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20년간의 처절한 삶의 기록
설운영 지음 / 센세이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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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조현병"이란 말을 씁니다만 예전에는 "정신분열증"이란 말을 사용했었죠. 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데 일조하기 위해 가능하면 순화된 용어를 쓰는 게 중요하긴 합니다만 사실 조현병이란 말은 좀 어렵게 느껴집니다. 형태소를 분석해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튼 어떤 사람에게건 그 식구가 몸이 아프다는 건 참 견딜 수 없는 비극입니다. 이런 비극은 또 참 갑작스럽게 닥칩니다. 몸이 아픈 것도 돌보기가 어려운데 마음이 아프다면, 또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가 있다면 정말로 당사자와 가족이 힘 듭니다. "아무도 예감하지 못했던 그 병은 도둑처럼 스며들었다(p31)." "아이는 얼굴이 백설같이 희고 인형같이 예뻤다(p35)." "투정하는 둘째 아이와는 달리 늘 양보하고 배려 있고 잘 웃는 아이였다(같은 페이지)." 이런 아드님을 슬하에 첫 자녀로 둔 부모는 참으로 복 받은 분들입니다. 아기들이라고 다 순하고 영리한 게 아니라, 속 썩이고 말 안 듣고 정신 없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여튼 이랬던 아이가, 갑자기 "도둑처럼 찾아온 조현병"에 의해 영혼을 도둑맞았다면 부모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보통 가정 같으면 이런 크나큰 시련을 맞고 머지않아 풍비박산이 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가 공부를 못한다, 이런저런 사고를 친다 등등 해서 얼마나 속을 썩고 아픔을 겪습니까만 이만큼이나 큰 시련을 겪는 부모 입장이라면 감히 상상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저는 난치병에 걸린 아들을 치료하는 부모의 이야기인 <로렌조 오일>이란 영화를 본 적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저자께서는 대체 조현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연구를 하신 결과 세로토닌, 도파민 등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생기는 병이라는 점을 배우셨다고 나옵니다. 후.... 따지고 보면 그 복잡한 인체에서 특정 호르몬, 물질 분비, 대사가 자칫 조금만 지장이 생겨도 이런 몹쓸 병이 찾아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보면 말라키아 수도사가 "하늘은 위에, 땅은 아래에, 이야말로 기적 중에 기적이로다." 라고 되니는 장면이 있는데, 우리 몸의 장기, 체액 등이 그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곳에 제대로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부모님 입장에서는, 평소에 이상 행동을 하고 셩격이 드세고 자기 욕심만 부리고 하던 애가 병을 일으켰다 해도 아 성격이 그러니 이런 병도 자기 스트레스를 못 이겨 걸리는구나 하며 뭔가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만(실제로 제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나 얌전하고 착한 아들이 정말 느닷없이 마음이 아픈 병으로 고생을 하니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을지.... 참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프네요.

"아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날밤 아내는 밤새 꺼이꺼이 울었다.(p40)" 이 문장은 어느 교회를 찾아가서 목사님과 상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는 대목 바로 뒤에 나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그저 교회의 영업만을 계산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이들도 많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런 목사님을 만나셨다는 사실 자체도 어찌 보면 행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우리 주변에는 이런 남의 고통과 불행을 두고 은근히 즐기는, 남의 말 하기 좋아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상상도 못할 저질의 인간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부분은 남이 자신을 공감 능력 가득한 사람으로 봐 주기를 원하는 가공할 위선자들이죠. 그런 사람도 자기 자신의 고생, 억울함을 이야기할 때는 닭똥 같은 눈물을 짐짓 연극적으로 떨구면서 자기만의 감상과 도취감에 빠져듭니다. 이런 사람이 주변에서 비교적 먼 거리에 있다면 그 역시 행운이라면 행운입니다.

