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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 - 현안 스님의 미국 찬禪 메디테이션 이야기
현안 지음 / 어의운하 / 2021년 3월
평점 :
여성의 몸으로 척박한 비즈니스계(미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도놀랍지만, 세속의 성공이 결국은 공허하다는 점을 깨닫고 제행무상 제법무아의 도를 만인에 공히 일깨우고자 출가를, 그것도 미국에서 감행하셨다는 사실 역시 매우 놀랍습니다. 이 책의 저자 현안 스님의 사연이 그러합니다.
미국에는 의외로 참선과 명상을 중시하는 유파, 모임이 많습니다. 아마도 서양권 문화 전통에서 이런 방식으로 수도를 권하는 가르침이 극히 드물기에, 동양의 이런 독특한 전통이 그들의 갈증을 채워 주어서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아무튼 이 중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교식으로 참선, 명상을 이끄는 곳은 의외로 또 아주 그리 많지는 않은 편입니다. 한국이야 워낙 불교의 전통이 깊기에 참선 하면 바로 불교를 떠올릴 정도이지만 말입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이것이 불교 법문이라는 점도 잊었다." 저자 현안 스님은 한국인이면서도 참선과 법문을 대뜸 불교와 연관시키질 않으셨나 봅니다. 그만큼 "현지인, 미국 사람이 다 되어서"일 수도 있겠죠. 혹은, 일단 내 영혼의 갈증을 채우려다 이것이 너무 좋아서 이끌렸는데 그게 바로 불교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무엇인가에 입문하는 게, 어떤 다른 동기나 합리화 같은 게 끼어들지 않아서 더욱 좋습니다. 정말로 순수하게 "내가 좋아서, 내가 필요해서" 받아들인 것이니 말입니다.
"수행하는 데에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게 장점이 되기도 한다." 역시 독자인 제가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우리 한국에서 무슨 불교식 수행을 한다고 하면, 미리 내 자신이 어디서 어설프게 들은 선입견이나 지식에 따라 이후의 수행을 끼워 맞추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을 배울 때, 나아가 무엇을 깨달으려 할 때에는 그야말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천진무구한 백지에 깨끗한 그림을 그러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게 참 힘듭니다. 그런가하면 스님들과의 관계, 인사치레 이런 데 더 신경이 쓰이다 보니 마음 공부, 수련, 이런 건 어느새 뒷전이 되기 쉽습니다. 산중에 있어도 풍진 세상 한복판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저자의 말씀대로 "수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떤 지식이 필요 없으며", 있으면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모든 수행은 지관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는 멈출 지(止)이고, 관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하나에 집중하는 것(p89)"이라고 합니다. 특히 후자에 대해 "마음챙김"이라 하여 mindfulness라고 영어로 표현하는데 영미권에서 불교에 대해 대단히 큰 호응을 보이는 게 이 부분이라고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 동양인들이 허식에 치우쳐 정작 간과하고 넘어간 부분을, 그들이 예리하게 통찰해서 재정리한 부분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장 이 책 저자님(스님)부터도 한국 분이신데도 미국에서 출가를 하셨으니 말입니다.
마스터 스님인 영화스님은 오히려 "mindfulness"라는 번역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보이시네요. 영화 스님의 의견에 따르면 이 개념은 정념(正念)에서 유래했는데, 이건 proper thought라고 옮겨야 맞다고 말씀(p143)하십니다. right가 아니라 proper라고 하신 점이 눈에 띄는데, 이 깊은 뜻은 독자인 제가 두고두고 더 생각해 봐야 할 듯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중풍은 정말 무서운 적입니다. 원영연 선생은 한국에서 열린 불칠, 선칠 프로그램에 멀리서부터 와 참석하셨는데, 영화 큰스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p134). 이미 신심이 깊은 분이셨는지 평소에 대화할 때는 항상 온화한 표정을 지으셔서 눈치챌 수 없었는데, 사실은 이미 신체의 절반이 중풍의 침노를 받아 자유롭지 않았으며, 가끔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가르고 지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장기간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끝에, 지금은 온몸이 같은 감각으로 돌아온 편이라고 합니다. 이러니 편안한 마음, 수행 끝에 안식을 찾은 영혼의 치유력이 얼마나 강한 위력을 갖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고통스러운 가부좌 자세 끝에 이런 효험이 나타났다고 하니 말입니다.
사실 요즘은 입식 생활이 주류이기 때문에, 특히 가부좌 자세를 취하라고 하면 대부분이 오래 버티질 못하고 다리에 쥐가 납니다. 이런 와중에 산중의 절에서 이 자세로 수행하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힘들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 참선에 진정 깊은 뜻을 두었다면 낯선 자세가 큰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을 듯합니다. 책에는 20대 후반의 청년, 필라테스에 큰 관심을 갖던 이선미씨라는 여성분, 필리핀 출신의 30대 후반 여성 등등 면모도 매우 다채롭습니다.
저자께서는 수행을 지도할 때, 우리가 흔히 쓰곤 하는 "행복, 사랑" 같은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스님 말씀은, 이런 단어는 매우 주관적일 뿐 아니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을 담게 되므로 어차피 무의미하다는 취지입니다. 부처님도 그의 제자 마하가섭을 향해 불립문자, 심심상인, 염화미소의 가르침을 전한 바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실천이요 행동이지, 번잡한 말이 아닙니다. 말은 오히려 감옥이고 혼선의 근원입니다. 세속에서 이룰 수 있는 성취를 웬만큼 다 이루고 돈도 원 없이 벌어 보신 성공한 사업가의 생생하고 실감나는 "친근한 법언"이라 더욱 집중하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