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 쇼퍼 - 읽고 싶어지는 한 줄의 비밀
박용삼 지음 / 원앤원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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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여러 복잡한 사정과 정보가 얽혀 돌아가기에 무엇이 곁가지이고 무엇이 본질인지 외부인이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이 뽑는 헤드라인들과 기사들은 우리 일반 독자들에게 "사건의 핵심"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게 소명이며, 우리들도 혹시 직장에서 문서 작업 같은 걸 할 때 요령 있는 글쓰기가 필요하다면, 이런 기술이랄까 노하우를 익혀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마일리지는 몹시 이중적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항공사들은 그 소멸시효가 길게 잡히지만 대신 쓸 수 있는 경우가 제한되어 있다는 건 단점으로 꼽힙니다. 저자는 "통신사 마일리지는 씹힐 일 없고, 빵집 마일리지는 터질 일 없었으면 한다"고 말합니다(p108). 남성들은 대개 주유소 마일리지에 "목숨 걸고" 요즘처럼 외식, 숙박 쿠폰을 정부에서 나눠 주는 시기에는 실적 채우려고 별 긴요할 것도 없는 소비를 하는데 뭐 다 이런 행태를 노리고서 각종 이벤트들이 애초에 고안된 것이겠습니다. 책에 인용된 예문은 재작년 어느날 한겨레 기사인데, 일반 시민 입장에서 가장 큰 불편을 느낄 만한 포인트를 잘 짚어 우리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게 쓰인 듯합니다.

"박싱데이"는 성탄절 다음날 이웃들과 이런저런 나눔을 위한 "박싱"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 기사(중앙일보)에서 다뤄지는 손흥민의 약간 부진한 활약상은 "손이 묶인" 것으로 표현(p61)되는데 물론 우리 한국인들에게만 잘 통할 듯한 동음이의 말장난입니다. 저자는 언제부터 토트넘이 우리 국민들에게 비교적 익숙한 지명이 되었는지를 살짝 짚는데 해당 기사뿐 아니라 그 더 넓은 배경 사정을 두루 짚으면 더 입체적인 독해가 될 듯도 합니다.

농경 산업 위주의 경제 체제에서 사람들은 대개 토지에 결박된 생활 방식을 영유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농노"라는 계급이 있었고, 근세 이후의 조선에서도 법제상으로는 자유로웠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토지를 떠난 생활이 불가능한 빈농들이 많았으며 외거 노비 등은 아예 법적으로도 종속된 신분이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제약이 결국 한계 상황에 달한 농민들을 "화전민"으로 내몰았는데, 2019년 7월 10일의 중앙일보 기사(p42)는 일자리를 아마도 곧 잃게 될 택시기사 등에 대해 이런 우려와 동정의 시선을 보냅니다. 화전민은 비록 준 도망자의 신분이지만 척박하나마 일궈 먹고 살 산지라는 땅이 있었는데, 일자리를 완전히 잃은 택시기사는 그나마 갈 곳이 없겠죠.

책에서는 적기 조례의 예를 들며 규제 때문에 혁신이 막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만 어느 분의 말마따나 "사람이 먼저"이지 않을까요? 또 영국 자동차 산업은 반드시 "적기 조례" 때문에 망한 것도 아닌데 요즘 미디어에서 역사를 너무 단순화하여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도 합니다. 기술이 발달하면 그에 걸맞게 일자리가 새로 창출되겠지만, 이는 대부분 젊은 세대의 몫일 뿐 "현대판 화전민"일 택시 기사 등을 위해서는 아마 합당한 대체 일자리 등이 마련되기 힘들 겁니다. 물론 과학기술의 진보 자체는 아무도 막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요. 여튼 이런 논의는 기계적인 논리에 따르거나, 근거 없는 막연한 낙관론에 기댈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나가는 상가의 이런저런 코너에는 "권리금"이란 게 붙는데 일종의 영업권 거래입니다. 약사를 어느 점포에 입점시키고 싶을 때 "이 건물 4~5층을 세브란스 출신의 의사가 통으로 임차했다"고 한 뒤, 배우인지 의사인지 모를 어떤 이가 안심시키러 등장도 합니다(p30의 한겨레 기사). 이 모든 진행이 권리금 사기를 위한 쇼였는데 이런 장르의 영화를 케이퍼 무비라고도 하죠. 영화에선 악당을 속이기 위해 완벽한 세팅을 해 두고 수없이 많은 조단역들이 바람을 잡는 과정이 통쾌하게 전개되지만, 현실에서 이런 사기에 속아나는 건 힘 없는 서민들입니다. "의적 사기꾼"은 그저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능할 뿐입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어느 영화의 명대사 때문에 유명해졌는데 우리 사회의 몰상식한 부분을 날카롭게 꼬집었기에 많은 이들의 동의와 공감을 얻었습니다. 책 p216의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재난지원금 "기부"에 얽힌 이런저런 논란과 함께 저 "명대사"를 엮었는데, 왜 일방의 호의가 (달갑지 않은) 타인의 권리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저자의 느낌이 재미있게 적혔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젊고 잘생겼으며 스마트한 엘리트 출신으로 프랑스판 제3의 길을 선언하여 한때 국민적 기대를 모았습니다만 현재는 꽤 고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만약 양극화 이슈가 거리 시위로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불안이 촉발된다면 청담동의 일부 샵 등이 타겟이 될까요? 시위가 꽤나 빈발하던 한국의 현대사였으나 여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국민의식 수준이 프랑스보다 높다는 방증도 되고, 계급, 계층 구조가 프랑스의 그것과는 달라서일 수도 있습니다. 푸케는 프랑스 역사에서 아주 유명했던 어느 군주의 재무장관 이름이기도 하죠. 노란조끼 시위대는 자신들의 명분에 스스로 먹칠을 했다(p242)는 게 저자의 총평입니다.

한국형 뉴딜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그저께에도 문 대통령이 전남 신안을 방문해 대규모 풍력 단지 조성을 약속했는데 이런 최고권력자의 행보가 이뤄지고 뉴스를 타면 해당 종목들의 가격이 증시에서 거의 반드시 들썩거립니다. 경제 정책이란, 참여자들의 어떤 의욕을 북돋우고 심리만 진작시킨다 해도 그 나름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만 심리적 들뜸만으로 실물이 생산되지는 않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사장의 시선이 피운 꽃은 생화인가 조화인가(p280)" 역시 경제에는 펀더멘털이 중요함을 강조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신문을 읽을 때에는 일단 표면적으로 제시된 팩트와 정보도 요령 있게 추려야겠으나 그 행간도 빠지지 않고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 책 저자가 보여 주는 모범처럼 독자로서 나만의 생각이나 상념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어떤 정신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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