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80년 생각 - ‘창조적 생각’의 탄생을 묻는 100시간의 인터뷰
김민희 지음, 이어령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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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책입니다. 설령 아주 평범한 이웃집 노인분이라고 해도 80년 생애를 살아 오셨다면 얼마나 깨우치신 바가 많고 그 삶에 배울 대목이 많겠습니까. 하물며 이어령 교수님은 꽤 젊어서부터 문명(文名)을 날리신 분이기에, "80년 생애"라는 타이틀만 봐도 가슴이 철령 내려앉는 듯합니다. 아주 젊은 편이라면 차라리 별 감각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이제 나이를 좀 먹었다면, "80년은 고사하고 저분의 20대와 비교해도, 지금 이 나이를 먹은 내가 과연 무슨 사유의 성숙함을 갖췄을까?"하며 자괴감에 빠질 만합니다. 하물며 80년이라. 그런데 이러면 차라리 "아 80년이시니까" 하며 나 자신을 좀 너그럽게 보는 마음이 들 만합니다. 아무리 부실한 인생이라 해도 80년을 산 현자의 지혜 앞에서야 그리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p128에는 <축소지향의 일본인> 탄생에 얽힌 배경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처럼이나 젊은 나이에 그런 노작을 쓰시고 일본 현지에서도 극찬을 받았으니 이어령 선생님은 과연 천재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나루호도!" 이후에도 선생은 일본에 자주 방문도 하고 체류도 하셨는데 그 무렵을 담은 회고는 사실 선생의 생애에 여러 굴곡 많은 사건들이 겹쳐서인지 그리 밝은 분위기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p212에는 한예종 설립에 관한 사연이 나옵니다. 밀가루 봉변으로 유명한 정원식 씨가 당시 국무총리이셨나 봅니다. 이어령 장관님은 당시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는데(그 전에는 문화공보부 등 다른 명칭이었습니다) 이처럼 한예종 같은 한국의 명문교 수립에도 크게 간여하셨다는 점 우리 독자들이 염두에 둬야 맞겠습니다.

p264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루지 못한 두개의 프로젝트가 나옵니다. 세계의 길이라는 프로젝트를 들어 본 적 있나요? 우리 한국은 (일본도 그렇지만) 국토의 70~80%가 산지입니다. 당연히 이런 국토에 얽힌 사연도 많고 길과 길을 연결하면 그 스토리가 무한정으로 길어지며 그윽한 감성을 풍길 것입니다.

"무지개 색은 셀 수 없는 불가산 명사야(p330)."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봐고 해서 어떤 구획을 정합니다만, 실제로 비가 갠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면 그렇게 띠가 명확히 나눠지는 게 결코 아니죠. 결국 말과 말이 (다 부질없는) 경계를 낳고 다툼을 낳고 소모적인 대립을 양산합니다. 정작 고승들은 예로부터 "색즉시공"이라는 궁극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남겼는데도 말입니다.

p348에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남은 건 오로지 문화의 힘"이라고 합니다 .하긴 백범께서도 그의 노작 중에 그런 말씀을 남긴 적 있습니다. 한국인은 문화 아이큐가 높고, 이 문화 아이큐를 통해 강한 군사력 없이도 기나긴 생존을 이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생존은 그리 비루하지 않았고, 약간의 지혜 발휘를 통해서도 주변 민족에 비해 무척 풍요로운 것이었습니다. 중국인 민중 대다수는 지배층의 노예로 살았고, 유목 민족의 정복 통치 하에서 엄청난 굴욕을 겪은 시간이 많았으며, 유목 민족들 중 대부분은 그저 약탈과 파괴로 죄 많은 역사를 일궜을 뿐이지 않습니까? 선생은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자신을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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