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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 단단하고 행복해지는 중년, 삶의 새로운 속도와 리듬
전윤정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1년 4월
평점 :
어떤 사람은 영생을 혹 절대자가 준다고 해도 그리 반갑지 않을 거라 말합니다. 늙고 병든 육신으로 백이십년 혹은 그 이상을 살아도 별 의미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파우스트 박사도 그 엄청난 지적 성취를 이루고 나서도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 팔아 청춘을 되찾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크림 오브 더 유스, 혹은 베스트 이어즈 오브 마이 라이프, 다시 안 올 청춘을 행복하고 보람 있게, 혹은 원 없이 즐겨 봐야 회한이 안 남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젊은 시절을 (저런 두려움 때문에) 아무 계획 없이 낭비하며 흥청망청 보내는 것도 무책임하고 우스운 일입니다.
앞으로 남은 생이 그저 나이 들고 무거워진 육신만 끌고 가야 할 뿐이라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차피 정신의 평온에 의해 모든 기분이 좌우되며, 카리브해 호화 리조트에서 미녀들에 둘러싸여 환락을 즐긴다 해도 (무슨 이유에서건) 마음이 열등감과 좌절감, 피해의식, 불안에 지배된다면 그걸 두고 무슨 기쁨이나 호강을 누린다 평가할 수 없습니다. 나이 들면 젊은이와는 또 다른 계기와 노력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오히려 이것이 젊었을 때 누리는 말초적 쾌락보다 더 근원적인 보람의 확인 지점인지도 모릅니다.
저자께서는 각별히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 큰 지분은 아마 외할머니에 빚지셨나 봅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보면 근거 없는 피해의식에 젖어 남의 행복한 가정을 파탄 내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만 채우려 드는 나쁜 여자가 등장하는데, 이런 사람이 이런 삶을 사는 것도 (본인 말로) 어려서 사랑을 못 받고 자라 그렇다고 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상처, 분노, 열등감 따위를 자신의 내면에서 삭이거나 잘 다루지 못하고 엉뚱한 남에게 분풀이하는 것만큼 한심하고 못난 짓이 없습니다.
"능력 있는 산파". 사실 전근대의 기술을 다룰 뿐인 인력이 아무리 유능해 봐야 뭐 어느 정도일까 여겨도, 이 책에 나오는 저자분의 외조모 같은 분을 보면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 거꾸로 앉아 있긴 해도) 제가 알아서 자리를 잘 잡으려고 하는 거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의 효율과 마력이 이 정도까지나 멀리 뻗칠 수 있습니다. 작가분은 외조모님이 가진 분유를 몰래 먹을 때 일종의 "길티 플레저"를 느꼈다고 하지만 독자인 저는 그 외조모님의 정성, 성실함, 타인(특히 임산부)를 대하는 진심과 정성 등이 심지어 그 보유한 분유에까지 스며든 효과가 아닐까 하고, 물리학적, 약리학적(혹은 그 무엇이든)으로는 전적으로 불가능한 (허구의) 인과과정까지 머리 속에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애도 나오듯, 사랑의 힘은 심지어 시공간의 장벽마저도 초월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중년 이상의 연령층은 갱년기를 겪으며 각별히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체온 조절 기능이 떨어져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큰 불편함을 느끼며, 그 와중에 여성은 월경이 중단되기도 하는데 또래 사이에서 여전히 그 주기를 지킨다는 선언이 부러움을 사기도 하나 봅니다. 작가분은 "지성 피부라서 로션 하나로 평생을 살아 왔으나 갈수록 피부가 건조해져 영양 크림을 꼭 바른다"고도 하십니다. 중년이 지나며 겪게 되는 설움과 불안감의 크기와 색깔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흐린 날씨에는 온종일 우울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는데, 그러나 이런 건 여성이면 심지어 10대때라고 해도 사람에 따라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여튼 여성분들의 경우 이렇게 월경을 멈추는 걸 "완경"이라 부르는 듯한데, 저자분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월경을 완주(完走)한 우리가 다시 한 번 뛰어갈 새로운 트랙을 대해. 눈부신 시작에 대해." 참 멋진 말입니다. 또 폐경은 폐경(閉經)이 아니라 "경계를 허무는" 폐경(廢境)으로 새겨야 한다는 홍이현숙씨의 말도 인용되네요.
제 주변에도 최근 간 질환 때문에 결국 타계하신 어르신이 있는데, 이 간 관계 병질은 갑작스럽게 악화되고 안타까운 죽음도 예기치 않게 당사자를 찾는 경향이 있어 특히 주의해야 할 듯합니다. 저자께서 물론 효녀이셨으리라 사료되지만 어떤 자녀라 해도 부모의 죽음에 임해서는 "자신이 잘못한 일만 생각나기 마련(p149)"이라서 더 이처럼 극진한 슬픔을 표현하게도 됩니다. 특히 어르신 수발 할 때는 용변의 처리 등에 있어 마음 안 상하시도록 주의해야 할 듯합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으나 그렇게 안타깝게 가시면 남은 생 동안 후회와 자괴감은 모두 자식의 몫 아니겠습니까.
어떤 자는 빚을 내서라도 명품을 사서 걸쳐야 한다고도 떠드는데, 정작 명품의 본고장 중 하나인 프랑스에서는 "분수에 맞지 않게 과시적 소비를 하는 풍조를 몹시 경멸"한다는 게 작가분 지인의 관찰 결과라고 합니다. 사람이 보잘것없는데 어울리지 않게 명품을 걸쳐 봐야 무슨 폼이 나겠으며, 물질뿐 아니라 정신까지 빈곤하니 저런 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목청 높여 내뱉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이 일탈행위도 서슴지 않으며 명품을 탐내는 것도 나잇값 못하는 어른들의 나쁜 본을 받은 결과이겠으나, 한편으로 학교에서 야무지게 공부하며 커리어를 잘 가꿔 나가는 젊은이들도 많으니 지나치게 메리토크라시의 큰 병폐를 지적할 건 또 아닐 듯도 합니다.
전자사전, 나아가 앱을 이용한 영어 공부보다, 고색 창연한 종이사전을 옆에 끼고 공부하던 시절의 낭만을 아는 게 또 중년 세대이기도 합니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며, 젊은이보다 더 세심하고 더 부지런하게, 생의 소소한 기쁨과 보람을 찾아 나가는 인생이 있다면 한창 싱싱하게 피어나는 청춘이 구태여 부럽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순간이 내가 가장 젊은 지점이라는 점 잊지 않고,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의 찬란하고 생생한 기쁨을 놓치지 않고 나꿔채는 열정과 정성이 중요한 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