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슈거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3
로알드 달 지음, 허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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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작가 로알드 달은 영국 공군에서 복무한 적 있습니다. 이 제3권에 실린 <로제트 부인>은 그를 배경으로 삼아 유쾌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전쟁 당시의 풍속도를 엿보는 재미가 있을 뿐 어떤 구성상의 큰 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하숙집 여주인>은 이전에 정영목 선생이 다른 기획, 전 4권으로 구성된 <에드가 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되었던 작품입니다. 제가 당시 저 책을 읽을 때는 로알드 달의 작품인 줄 몰랐는데(물론 책에는 수상 연도와 작가명이 당연히 나왔겠지만), 이 3권을 읽고서야 예전 생각이 나더군요. 물론 결말이 열린 결말이며 로알드 달의 다른 작품이 그러하듯 딱떨어지게 상황, 진상을 밝히는 건 아닙니다. 여주인이 박제가(!)가 아닐 수도 있는 거죠 뭐.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공포물입니다.

<탄생과 재앙>. 로알드 달은 생전에 반유대주의자로 비판 받기도 했는데, 그를 옹호하는 사람에게 가장 유력한 반대 논거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영아 살해는 끔찍한 범죄이지만(실제로 이 작품은 누구의 생부 등을 간접으로 비난하고 있기도 합니다) 때로는 인도주의가 더 큰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역설? 여튼 말이 안 되고, 아이가 커서 뭐가 될지는 그 자신의 의지에 달린 거지 어떤 운명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린 히틀러를 죽여도 범죄는 범죄죠, 그것도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이건 독자로서 제 생각일 뿐이고, 실제로 로알드 달이 얼마나 히틀러를 혐오했으면 이런 소설을 다 지어냈겠습니까).

<돼지>도 마치 2권의 <조지 포지>처럼, 어렸을 때 뜻하지 않게 큰 상처를 받은 주인공이, 잘 성장하는 듯하다가 함정에 빠지는 줄거리인데 환상과 실상이 섞여 있어 어디까지가 팩트인지 독자가 상상을 해 가며 읽어야 합니다. <조지 포지>에서와는 달리 여기의 주인공 렉싱턴에게는 별 성격적 결함이 눈에 안 띕니다. 단지 대고모가 육식을 싫어한 게 애한테 어떤 강박적 요소를 남겼을 수는 있겠죠.

<대역전>은 이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윤리적 타락에 잘 안 빠질 때라 아마 상상만으로 기발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요즘은 이런 걸 두고 "스x핑"이라 부르며 십 몇 년 전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죠. 이 단편도 중간에 결말을 어느 정도 암시하는 "사이즈" 논란이 언급됩니다. 주인공이 그 여성을 두고 "처음에 이런 둔한 여자가 있나 했었지만" 운운하는 게 우습습니다. 이 말의 뜻은, 나중에 자신의 아내한테 "그게 원래 이런 것인지 어젯밤에 처음 알았다"는 말을 듣고 명확히 밝혀집니다. 크기가 그만큼이나 중요하단 거죠... 이 비슷한 이야기가 중국 전래 소화(笑話)에 있습니다. 저 위에 <돼지>도 중국 인육 괴담과 비슷한데 혹시 로알드 달이 생전에 이런 이야기를 읽고 영향을 받은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동물과 대화하는 소년>도 다분히 동양적 분위기를 풍기죠? 이 작품뿐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 여러 작품에서 자연친화, 물아일체 테마가 나왔더랬습니다. 다만 이 작품에도 나오듯 거북이는 때로 위험할 수 있으니 안전 사고에 실제로 유의해야겠습니다.

<히치하이커>는 귀신 같은 재주를 지닌 어느 사내의 이야기입니다. 제나라 맹상군에게는 실제로 계명구도의 식객이 있어 비천한 재주로도 연명하다 결정적일 때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가 정확히 그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핑거스미스"라는 신조어(?)가 인상적입니다. 다 읽고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게 솔직한 느낌입니다.

<헨리 슈거의 놀라운 이야기>는 정말 놀랍습니다. 초능력이 생겨 카지노를 순회하는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자주 다루는 테마인데 중요한 건 소문이 나서 카지노 블랙리스트에 안 오르는 거죠. 로알드 달의 이런 작품에서 놀라운 건 "어느날 내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같은 (좀 한심한) 발상 자체가 아니라, 세상살이에 닳고닳은 듯 이후의 세파를 헤쳐나가는 그 디테일의 매력입니다. 물론 저 테마 자체도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어리석은) 욕심,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어떤 부분을 터치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매력적입니다.

<책장수>는 처음에 어떤 술수로 유명인, 부자들을 협박한다는 건지 구체적인 방법이 안 나와서 궁금증을 더합니다. 다른 직원과 함께 계좌를 여럿 분산하는 등 노련한 수법들이 등장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하죠. 어이없는 데서 들통이 난다는 건데 역시 로알드 달 다운 깔끔한 아이디어로 잘 구성된 작품입니다. 버기지 씨는 노스코트 씨에게 사실은 헨리 슈거의 놀라운 기술을 전수했다고 둘러대면 법정에서 무죄 방면되지 않았을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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