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리 dele 2
혼다 다카요시 지음, 박정임 옮김 / 살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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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권에는 모두 세 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지막 에피소드가 분량이 좀 길며 읽어 보면 아 그럴 이유가 있었구나 하게 됩니다. 왠지 사연이 여기서 다 정리가 되는 느낌인데, 명탐정 코난이 아직도 검은 조직에 의해 아이의 몸이 된 채 머물고 20년 동안이나 사골을 우리듯, 이 독특한 이야기도 좀 계속 속편이 나와서 독자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탐정이나 범인이 아니라 일종의 디지털 장의사들이, 한 사람은 두뇌 한 사람은 액션으로 역할을 나눠 그 나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으니 말입니다.

1권 독후감에서도 말했지만 주인공들의 역할이란 아주 제한되어 있습니다. 의뢰인이 지목한 파일을 삭제하고, 그 내용은 삭제자인 자신들도 보면 안 되며, 나머지는 경찰이 해결하든 뭘 하든 자신들은 손을 떼고 그걸로 끝입니다. 그런데도 보면, 케이시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불법에 협조하거나 기타 합당치 못한 결과를 남기는 걸 아주 싫어하며, 사후 합리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이러이러하기에 나머지는 우리가 손 안 댄다"며 아주 깔끔하게 일을 처리합니다. 하지만 이런 업종이 실제 존재한다면 그렇게 모든 건이 말끔하게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첫째 사연 <언체인드 멜로디>(이것도 미국의 스탠다드 넘버 제목이죠)에는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데, 외모 때문에 좋은 역할을 동생에게 다 맡긴 어느 비운의 작곡가, 뮤지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도 유타로는 또 헛다리를 짚고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ㅎㅎ 몰고 가는데 뻔히 사정을 알지만 독자는 그의 시나리오가 너무 그럴싸하게 들려서 나중에 뒤집어질 줄 알고도 일단 속아넘어가게 되네요.

사실 자칫하면 자신이 큰 누명을 쓸 뻔했으나.... 보다 고상하고 인간적인 동기 때문에 이를 감수하고, 또 한 사람은 역시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배려하고 사랑했기에 그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마는데... 역시 이 시리즈에는 좀 부담스러울 만큼 고상한 인격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다못해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도 구제불능의 악당들이 전면이 많이 나서는데, 이 작품에는 의외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순정파들이, 억울하게 악의 가면을 쓰고 많이들 등장합니다. 여튼 읽기에 흐뭇해서 좋았습니다.

<유령 소녀들>. 제목에서도 나오듯 가짜 삶을 사는 젊은 여성들 이야기인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더 어린 나이에 인생의 쓰디쓴 진실을 알게 되어 보는 입장에서 더 안타깝습니다. 이 에피소드에는 유타로가 비교적 큰 액션을 치르는 과정이 나오는데 미국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케이시는 아주 유능한 프로그래머이며 세상사에 밝고 나이에 비해 인생 관록이 두텁게 묻어나는 편이어서 사소한 단서로도 많은 걸 알아내는 게 대단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일단 젠트리피케이션 이슈가 살짝 나오는데 확실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또 SNS 때문에 삶 자체가 이상해진, 가짜의 모습을 웹상에 드러내고 이에서 벗어날 줄 모르며, 어쩌면 가짜인지 뻔히 알면서도 이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열광하는 희한한 군상도 나옵니다. 얼마 전 일어난 모녀 살인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소셜 미디어가 처음 생길 때에는 이런 기이한 부작용을 아마 아무도 예상 못 했을 것입니다. 어린 소녀가 그 모든 걸 알면서도(자신이 정상이 아님) 나쁜 환경 때문에 쿨한 척 적응해 가는 과정이 안타까웠습니다. 저 1권에 나오던 <스토커 블루스>에서 여동생 복슬이가 잠시 겹치기도 했고요.

마지막 이야기 <그림자 추적>은 여태 명확히 드러나지 않던 유타로의 과거, 그리고 케이시에 얽힌 사연까지 다 정리되는 내용이라 독자에겐 좀 충격이며 분량도 그래서 좀 깁니다. 일단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신약 개발로 떼돈을 벌려는 이들이 많은 건 공통이며 한국의 코스닥에서 왜 그렇게 제약바이오 업종에 거품이 많이 끼는지도 이 에피소드를 통해 내막 그 일단이 짐작이 갈 만큼입니다.

유타로는 이 에피소드에서 그의 실력을 마음껏 드러냅니다. 여태 그는 전화를 통해, 혹은 직접 찾아가서 다른 사람인 척 능청을 떨며 의뢰인의 사망 여부를 확인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어떤 정보를 캐는 게 장기인데, 이 사연 속에서 그의 매력이 최대한 다 드러나는 게 특징이더군요. 특히 아마다 사에 찾아가서 구사카베를 구워삶은 후 데이터를 빼내는데 뜻하지 않게 어떤 여직원 때문에 방해 받는 장면은 잘 만들어진 미국 오락물을 보는 듯 흥미진진했고 서스펜스 만점이었습니다.

인물 묘사도 매우 구체적이어서 p179의 "미인이었지만 표정이 부족했다"라든가, 고인의 아들 이치로의 미숙하고 유치한 성격(이 점을 구사카베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이치로를 사칭하는 유타로를 두고 "생각보다 듬직한데?" 같은 말을 하죠) 묘사 같은 게 일품이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디지털 기술도 제법 세부적으로 서술되며, 저 앞 에피소드 <유령 소녀들>를 보면 어떻게 소설 미디어에서 사기를 치는지 매우 자세하게 그 요령이 나오는 등 디테일이 장난 아닙니다. 여튼 이 2권에서 유타로와 케이시의 개인사가 일단 다 정리되는 만큼 여태 애착을 갖고 캐릭터를 봐 온 독자들은 미리 마음을 정리해야 할 겁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모두가 평등해집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부자와 권력자 혹은 깡패나 사회 낙오자 등 죽음을 앞두고는 그저 필멸의 존재로서 한없이 작아지고 또 스스로 겸손해집니다. 죽음 앞에서는 허세도 사술도 돈도 배짱도 폭력도 다 무소용입니다. 죽음 앞에서 부끄러워질 부분이 많이 남았는지 아닌지, 남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못 속입니다. 파일은 쉽게 지울 수 있어도 죄업과 후과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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