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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사탕 대소동 ㅣ 반짝반짝 빛나는 아홉살 가치동화 1
최은영 지음, 이현정 그림 / 니케주니어 / 2021년 3월
평점 :
"가치동화"라는 말을 자주 들어 보셨나요? 책표지에 이 말이 나와 있었지만 처음에 저는 그저 예사로 넘겼더랬는데 다 읽고 나서 약간 한 방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독후감 말미에 따로 말하겠습니다.
사실 책을 처음부터 꼼꼼히 읽었다면 그런 느낌은 안 들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pp.4~7에는 최은영 작가의 "작가의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작가께서는 이 동화의 창작 의도, 결말(결론?)이 어디로 갈지 미리 독자들에게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순순히 책장만 잘 남겼어도 "당황스러운 기분"은 피해갈 수 있었죠. 음... 그래도, 소설이나 동화나 영화를 볼 때 "반전(일종의)의 충격"은 대체로 유쾌한 편이기에, 결과적으로는 잘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주인공은 신하라는 이름의 아이인데, 이 아이는 좀 솔직하고 적극적이며 선생님 상대로 별 거리낌없이 하고 싶은 말도 하는 편입니다. 그런 성격 덕분에 얻는 바가 많은가. 앞으로 더 살아 봐야 알겠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적어도 이 책 안에서는 꽤 결과가 좋은 편입니다. 이 이야기의 발단은, 주인공 신하의 적극적이고 (어찌보면) 좀 막무가내인 성격, 스타일이었습니다.
신하의 반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칭찬 사탕"이라는 인센티브를 유지하는데, 다른 친구들보다 잘한 게 있으면 칭찬의 의미에서 사탕을 주는 식입니다. 사탕 하나가 대단할 건 없지만(치의과적 이유 때문에 요즘 부모들은 오히려 꺼리기도 하죠), 일종의 상징적 의의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서로 받으려고 난리입니다. 이런 게 통하려면 선생님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거나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아마 나이도 젊고 그런 만큼 다소 경험이 부족하신 면도 적지는 않지 않을까, 저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이유는 뒤에서 제 나름대로 써 보겠습니다).
지호와 재현이는 사내아이들인데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신하가 이니셔티브를 취했기에 같이 청소를 한 얘네들도 덩달아(?) 사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신하는 더욱 으쓱해하며, 사실 이처럼 또래들 사이에 받는 인정, 일종의 리더십 획득이 이런 행동, 성격의 주된 동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전쟁 직후도 아니고 사탕 한 알이 큰 인센티브는 아니겠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음... 본래 사촌, 그 중에서도 고종사촌인 아린이는 평소부터 그리 신하한테 호의적인 편이 아닙니다. 성격이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고모가 원래 자기 오빠네 식구한테 그리 좋은 감정이 아닌 건지(?), 혹은 아린이가 본래 잘난 점이 많아서 주위 사람들 흠이 제 눈에 잘 들어오는 편인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 아린이가 신하의 기분 좋은 일에 대해 딴지를 걸고 들어오기를 아주 즐긴다는 거죠. 이 일 말고도 말입니다.
"뭘 잘 한 게 있는데 칭찬사탕을 줘?"
"청소."
"청소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그런다고 칭찬사탕을 줘? 너희 선생님은 너무 기분파 아냐?" (p22)
어떻습니까? 만약에 아린이가 아니라 그 엄마, 즉 신하의 고모가 이런 말을 했다면 또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이인데 구태여 듣는 신하 기분 망치게 이런 트집을 잡는다? 거 참 애 성격 한번 특이하다... 이런 생각이 누구나 들 만합니다. 헌데, 솔직히 말해서 더 당혹스러운 건, 저 아린이의 말이 (사실) 옳다는 겁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때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웃죠. 어른들이 긴장하는 건 애들이 저처럼 맞는 말을 할 때입니다. 그 생각이, 어른인 우리들의 마음 속에 미처 떠오르지 않았을 때 우리는 더 당황해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음... 이야기 속에서 (구태여 따지자면 아마도) 빌런에 가까울 아린이가 이런 말을 하니, 성인 독자들은 마음에 긴장이 생깁니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권위(authority)는 결국 올바른 것으로 판명이 나야 한다. 이제 담임 선생님의 처사는 어떤 과정을 통해, 다시 정당성을 획득할까?"