위에서 제가 "조현병은 (그런 용어를 도입한 사회공리적 목적이 무엇이고 얼마나 크건 무관하게) 말이 너무 어렵다"고 했는데 이 책 p72에 보면 그 용어 개정의 취지가 설명됩니다.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처럼 정신의 음색이 고르지 않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설명하시는데 그 뒤에 또 추가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정신세계가 총체적으로 망가져서 도덕감과 윤리의식까지 마비된 비인간적인 사람"을 연상시키는 게 구 용어 "정신분열증"이었다고 합니다. 정작 이런 사람은 따로 있고, 단지 특정 호르몬 분비가 원활하지 않을 뿐 남에게 해를 전혀 안 끼치는 사람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게 모순된 현실이죠. 사실 한국에는 별반 지식과 소양도 없으면서 자칭 의학 전문가 행세를 하며 가당치도 않은 우월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정신분열증"이란 말은, 의사도 아니면서 의사 흉내를 내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단죄하는 어설픈 사이비 전문가들에게나 불어야 할 병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미권에서는 장애인을 두고 비교적 최근에 "챌린지드 맨"이란 용어를 씁니다(p98). 그 이전의 디스에이블드나, 핸디캡트 같은 말이 좋지 않은 느낌을 준다는 이유에서이죠. 이 "챌린지"라는 말은 물론 우리가 다 알고 있듯 "도전"이라는 뜻입니다. 남들이 운 좋게 피해간 시련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고, 그 도전을 현재 이겨 내는 중인 사람이라는 뜻이니 참으로 적절합니다. 사람들이 참 자기 일에나 온전히 신경 쓰면 될 텐데 구태여 "저 집에는 아이가 왜 집에만 있냐"며 이상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죠. 그래서 저자님과 그의 가족들도 이사를 갔고, 아드님의 체형을 보다 멋지게 만들기 위해 보디빌딩을 시작했는데 이게 효과가 좋더랍니다. 역시 마음이 우울할 때 이를 다잡고 극복하는 방법 중 운동만 한 게 또 없다는 점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시련은 사실 한두번 강한 마음을 먹는다고 쉽게 극복이 되는 게 아니죠. 아이 역시 쪽지를 남기며 "교회 위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한 적이 있으며 저자님과 그 아내분 역시 같이 세상을 떠야겠다는 마음을 품은 게 여러 번이라고 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후 나같으면 벌써 세상을 떴을지도 모른다고 쉽게 말하곤 하는데, 이런 말이 그만큼 저분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자기 딴에는 합리화하는지 모르겠으나 그 역시 타인의 고통을 타자화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의도가 다분한 언사입니다. 그런 말 쉽게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가장 지독한 천벌이 머리에 떨어지길 바랍니다.

"회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회복이 있다. 회복은 인간(人間)에게 있었다." 이 말은 p125에 나오는데 역시 "인간"이란 한자어의 중의성을 되씹게 해 주는 문장입니다. "인간"의 첫째 의미는 개별적인 사람을 뜻하는데, 그게 알고 보니 "사람(의) 사이"였다는 게 놀랍죠.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만 사람이기에, 역시 사람의 병도 상처도 사람 사이에서만 치유될 수 있는 게 아닐지...

저자는 예전에 어떤 50대 아주머니가 20대 아들을 파출소(당시 용어이겠습니다)에 데리고 오면서 "증세가 너무 심해서 집에 데리고 있지 못하겠다"며 하소연하던 경험을 떠올립니다. 청년은 당시 해맑게 웃으면서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라고 하더라는데, 그때 저자는 "왜 정신병은, 똑똑한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가?"하고 의문을 가지셨다는군요. 그런데 사실 운동 많이 하는 사람이 다치기도 자주 하듯, 정신을 많이 쓰는 사람이 정신에 타격을 받기도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 역시 머리 좋은 사람이 업보처럼 이겨내야 할 도전인데, 간혹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사이코패스처럼 남을 이용만 하며 살살 빠져나가는 근성이 몸에 밴 것도 본 적 있습니다. 물론 멍청한 인간도 그것도 머리랍시고 그 나름 머리를 써 가며 온갖 못된 짓을 하며 못된 인성을 증명하는 것도 부지기수로 봅니다. 인생은 참 이래서도 어렵고 저래서도 어렵습니다.

"한 번도 정신이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돌을 던져라(p155)." 그런데 애초에 정신이 한 번도 안 아파 본 사람은 자신의 상태에 감사하며 절대 함부로 남을 비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 자신이 뭔가 정신에 단단히 결함이 있기에 easy victim을 찾아서 막 목소리를 높이는 거죠. 우리 나라에는 이렇게 좀 근본적으로 정신이 비뚤어지고 남 탓을 습관적으로 하면서 매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말은 이런 사람들한테나 갖다 붙여야 마땅한데도 말이죠. 한국처럼 나쁜 환경에서 소중한 자녀를 온갖 불리한 변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함께하시는 용감한 부모님들께 박수를 보내며, 병 자체보다 남 일에 주제넘게 끼어들며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 인간들 때문에 더 힘들어하실 가족들께 저부터라도 대신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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