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조직 -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꿈꾸는 기업들을 위한 메시지
신경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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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리더의 명시적 혹은 암묵적 지시에 따라 유기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을 이상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동기부여"가 충분히 된 채로, 각 성원들이 자신의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히며 창의적인 성과를 내게끔 조직이 운영되어야 합니다. 가뜩이나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강조하는 분위기인데 만약 현장의 말단이나 중간지점에서 윗선의 명령만 기다린다거나 서로 책임을 떠미는 조직이라면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리가 없습니다. 또 자율과 창의의 결과물이라야 그 품질이 담보된다는 점도 새삼 더 강조할 필요가 없죠.

경영학뿐 아니라 행정학 교과서에도 MBO라는 개념이 오래전부터 설명되고 강조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목표에 의한 관리"라는 뜻인데 요즘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OKR, 게다가 KBO가 현장에서 두루 채택된다고 합니다. 무작정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무엇을? 언제? 어떻게? 등을 따져 가며 직원들에게 행동의 내면화를 강조하는 점에 차이가 있겠습니다. "역할에 대한 정의와 목표 설정"은, 곧 "평가와 보상의 시작(p45)"이라는 건데, 이는 종래 학술서나 조직의 실무에서 간주하던 시작점보다는 훨씬 크게 앞당겨진 것으로, 조직의 운용에 있어 그만큼 성원들의 동기와 자율이 강조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요즘 20대 청년들, 특히 취업을 앞둔 이들이 하나같이 지적하는 게 "공평보다는 공정"이라고 합니다. 과거와는 사실 큰 차이를 보이는 현상이죠. 그런데 취업을 앞둔 이들뿐 아니라, 조직 안에 이미 편입된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직무 만족, 직무 몰입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압도적으로) '평가 공정성 항목'"이라는 거죠(p51). 보수와 승진은 그 다음 순위인데, 일단 심혈을 다해 이룬 성과에 대해서나 올바로 판단하라는 요구입니다.

보수와 승진이 불만족스러우면 다 소용 없는 거라 여기지 않고 일단 일의 성과물을 제대로 고과하라는 이런 요구는 그만큼 성원들이 주인의식,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HR이 이만큼이나 성숙하고 높은 수준에 달했다고 봐도 됩니다, 불과 7, 8년전만 해도 중국 회사로 스카웃되고 난 후 자신의 전 직장이 중국 반도체 굴기로 곧 망한다면서 악담을 퍼부어대던 게 흔했는데 지금은 거꾸로 그쪽이 망할 걱정을 해야 할 판입니다. 자율과 창의를 앞세운 조직과, 그저 모방, 저가공세로 밀어붙이는 조직 사이의 차이입니다.

책에서 소개되는 또 하나의 좋은 예는 엘런 랭거 교수의 "자기결정 이론"의 예시입니다. 타인에 의해 생존 환경이 결정된 그룹보다, 스스로 알아서 환경을 꾸린 그룹이 훨씬 높은 생존율을 보인 것입니다. "마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신체 나이도 마찬가지로 조절할 수 있다(p80)" 노인들은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고 농촌 거주자가 아니면서도 꼭 보면 상추 등을 작은 텃밭(초미니)에 심어 재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정신, 육체 건강에 그렇게나 좋다는 거죠.

어디 노인들뿐이겠습니까. 회사에서도 담당자를 처음부터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고 자신이 그 기초를 닦는다고 여기게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p87)고 저자는 말합니다. "자기 선택은 내재적 동기부여를 자극한다." 이는 또한 "인내력과 집중력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별개로 나타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같은 힘든 일이라서 벌써 임계치에 도달했는데도, 시켜서 하는 일과 이게 내 일이다 싶은 일이 다르죠. 후자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놀라울 만큼입니다. 1984년 KBO리그 한국시리즈 7차전 투수 최동원의 활약 같은 걸 떠올려 보십시오.

그런데 일률적인 동기부여는 또 이게 시대에 뒤떨어진 겁니다. 20세기 초 포드 자동차 회사가 동종업계에 비해 파격적으로 주급 인상을 해 주었고 이게 당시로서는 놀라운 혁신, 과감한 결단으로 여겨졌죠.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또 달라졌기에 이 정도의 획일적이고 1차원적인 동기부여로는 또 부족합니다. p106에는 성과급이나 다른 물질적 보상(대개 1차원적인 것들입니다)보다, 상사의 진심 어린 감사와 높은 평가 등이 훨씬 높은 성과를 내었다는 매우 예상 외의 결과가 나오는데, 물론 이게 구체적인 보상 없이 말로만 때우라는 소리는 결코 아닙니다. 그 격려 메시지 등이, 의심의 여지 없이 직원으로서 나의 가치, 자질, 평판을 향상시키는 것이라야 하며 아마도 승진이나 이직 등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것이었겠죠. 여튼 과업이 복잡하고 복합적 성격을 띤 것일수록 이런 추상적, 정신적 보상이 더 효과를 발휘한다는 뜻입니다.

