고정관념(p29) 따위는 버리고 어린이처럼 화폭 안에서 훨훨 날아다닐 줄 알아야 어른도 헹복할 수 있습니다.
황이산 어린이는 사람을 그릴 때 머리색깔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보수적(?)인지, 착한 콩쥐에게는 검은머리, 못된 팥쥐에게는 갈색머리를 얹어 주었네요. 그런데 저 앞으로 돌아가서 pp.13~20에는 주인공이 노랑머리, 혜아한테 파랑머리, 다른 사람, 요정한테 갈색머리를 해 준 걸로 보아 갈색이 딱히 나쁜 뜻은 아니고 그냥 랜덤인 것 같습니다. 혹은 팥쥐더러 죽은 뒤 하늘나라에 가선 착한 요정이 되라는 뜻으로, 즉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배려로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그냥 (착한) 사람은 검은 머리를 하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 가장 웃긴 건 못된 팥쥐를 나름 응징하느라고 달리기맨이 갑자기 나타나 팥쥐를 "물리쳤다"는 겁니다. 그림(p34)을 보면 팥쥐가 명랑만화의 캐릭터처럼 빙빙 돌아가는 회오리눈을 하고 쓰러져 있는데 이게 달리기맨이 "물리쳐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달리기맨과 콩쥐는 >.< 눈을 하고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데 제 눈에는 둘이 스케이트를 멋지게 지치는 걸로 보이고 팥쥐는 얼음 위에 미끄러져 넘어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pp.44~45에는 컬러가 없고 흑백인 큰 그림이 나오는데 아이가 하는 말이 "외롭구만...."입니다. 어미가 "~구만"인 것도 어른 말투라서 웃기고, 뒤에 말줄임표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땅에다가는 마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처럼 2+2, 4+4 등을 쓰는데 또 답은 안 구하고 문제만 뚫어지게 봅니다.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노는데 자신만 공부해야 해서 외롭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를 보면 크게 "친구되게 해 주세요"라고 써 놓았습니다. "친구가 생기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친구가 되게 해 주세요"라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참 어른스럽습니다.
p63에는 "나는 왜 남자친구가 없지?"라고 합니다. 그건... 글쎄요. 어른들도 이성친구, 배우자가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런 건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오고, 어른들에게 물어 봐도 답을 해 줄 만한 사람이 없을 듯합니다.
pp.64~65에서 핑크잠자리의 변신 그림을 보고 "엄마"는 "아이들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지?"라며 놀라워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페이지의 그림이 부쩍 정확하고 정밀해진 데다 뭔가 정성이 엄청 들어간 듯, 집중해서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잠자리도 크기가 엄청 큰데 황이산 어린이는 앞에서도 강조를 하고 싶은 건 크게 그리는 습관이 있어 보이니까요. 머리가 분홍색이니까 이 아이는 혜아(p14) 아닐까요? 혜아의 얼굴색도 가만 보면 강약을 조절해서 피부색의 부분 차이를 그 나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보통 같은 면은 똑같은 채도로(마치 포스터컬러처럼)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이 어린이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p.70~71에서 어린이는 과학자, 발명가 같은 사람인데 안경이 푸른색인 게 눈에 띕니다. 책상 위의 로봇도 푸른색인데 이게 좌우로 죽 이어집니다. 아이는 아마 테크놀로지, 첨단 이런 이미지를 푸른색으로 표현하고 싶어한 게 아닌지. 이 주제색이 좌우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림의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ㅎㅎ 죽기 전에 말하고 싶은 걸 모두 말한다(p87), 아마 어떤 동화나 만화를 보고 인상적인 장면을 재현한 것 같습니다. 식물(새싹)의 말은 괄호 안에 넣어 직접 들리는 게 아니라는 걸 표현한 것도 어른스럽네요.
알라뱀, 이집트에서 온 아이, 영웅 양수라 등 우리 어른들의 눈으로는 알 수 없는 여러 캐릭터(?)들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상상과 꿈, 희망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던 시절이 얼마나 오래 전이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과연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