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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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는 책프에 참여하면서 11기 17주차, 22기 12주차 등 두 번에 걸쳐 장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독후감을 쓴 적 있습니다. 전자는 김희영 교수님, 후자는 방곤 교수님 번역이고 두 분 다 한국 불문학계의 거물들입니다. 사실 두 번역 다 명작이긴 하나 조금 올드한 면이 있어서 이제는 새 번역이 나올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체들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것을 만질 수 없어야 마땅하다.(중략) 그것들은 유용한 것일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데, 이게 견딜 수 없이 느껴진다.... 그것은 일종의 달착지근한 욕지기였다(p34)."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실존과 존재 사이의 갈등이 유발하는 "구토"가 되겠습니다. 그래봐야 물건은 물건일 뿐이고 우리한테 어떤 실존적 위협을 가하진 않습니다만, 우리가 안심하고 타자화한 어떤 사람이 이제 전혀 다른 의의로 나에게 접근하고 심지어 나를 만지기까지 한다면 그로 인한 거부반응, 혹은 구토는 더 이상 주관적 느낌에 머물지 않습니다. 여기서 갈등이 유발되고 투쟁이 시작됩니다.

"그러자 그는 아랍어로 소리지르기 시작했고, 한 무리의 지저분한 작자들이 아타린 시장까지 우리를 쫓아왔다. 그것을 뭐라고 불러도 상관 없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내게 일어났던 사건이었다(p94)." 여기서 "일어났던" 부분은 볼드체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어 특유의 예리한 시제 개념이 잘 녹아 있는 대목이며, 주관적 지각과 객관의 사건이 날카로운 충돌로 주체에게 구토를 유발하는 대목 중 하나겠죠.

p144에는 주인공이 모레스 발레르의 볼기를 치는 꿈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병사의 말이 몹시 거친데 앞에서 제가 말한 다른 두 분의 번역에는 이 단어(뭔지는 이 독후감에 구태여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가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병사의 말이며, 본래 이 단어는 어원이 군사용어이기도 하므로 그리 어색하거나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이자는 머리가 돈 인간인가? 아니면 불량배의 범주인가?(p162)" 사실 불량배의 상당수는 머리가 돈 인간이므로 구태여 선택 관계의 명제 중 한 구성 범주를 차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그는 멋진 주름살이란 주름살은 다 가지고 있었다.:" 주름도 사람에 따라 종류가 참으로 다양한데,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만큼이나 그 영혼도 감정도 다양한 경로를 그리고 있겠으며, 한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주름의 범주를 다른 한 사람이 모두 그 얼굴에 가지고 있다면 정말 드문 일일 텐데, 이런 우연의 일치 역시 구토를 유발할지 모르겠습니다.

"의사들, 사제들, 관리들, 그리고 장교들은 마치 자신이 만들어낸 것처럼 인간을 잘 안다(p163)." 직업상 그래야 마땅하겠으나, 오히려 그렇지 못하고 함부로 편협한 추론을 일삼는 인간이 구토를 유발하며, 이런 현상을 대범히 넘기지 못하고 일일이 역겨운 반응을 느껴야 하는 주체 역시 구토가 나올 만한 인간인 건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불쌍한 테레종 부인! 저분은 절대로 불평하는 법이 없어(p222)." 이 소설에는 유독 불쌍하다는 감탄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많습니다. 책 p90에는 파스칼의 말 "습관은 제2의 천성"이 인용되는데 이 "습관"은 p50에도 롤르봉 씨의 습관(덕지덕지 분을 바르는) 설명에서 구토 유발 요인으로 다시 끌려나옵니다. 주인공이 자주 들르는 카페의 여성 사장은 이름이 프랑수아즈인데, 그녀는 관계 짇적전에 "괜찮다면 스타킹은 벗지 않을게요(p26)."라고 로캉탱(주인공)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관계는 사장님 부재(p52)시 웨이트리스인 마들렌이 대신하기도 합니다. 저는 중2때 김희영 선생님 번역으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도 이 묘한 관계의 오버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카페의 단골 손님이기도 한 독학자(저는 이 단어 말고 좀 다른 마말로 원문의 느낌을 전달할 대안이 없을까 내내 불만이었지만, 역시 그런 건 없나 봅니다)는 소설 말미에 그 봉변을 당하는 게 다 한심한 습관 때문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적 지향이 어땠든 간에 미성년자들에게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죠. 독학자는 어리석음의 대가를 호되게 치르겠으나 끝내 롤르봉 씨의 실체를 규명 못 한 로캉탱은 이제 공범자(?)를 그리 내팽개치고 온 후 자신에게 욕지기를 느끼지 않을까요? 유능한 역사가는 모순투성이인 인간 행적에 대고 그 나름의 의의와 질서를 부여할 수 있으니 구토를 잠시 멈출 수 있겠지만, 그 안정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철학자의 소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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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6 13: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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