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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애착장애
오카다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메이트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 무엇에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다." 이 말은 예전에 고 이윤기 선생 저 <뮈토스> 중, 오이디푸스 신화를 다룬 부분에서 읽었습니다. 모든 불행은 무엇인가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합니다. 집착을 해서 그 결과로 무엇인가를 얻어내면 물론 좋을 텐데, 우리들 대부분은 그게 안 되니까 문제입니다. 매번 뭘 시도해서 원하는 결과를 손에 쥘 수는 없는 만큼, 집착을 우리 마음에서 덜어내는 게 우리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이겠습니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절박한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의욕도 없고 생에 대한 집착도 없으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 테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는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고, 혹 사랑한다 해도 방법이 전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그럼 왜 이들은 ("정상적인" 사람들과 달리) 자신에 대해 살아갈 가치도 없다 여기고, 완벽한 성공에 이르지 못하면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되었을까요? 여기서 물론 가난하고 버림 받은 처지의 사람들도 이 범주에 해당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괜찮다 싶은 성취를 해 낸 사람들도 이 범주에 들어가기도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완벽이 아니면 모두 쓰레기가 되는 겁니다. 왜 이렇게들 생각하는가? 그건, 저자에 따르면, "어렸을 때 그들을 소중히 돌봐 줬어야 했을 그 누군가가 그들을 버렸거나 방치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혹은 "예뻐하는 척만 하고 진심으로 애정을 주지 않아서"라고도 합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어쩔 수 없다고나 하지만, 저 중 후자의 경우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고 또 그랬어야 마땅했는데도 그렇지 못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예뻐하는 척만 하고 진심으로 애정을 주지 않아서"라! 아이들은 확실히 영리합니다. 애들도 기대했던 누구한테 가서 "왜 척만 하세요?"라고 따지지는 않습니다. 눈치껏 만족하는 척하고 뒤로 물러나죠. 그런데 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으며, 이 상처를 어른이 되어서도, 혹은 늙어 죽을 때까지 간직한다는 겁니다. 어떤 자는 아주 효녀인 척을 합니다. 누구 보라는 듯이 모친에게 잘합니다. 하지만 그런 과잉 이상 행동의 심리에는, 그 모친이 어려서 자신에게 배풀어주지 않은 애정을, "당신이 내게 이렇게 했어야 마땅했다"며 일종의 역 복수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연"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효도가 합당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좌절감은 결국 다른 관계에까지 전이되고 모든 소통이 파탄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이상심리가 경우에 따라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표현되기도 합니다. 알고 보면 참 불쌍한 사람이죠. 뭐 모르고 봐도 불쌍하긴 합니다만.
우울증은 대개 중장년층이 겪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도 않으며, 놀랍게도 우울증을 앓는 "아동"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책에는 미국 대공황 시기(1920~30년대)에 예전의 씀씀이를 고치지 못하고, 가난하게 된 중에도 사치를 일삼는 아내에 화를 내며 다른 여성과 외도를 한 그 부친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소녀"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신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이 정도 핀치에 몰리면 당연히 우울증 아니라 뭐 어떤 더 심한 정신질환이라도, 더군다나 상황에 적응할 능력이 아직은 부족한 어린이에게 찾아올 만합니다.
이런 상황까지 가면 조울증이라 흔히 부르는 양극성 장애도 겪게 된다고 하는데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실제 제 주변에도 최근에 그런 어려움을 겪게 된 아이가 하나 있는데 부모님들은 "가뜩이나 머리가 뛰어난 애가 정서가 예민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얘 같은 경우는 곁에 지극정성으로 참된 애정을 쏟는 부모님이 있으니까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죠. 머지않아 회복되리라 믿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붉은털 원숭이 대리모 실험"을 통해 "특별한 존재에 대한 집착"이 원숭이의 정서적 안정에 엄청난 기여를 한다는 점을 알아내었고, 영국의 정신과 의사 에드워드 볼비는 이런 정서적 반응에 대해 "애착(attachment)"라 명명했다고 합니다. 하긴 이런 예는 우리가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을 봐도 나옵니다. 엄마 없는 원숭이가 (엉뚱하게도) 돼지에게 집착한다든지 하는 장면 같은 게 그렇죠.
