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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에는 긴 머리 - 지금의 내가 더 좋아
이봄 지음 / 이비락 / 2021년 4월
평점 :
"옛날옛적 내가 20대였던 때에는 나는 어른들을 몹시 싫어했다. 어른들은 멀쩡하게 생긴 것 같다가도 반대편으로 돌려 보면 멍든 살구처럼 미심쩍은 데가 있었다.. (중략)... 나는 절대 그런 어른이 되지 말자고 결의를 다졌다. 늙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p17)
실제로 31세의 나이에 자살한 전혜린 독문학자는 "늙음 그 추함을 어떻게 견딜까"를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완연한 기성세대인 사십 대에 들어서야 그 어른들을 용서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의문의 죽음을 당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그의 회고록(김경재 著)에서 "비밀을 알고 보니 도대체 존경을 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죠. 어른이 되고서야 그처럼 구리고 결함 많은 어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고백이 그래서 좀 쓸쓸하게 들립니다. 젊어서 죽지 않고서는 초심을 지키지 못하는 셈이니 말입니다.
"싫은 데는 절대 가지 않는 게 행복해지는 비결" 그러나 어른이면 가기 싫은 모임에도 참석해야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상대한테도 호응을 해 줘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저자는 어느 브런치 모임에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자녀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는 식의 입시 정보 교육 정보를 잔뜩 들었다고 합니다. "너가 여기(=대치동) 안 살아서 모르는 거야." 떠드는 건 그쪽인데 듣는 자신이 숨이 차더라고 하네요. 원래 자기가 좋아서 떠드는 건 힘이 안 듭니다.
예전에 이미연씨를 일약 스타로 만든 어떤 영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어느 여학생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저자분이 속한 세대는 거의 모두 그 인물에 감정이입하면서 청춘을 보냈다고 하네요. 앞 문단(이 책기준으로는 바로 뒤 파트 이야기)에서 저자가 왜 대치동 엄마인 친구분에게 그리 불쾌감을 느꼈는지 알 만합니다. 책 앞에서 "어른들을 용서 못 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핌"은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이기도 한데 저자(동명이인이 많던 흔한 이름을 가져 피곤했던)에게 멋진 별명을 지어주어 고마웠던 친구(의 별명)라고 합니다. "외로움이 피톤치드보다 세더라." 그러니 귀농해서 쬐게 되는 피톤치드의 효험보다 외로움이 주는 악효과가 더 크더라는 소리죠. 그가 귀농한 곳은 전북 무주인데, 사실 TV에서 간혹 비춰지기도 합니다만 이런 곳에 예상 외로 아주 멋진 거리가 꾸려져 있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무주는 유명한 리조트 소재지이기도 하니.
교수인 남편분은 패션 센스가 대단히 뛰어나다고 합니다. "무슨 남자가 여자보다 옷이 더 많아? 안 입는 건 좀 버려!" 사실 교수님쯤 되면 패션 센스도 뛰어나야 하고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찌질이 오타쿠처럼 보이는 교수보다야 훨씬 낫죠. 아내가 안 챙겨 줘도 알아서 잘 입고 다니는 남편은 참 편할 듯합니다. 뒤에는 정교수가 된 게 마냥 좋은 건 아니고 오히려 "작가(예술)로서의 커리어를 망치게 될 위험(남편 본인이 한 말)" 때문에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교수는 커리어의 무덤이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 여튼 육아와 가정 생활, 생계를 위한 직업 영위 등 모든 토끼를 한 번에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나는 별다른 방황이나 반항 없이 사십대의 문지방을 넘었다" 사십 대가 젊음의 마지노선이라서 최선을 다해 즐기고 싶다고도 합니다. 일본에 큰 지진이 난 건 2011년말고도 1994년에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메리켄 공원에서 그 사람들이 재기한 흔적을 보고, 자신도 지막 청춘의 시간을 보람되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듯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있지만, 불륜의 주인공이 막상 자신이 되면 이 책 p85에 나오는 것처럼 혼자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찍는 기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누군가와 불측한 사랑에 빠진, 자기 나름대로는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사람도 꼭 보면 저 한물간 영화를 언급하더군요. 곁에서 보면 짜증나 죽겠는데 말입니다. 또 위기에 빠진 남의 가정을 보며 이런저런 뒷담화하는 것만큼 재미진 게 또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자책을 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마흔이 넘으면 쉽게 살이 찌고, 살이 일단 찌면 쉽게 안 빠진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늘어나는 주름의 공포... 여튼 이래서 이런 기로에 선 연령대의 여성들이 유난히 힘들어하는 거겠고 말입니다. 여튼 저자의 결론은 "포니 승용차처럼 단정하게 나이 들고 싶다"입니다.
딸과 엄마 사이는 마냥 친구 같고 서로 좋을 것 같아도 사실 결코 쉽지 않은 관계일 뿐 아니라 오히려 가장 상처 주기 쉽고 원수지간으로 타락할 가능성도 큽니다. 이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는데 딸이 미숙해서 문제일 수도 있고, 반대로 엄마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철이 덜 들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리베카 솔닛의 어느 책을 소개하는데, 저자 역시 수수께끼 같은 모친을 이해하느라 고생했고 이 책에도 30대의 나이에 어머니와 절연을 고민하기까지 했던 분이라서 더욱 공감하는 바가 컸나 봅니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고민이 되는 딸이라면 이 책도 함께 읽어 봤으면 합니다.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 저자는 체호프의 <세 자매>를 읽고 큰 공감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체호프의 작품에는 의외로 극단적인 삶을 살게 된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데 톨스토이가 극찬했다는 <사랑스러운 여인>도 그 좋은 예죠. 대체 뭐가 그토록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후렴처럼 따라붙을까요? 사람들은 갖가지 이유에서 힘듭니다. 그래도 작은 보람을 찾고 입가에 미소를 띄울 때는 서로 닮았습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도 있는데 나이 사십이면 이제 단맛 쓴맛 종류를 분간하고 첫걸음마를 떼는 아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르페 디엠, 하루하루가 소중한 줄 알고 주위 사람한테 잘하면서 시간을 아낄 일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