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경제, 동반성장, 자본주의 정신
정운찬 지음 / 파람북 / 2021년 3월
평점 :
우리 나라는 그동안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이뤄졌습니다. 이런 대기업 위주의 성장은 예를 들어 대만이 선보이는 중소기업 위주의 성장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대만 역시 1980년대 이래 한국처럼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 왔으며, TSMC 같은 세계 굴지의 기업이 반도체 산업을 리드하는 것만 봐도 그 성장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한국 역시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첨단 산업 분야에서 새로이 세계 정상을 차지했으니 대만만 못하다고 결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한국은 어떤 진로를 취해야 할까요? 삼성 등 대기업이 그간 잘해 있으니 이를 적극 장려하고, 기업이 보다 기업하기 좋은 풍조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크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최근 이재용 회장이 수감되었을 때 그를 동정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그간 재벌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마냥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지금처럼 펴 나가도 문제가 없을까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여 남용 악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집니다. 남의 기술을 뺏어서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런 일이 일상화하면 앞으로 젊은 인재들이 어떻게 의욕과 패기를 갖고 아이디어를 내며 건강한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한국처럼 국토가 협소하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저 후츠파의 정신으로 일어선 이스라엘 모델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요구하는 바는 재벌의 몫을 나눠 달라는 게 아니다(p94)." 재벌은 재벌의 영역에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중소기업은 자신의 강점이 있는 영역에서 자신만이 발휘할 수 있는 창의력을 발휘하게 장려되고, 그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오랜 동안 주창해 온 동반성장의 핵심입니다.
이 책의 제목, 그리고 본문에는 "자본주의 정신"이란 말이 들어 있고 자세히 논의됩니다. 자본주의 정신, 즉 가이스트 카피탈리스무스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노동과 창의와 근면과 헌신의 정신을 귀하게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이익을 창출하며, 그 결과는 개인의 영역에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처럼 재벌이 중소기업만의 성과를 함부로 침해하고, 이후의 재생산이나 창의력 발현을 막는다면 이것은 자본주의의 존중이 아니라 그 정신의 말살에 가깝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걱정 없이, 자신만의 기여를 사회에 베풀고 그 대가를 합리적으로 거두어갈 수 있게 돕고 북돋우는 게 정부의 할 일입니다.
"후생"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체계화했을 때 이 개념은 대단히 보수적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후생은 이제 재정의되어야 하며, 많은 이들이 최대한의 만족을 누리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자유와창의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오랜 세월 동안 강조해 온 동반성장 정신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