높은 인센티브는 반드시 높은 성과를 가져오는가?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오히려 직원들의 집중이 흐트러지고 "외적 보상"으로 관심이 넘어가면서 성과가 더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여럿 소개되는데 "코브라 효과"는 영국 식민 당국이 인도에서 코브라 포획에 일정 상금을 걸자, 인도인들이 비밀리에 코브라 농장을 운영하며 포상금만 계획적으로 타 먹더라는 겁니다. 코브라 포획은 인명 살상 방지를 위해 편 정책인 걸 생각하면 참...

또 프랑스는 식민지 베트남에서 쥐잡기 운동을 벌였는데, 주민들이 증거로 삼기 위해 꼬리만 자르고 도로 풀어주는 경향이 생기자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했다는 겁니다. 이 후자의 에피소드는 한국에서도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고도 회자되는데, 아마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이라면 자신이 사는 주거의 쾌적도와 위생을 해치는 쥐를, 위에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없애지 저런 눈가리고 아웅 식의 자기 발등 찍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겠기 때문이죠. 이처럼 자율과 창의는 CEO의 지혜와 결단 외에도 그 조직 성원들의 성숙도와 자질에도 영향 받는 바 큽니다.

보상 지급 체계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단 한번 주면 끝이라는 식보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일정 부분을 반납하는 방식(p153)이 훨씬 효과가 좋다는 겁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도 어느 철없는 약사 며느리가 "왜 줬다가 뺏어요? 가장 나쁜 짓"이라며 시아버지에게 강하게 반발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한 것입니다. 이거(p153)하고 비슷한 사례가, 책 저 앞 p131에 나온 회식비 지급 사례입니다. 알아서 회식하고 팀웍 다지라는 취지로 각자에게 회식비까지 계좌로 넣어줬는데, 일단 내 주머니에 들어왔으니 왜 또 쓰겠냐는 생각에 아예 해당 부서에서는 회식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일시불의 만족도 오래가지는 못한다는 결과도 있습니다(p133). 이것 관련 며칠 전에 로또복권 당첨금을 연금식으로 전환한다는 뉴스가 나자 엄청 반발하는 댓글들이 달리던데, 사람들이 원하는 건 당연히 일시불이겠으나 그 효과가 조직차원에서 얼마나 지속되느냐는 또 별개로 나타난다는 소립니다. 이것 관련 저는 중국고사 "조삼모사"가 생각났습니다. 어차피 전체 파이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면, 원숭이들이 투쟁을 통해 그 지급의 선후를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게 된 성과를 마냥 낮게 평가할 수만도 없다는 게...

커뮤니케이션의 황금률은 "메라비안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저자의 결론은, "인재는 외부영입이 아니라 내부 인재의 발굴, 육성"에 중점을 두라는 것(p192)입니다. 어차피 확률상, 내부 인재가 해당 조직에 대해 더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동기부여 효과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KBO리그에서 두산 같은 구단이 계속 리그 탑급의 포수가 나오는 것도, 운이 좋은 pick 같은 게 아니라 같은 수준의 선수라도 두산 같은 구단에서 더 빨리 더 높이 성장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반면 롯데를 보십시오. 선수가 없으면 돈 많겠다 사오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이 팀이고 프런트고 고루 퍼져 있으니 내부 육성이 포수건 뭐건 안 되는 거 아닙니까(참고로 저는 롯데팬).

왜 신라면은 1등을 지키는가? 조직과 CEO의 어떤 컨센서스 같은 게 있는데, 당장의 판매고에 구애 받지 않고 고객의 건강을 생각해서 "건면" 같은 걸 만든다는 게 저자가 꼽은 이유(p212)입니다. 사실 이는 굉장히 부담이 큰 결단입니다. 몇 년 전 똑같은 이유로 신라면 블랙을 고가로 출시하였다가 큰 실패를 본 경험이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마케팅 차원, 아주아주 큰 마케팅 차원에서 이런 출혈은 감수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하려는 자는 길을 찾고, 포기하려는 자는 핑계를 찾는다(p249)." 만약 CEO가 극한 경쟁 상황에서도 생존의 방향을 찾아낸다면 그 영향을 받아 직원들도 알아서 창의적인 방안을 낼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 없는 CEO는 자신의 불안과 무능이 들킬까봐 직원들에게 더 강압적으로 대하며, 이런 조직에서 자율과 창의가 태동될 리 없습니다. 직원들에게는 참된 각성과 "신명"에서 우러나는 동기가 주어져야 하며, 이 역시 오롯이 CEO의 몫입니다. 현대의 리더는 그만큼이나 더 어려운 과업을 짊어진 것이며, 직원에게 자율을 준다고 CEO의 역할이 줄어드는 게 결코 아닙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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