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역전
이명찬 지음 / 서울셀렉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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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한국과 일본의 위상이 역전되고, 오히려 한국에 선진국적 요소랄까 배울 점이 더 늘어나며, 반대로 일본은 침체한 사회 분위기에 발전과 혁신의 요소가 더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부쩍 늘어난 걸 감지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소위 "국뽕"의 위험이 있다고도 하지만, 명백한 팩트상으로 우리가 앞지른 건 그것대로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현황을 분명히 체크해야, 반대로 여전히 뒤처진 부분이 어느 지점이며 어떻게 해야 마저 역전이 가능할지 대책을 더 명확히 마련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행어가 한 사회와 시대를 관통할 때는, 그게 그저 변덕스러운 유행의 결과만은 아니고 분명히 어떤 시대정신 같은 걸 대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네 분수를 알아!"라는 핀잔이 자주 들린다고 하는데(p88), 물론 자신의 한계와 역량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공연한 흰소리나 허풍을 떨지 않아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남 보기도 싫고, 무엇보다 실상의 자신보다 부풀려 말하는 게 습관이 되면 참된 자존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체면을 사리기 위해 거짓말을 떠들고 다녀도, 진짜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는 본인은 적어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수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 자신에의 다짐이 아니라, 남을 핀잔주기 위해 "분수를 알 것!"을 외치는 게 사회적 습관이 되었다면? 이는 그만큼 "분수를 모르다가 큰코 다친 일"이 잦았다는 뜻도 됩니다. 사회의 활기가 줄어들고, 진행하던 일이 잘 안 풀리고, 사업이 실패하며, 혁신의 기풍이 드물어지면 그런 결과가 나오겠죠. 반대로 30~40년 전 일본 사회에 돈이 잘 돌고 해외에 수출이 원활하여 국부의 증진이 쉬웠던 시기에는 아무도 타인에 대고 "네 분수를 알라!"고 쉽게 소리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분수 같은 것 걱정 않고 의욕 있게 자신의 일만 추진해도 성공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거죠.

한국은 어떨까요? 일본에 비해 아직은 에너지가 넘치고 자기 일에 몰입하며 땀흘리고 신명을 바치는 분위기가 더 우세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갑질"이 많고, 남의 의욕을 꺾는 모욕적 언사가 어디에나 팽배한 건 (모르긴 해도) 일본에 못지 않은 듯합니다. 일본인들은 이런 자신들 사회의 분위기를 두고 "국운이 쇠퇴해서"라고 하는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지금은 국운이 융성하고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라 만족하던 때가 있었나요?

1980년대가 살기 좋았고 금리도 높아서 목돈 만들기 쉬웠으며 웬만해선 사업이 망하지 않았다고들 회고하지만 각종 시위가 그토록 빈발하고 범죄율도 높았던 걸 보면 모두가 만족하는 사회는 (민주화 이슈를 제외하고서라도)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렇다고 지금을 모두가 행복해하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겪은 중 최악이라며 불평하는 이들도 매우 많습니다. 이런 건 일본과 같은 잣대를 대어 비교 분석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 "일본인들의 입으로 털어놓는" 심각한 침체에 대한 여러 발언은 한국인 독자 입장에서 매우 흥미로우며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는 듯합니다.

"일본은 우경화되었고, 한국은 민주화되었다(p96)." 우경화와 민주화가 단일한 평면에서 비교될 개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의 우경화는 이미 1980년대 혹은 그 이전 미키마 유시오의 자살 때부터 부각이 되었습니다. 나카소네 전 총리의 신사 참배나 교과서 왜곡 사태가 기점이었고 유시민의 책 초판에도 따로 한 챕터를 통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경화는 그를 넘어, 한국에 대한증오가 중심이 된 "혐한" 풍조가 또하나의 뚜렷한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 전만 해도 점잖은 사람들은 설령 우파라고 해도 노골적인 감정 표현을 자제했었으니 말입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와 환상의 호흡(?)을 이룬 각료 중에 고노 외무 장관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고노 요헤이의 아들이며, 고노 요헤이는 일본의 책임을 일정 부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그 부친과 아들의 정치적 성향이 참 대조를 이룬 셈인데 이는 아베 신조의 부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베 신타로 씨는 온화한 인상에 대체로, 혹은 상대적으로, 한국에 대해 온건한 태도를 유지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책에서는 "세대 교체와 더불어 진행된 우경화"의 한 상징으로 파악하는 듯합니다. 이 책에서 독자로서 가장 가슴 아프게 읽은 대목은, "일본인들이 지금은 저 고노 담화를 일종의 실수로 간주한다(p99)"는 문장이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과가 실수"라고 강변하는 저들의 태도는 참으로 비양심적이고 유치한 작태이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일본 일각에서 일고 있었던 온건하고 합리적인 목소리들과 협력을 강화하여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과와 협력을 이끌어낼 생각보다는, 그저 우리 자신의 감정에만 치우쳐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비둘기파가 자생할 틈을 오히려 좁힌 게 아닌가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사과는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어야지, 강요해서 받아낸 사과는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왜 사과를 해야하는지 더 치밀하고 차분하게 팩트 위주로 접근할 필요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지금은 이미 이성적이고 관용적으로 상대를 대하자는 분위기는 양국 모두에서 물 건너간 듯합니다. 우리가 엄연히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을 제외한 국제사회에서 보다 호의적인 여론을 못 끌어낸 것도 문제입니다. "일본의 금권력, 로비실력"이 광범위하다는 예도 드는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는 작년 이맘때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한국의 네티즌들을 포함해 모두의 여론이 대체로 한심하다는 쪽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일본에서는 과학이, 정치와 관료에 묻혀 버렸다"고 요약하는데 이 말이야말로 왜 일본이 민간 레벨에서의 투명성과 정의감, 활력 등이 부족한 채 갈수록 죽은 사회가 되어가는지 잘 요약하여 보여 주는 듯합니다. 예전에는 한국에 "관존민비"란 말이 있었는데 비단 한국사회의 문제만은 아니고 동아시아 3국이 고루 지닌 병폐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도리어 관(官)의 권위가 너무 떨어져서 일부 문제인데, 여튼 민간이 공적 섹터를 압도해 나가는 이런 점만큼은 한국이 좋은 모범으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을 분명 앞서가는 대목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는 상식이 되어 버렸습니다만 한국은 대부분의 문서 작업, 의사 소통, 일상의 결제 등이 전산으로 이뤄지는 반면 일본은 마치 1980년대에 사회가 아직 머무는 양 모든 것이 물리적 페이퍼 위주입니다. 한국은 불과 십 분도 안 되어 "재난지원금"이 카드로 지급되지만, 일본은 본인 확인도 수동으로 거치고 계좌의 확인도 번거롭기 짝이 없습니다. 아직도 결제에 있어 현금 의존율이 높다는 건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한국에서 결제에 현금을 선호하는 건 일부 비 프랜차이즈 점포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건, 한국인들 상당수가 이 점을 인식하고 있고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막연히 우리가 최고라는 식이 아니라, 왜 앞서고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앞으로도 우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고전의 말이 괜히 유효한 게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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