음. 그 전에, 아린이의 항의, 의문 제기가 신하의 클래스 안에서 어떤 공명, 공감을 얻기나 할지도 아직 의문입니다. 이 말다툼(축에도 끼지 못하지만)은 그저 집 안에서의 작은 소동으로 끝나지 않겠습니까?
한편 신하네 반에는 현수라는 아이가 새로 전학옵니다. 전학생이 최초라고 하는군요. 현수가 모 고깃집 아들이라고 하니까 이 반은 곧바로 선망의 웅성거림이 웨이브를 그립니다. 고깃집 아들이 그 정도로 부러움의 대상인가? 저희 때 분위기라면 좀 상상하기 어려운데 뭐 요즘은 그런가 봅니다. 먹고 싶을 때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그렇다는 걸까요, 아님 (동화 중에 나오는 대로) 동네에서 특별히 잘나가는 음식점이고 그 결과 현수네 집이 상당히 잘 살 것 같다는 추론 때문일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이제 거액의 권리금을 주고 갓 입주한 곳이라면? 그 장사의 성패 역시 불확실합니다. ㅎㅎ
여튼, 현수는 이상하게도 선생님으로부터 특혜(?)를 받습니다. 눈이 나빠서 앞자리에 앉는 건 그렇다쳐도, 왜 급식 시간에 남들보다 먼저 배식을 받는 걸까요? 이건 따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책 후반에 이유가 나오므로 여기서는 내용 누설을 삼가겠습니다.
잠시 앞으로 돌아가서, 확실히 아린이는 신하보다, 혹은 또래 아이들보다 좀 똑똑하고 사리에 밝은 것 같습니다. 똑똑한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이런 애들은 어려서나 커서나 어디 가서 부당한 손해는 보지 않습니다. 뭐 대개 그렇더라고요. 아래 대화를 보십시오.
"너희 선생님이 현수 고모쯤 되는 거지. 그래서 현수의 고모인 너희 선생님(아닙니다!)이 현수를 특별 대우해 주는 거야."
"야, 그렇다고 너희 엄마가 나한테 특별 대우해 주는 게 뭐 있냐?"
ㅎㅎ 확실히 아이답게, 신하는 아린이의 논리적 비약에 초점을 두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평소에 자신한테 특별히 잘 해 주는 것도 없는 고모에 대한 억울함을 표현합니다. 물론 즉각, 똑똑한 아린이에 의해 반박당합니다.
"우리 엄마는 선생님이 아니잖아!"
그 다음 신하의 말이 웃깁니다. 하긴 고모(즉 아린이 엄마)는 보험회사에 다니니, 나한테 뭘 잘해주고 말것도 없다는 것. 이 대목에서 독자는 피식 웃음을 짓게 되는데... 여튼 근거가 있건 없건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곧잘 관철시키는 재주가 있는 걸 보면, 아린이는 아마 엄마의 피를 이어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특정 직업군에 대한 비하의 의도는 절대 아닙니다. 잘하시는 분들이야 억대 연봉 받고 잘나가시죠.
음... 여튼, 삼국유사에도 "여러 사람들의 말은 쇠도 녹인다"는 격언이 나오는 대로, 우리 민족은 뭇 대중이 마음을 모아 소리치면 결국은 그게 통하는 식으로 항상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충격을 받은 건, 결국 이 이야기에서...
(내용 누설 주의)
선생님이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앞으로 개선을 약속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작은 학급에서 웬만하면 권위가 유지되게 하는 것도 중요한데, 여기서 사탕의 배분이나 현수에 대한 배려가 과연 "공정이라는 가치의 위반"에까지 다다른 건지는 의문입니다. 형식적인 과업의 완수가 아니라 열성을 다한 행동이라면 사탕을 줘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요즘 브레이브걸스가 역주행에 성공하여 탑티어로 다시 태어난 것도 "평소에 남들 외면하곤 하는 군부대 위문 공연 등에 정성을 다하여 임하는 성실한 태도"가 하나의 중요 이유가 되었다는 점도 떠올려 보면 말입니다.
여튼 공정이라는 가치는 중요합니다. 또, 본문 중에도 나오듯이, 이 공정이라는 가치는 그저 결과의 평등을 말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또한, 선생님이라고 해도 가치의 설정이나 그 내용에 대한 합의는 학생들과 함께 이뤄 나가야 한다는 점은 깊이 새길 만합니다. 동화 속뿐 아니라 현실에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