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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문 ㅣ 특서 청소년문학 19
지혜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4월
평점 :
시구문이란, 시신을 도성(즉 한양) 밖으로 끌고나가는 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광희문을 가리킴인데, 문 자체의 기능이 이러하다 보니 그에는 참으로 다양하고 딱한 사정이 함께 깃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수도 서울뿐 아니라 프랑스의 파리만 해도 시민(부르주아지)라 불리는 계층만 사는 게 아니라, 빈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구역이 따로 있었습니다. 런던, 로마, 마드리드 등 딱히 예외도 없는데, 성인 남성들은 그나마 신체 능력도 갖추고 있고 상황 대처도 잘하지만 여성이나 어린이들은 이런 빈한한 가정에서 출생하면 딱히 답이 없습니다. 이 소설은 이처럼, 조선 시대 한양 시구문 근방에 거주하던 아이들이나 여러 사람들을 소재로 삼아 그 시절의 딱한 단면, 풍속을 그리고 있더군요.
현대인들은 근래에 들어 너무 육식을 즐기다 보니 각종 성인병에 걸리는 등 부작용을 겪습니다만 백희, 백주 등은 그저 끼니만 챙기는 일도 버겁습니다. 어쩌다 고기를 포식한 듯한, 아니 몇 점이나 집은 듯한 오빠 백주에게 백희는 타박을 합니다. 냄새가 난다고 말이죠. 그래 봐야 얼마나 티가 났겠습니까만 생전 없던 체험을 하니 남매에게는 고작 이런 일도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는 영악합니다. 당시에는 과학이 발전하지도 않았고, 어쩌다 이상한 소리를 하며 미래와 과거를 척척 알아맞히는 듯한 아이를 보면 무슨 대단한 신통력이나 가진 듯 믿지 않을 방법도 없었겠습니다. 어수룩한 나그네는 이런 애들의 술수에 넘어가 돈을 뜯기기도 하는데, 사실 이런 건 구태여 조선 시대에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서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딸아이 대신 신내림을 받았다는 게 사실이요?" 외국에는 남성 셔먼의 예도 꽤 많은데 왜 유독 한국에는 여성들만 이런 과정을 가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물론 남성 박수 무당이 따로 있긴 하나). 아마도, 신내림을 통해 살을 풀어 주어야 할 대상이 주로 여성이며, 여성이 유독 피곤한 사회 구조적 억압을 통해 피해를 입은 게 커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불쌍하게 여겨지는 건 소애입니다. 이 소설은 병자호란 직후가 배경입니다만, 그 이전에도 양반가 출신으로서 정쟁 과정에서 가문이 망하고, 억울하고 비참하게도 노비 신세로 떨어진 이들은 많았습니다. 남자도 남자지만 여성 신분으로 노비 신세가 된다면, 그 참상이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전에는 눈 아래로도 보지 않던 종놈들에게까지 무시당하고 학대당하게 된 여인네들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기어이 백주가 죽었습니다. 저는 간혹, 아무리 그 신뢰를 담보할 수 없는 족보라고는 하지만 유독 한국 사회에 (자칭?) 양반의 후손들이 많은 게, 이처럼 혹독한 경제구조적 모순 속에서 천민이나 빈민은 일찌감치 죽어 도태된 이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어두운 점을 빨리 제거해야, 이 소설 속에서처럼 아프고 힘든 일이 현대에 재발하지 않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