예전 중국 성어에 "단장지통"이란 게 있는데 말 그대로 새끼와 헤어진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졌더라는 고사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경우는 자식이 아니라 부모이긴 합니다만. 또 인도에서도 어려서 어미가 사냥꾼들에게 죽는 걸 본 아기코끼리가 끝내 미쳐 버린 채 인간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참 놀랍게도, 포유류는 이처럼 어린 시절에 그 어미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고 성장하는 게 매우 중요한가 봅니다. 문명 생활을 하는 사람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 놀라우며, 사정이 이렇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 어떤 "의지"만으로 극복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 자계서의 선구자 이시형 선생도 그의 책들에서 "옥시토신 분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 책에도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호르몬"으로 그 중요성이 설명됩니다. 이게 잘 분비되지 않으면 애가 ADHD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한 십 년 전에 강남 엄마들 사이에 항 ADHD약을 애들한테 먹이는 게 매우 크게 유행했습니다. 애들한테 스트레스를 안 주고 애정만 쏟으면 약을 먹일 필요가 없을 건데, 더 웃기는 건 이걸 애한테 먹어야 강남 엄마만큼 잘하는 엄마가 되는 줄 알고 너도나도 병원에서 처방을 받더라는 겁니다. 이 정도면 아이를 위하는 게 아니라, 소속되고 싶은 집단의 유행을 무작정 따라하는 허영심이란 병에 엄마 자신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엄마가 이렇게 아프니 애가 없던 병도 생길 밖에요. p211에는 "약 투여를 중단하면 곧바로 요요 현상이 나타나며, 그나마 사춘기 이후에는 항ADHD효과를 얻기 힘들다"는 말도 나옵니다. 제 개인적 생각에는 이런 건 뭐 거의 아무 의미도 없는 치료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어릴 적 불우한 환경 속에서 애착이 불안정하게 형성되었다면 비만에 걸릴 확률이 무척 크다(p98)." 물론 비만하다고 다 불우한 환경이었던 건 아니고, 그 반대의 케이스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중에서도 특히 교감신경계), 그리고 반대 기능(길항 작용)을 하는 HPA축(상대적으로 느리게 반응)이 큰 기능을 한다고 지금까지 여겨왔는데, 비교적 최근에는 옥시토신계(OSS)가 또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로 규명된 바 있다고 합니다(p100). 특히 이것은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저자는 "항생제 남용 풍조 때문에 오히려 원인 불명의 컨디션 난조를 겪는 이들이 많아진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건, 어려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이 옥시토신계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아이들이 조기에 사망할 확률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이 이야기는 책 p115 이하, 또 p138 이하에 아주 자세히 나오는데 책 후반부는 거의 이 토픽으로 꾸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이 임상례는 흥미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섭기도 합니다. 어려서 사랑을 못 받은 사람은 질병에도 약하고 스트레스에도 쉽게 노출된다!
아이들한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솟구칠 수도 있지만, 또 하나 유념해야 할 게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짜 사랑을 감별하는 데 귀신 같다는 사실입니다. 가짜 사랑으로 부모의 죄책감만 간신히 면할 생각이라면 그런 애정공세는 안 하느니만도 못합니다. "사랑받지 못한 작은 아기는 자신에 대해 배우기 전에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부터 먼저 배운다(p166)." 특히 주변에 대한 정리정돈을 잘 못 한다면 발달장애보다는 애착장애를 먼저 의심하라고 저자는 말합니다(p196)."
p220 이하에는 아이를 애착장애로 만드는 부모의 유형으로 1) 학대 2) 방임 3) 심리적 지배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1)과 2)는 뉴스에나 간혹 나올 뿐 우리 주변에는 잘 찾아보기 힘들겠지만, 3)이 문제입니다. 3)은 특히 교육 충분히 받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부모들, "알 만한 사람들"이 이런다는 게 문제죠. 남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부터 이런 (겉으로는 흠 잡을 데 없으면서) 사실 최악의 부모가 되는 건 아닌지 깊이 반성할 일입니다. 아이를 애착장애인으로 키우는 게 가장 몹쓸 짓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