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자라는 심리육아 - 엄마의 엄마가 알려주는 실제 육아 지침서
은옥주 지음, 김도현 그림 / 미래와사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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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면서 사랑이라는 걸 배웠고, 미술 치료를 해오면서 나를 사랑하는 법과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책날개에 나오는 저자의 말입니다. 확실히 우리는 직접 부모가 되어 봐야, 우리를 길러 주신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리며 진짜 어른으로 거듭납니다. 반면 그런 체험을 못 해 본 사람은, 평생 이거해줘 저거해줘 타율적인 근성, 불평불만에다, 나는 왜 이거밖에 갖고 태어나지못했냐는 식의, 남탓과 피해의식에서 헤어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취지로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똑바로 비춰 본 어른이라야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고 생산적인 반성도 시도하는 거죠.

저자 은옥주 선생님은 이제 칠순이 되신, 자녀뿐 아니라 이제 외손주까지 두신 어른입니다. 저는 처음에 책을 펼쳐 들고 대략 삼십대 중반, 마흔 정도의, 한창 속 썩일 나이의 아이를 키울 만한 젊은 맘이신 줄 알았다가, 칠순이라는 연세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참 젊게 사시는 할머니이시며, 평생 수행해 오신 미술치료 과정과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씀의 연속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겠나 짐작도 해 보게 됩니다.

영어 속담에 일(혹은 공부)만 시키고 놀게 하지 않으면 아이를 바보로 만든다는 게 있습니다. p18에서는 발달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놀이의 기능"을 강조합니다. 창의적으로 신 나게 놀며 자신의 머리로 문제 해결의 쾌락을 맛 본 아이는 놀이뿐 아니라 공부마저도 자기 주도적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막상 내 아이들을 키울 때는 이렇게 놀아 주지 못했다. 내 부모님도 마찬가지이셨다." 그런데 그 연세 또래의 어르신들 중 아이에게 현대식으로 자유분방하게 놀아 준 분들이 과연 몇 분이나 되겠습니까. 아무튼, "그냥 놀아 준다고 생각하고" 같은 시쳇말이 있듯, 누군가와 "놀아 주는 것"은 의외로 큰 봉사를 행하는 셈입니다. 그 대상이 자신의 아이라면 이는 부모로서 행해야 할 의무인 듯도 합니다.

책을 읽어나갈 때 컬러풀한 삽화가 있으면 훨씬 읽기가 편합니다. 이 책에는 십여 페이지마다 한 폭씩 멋진 그림이 실려 있는데, 미술 치료의 본체는 물론 아픈 사람 당사자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겠으나, 멋지게 잘 그려진 작품은 그저 보기만 해도 마음이 개운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 은옥주 선생님, 또 김도현 선생님은 다른 의미에서도 "치유자"입니다.

손주가 참 똑똑한 아이인 듯합니다. "할머니, 광개토왕이 아주 쎘지? 대한민국이 엄청 커졌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지? 일본이 다 도망갔지?" 아이가 던지는 질문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도 다 저런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었을 텐데, 발달 과정에 있는 아이의 성장이란 정말 경이롭기 짝이 없습니다. 어른들께 저런 질문을 던지던 우리의 단계가 기억이 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찔하기만 합니다.

아이는 할머니의 엉마, 즉 증조모님을 가리키며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 저도 이 단계는 기억이 납니다. 땅에 묻혀서 꼼짝도 못하는 게 죽는 걸까? 내가 이미 세상에 없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 없는 세상에서 자기끼리 사는 걸까? 내가 참여하지 못하는 세상이 그 나름대로 돌아간다면 너무 슬프고 억울한 거 아닐까? 온전히 이해 못 했지만 어느새 나이를 먹고 가까운 분들의 죽음을 겪으며 이제는 잘 압니다. 네. 아직 어린 아이한테 "죽음"의 의미를 가르쳐야 하는 게 어른으로서도 참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아야 하며, 알기 싫어도 알게 되죠.

"언어의 여러 기능 중에 또다른 중요한 것은 '자기조절기능'이다. 그래서 언어발달이 지연되는 경우, 짜증이나 과격한 행동 빈도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아이가 계속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불안을 달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p53)

이 대목은 물론 오랜 동안 미술치료를 행하며 터득하신 저자의 깨우침이지만, 동시에 어린 손주가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갈 때 겪은 괴로움을 달래는 요령(인 케이스 세라피)이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다 겪으셨겠습니다만, 어렸을 때 치과 가는 게 얼마나 싫습니까. 그때 불안함을 달래 주려고 발 맞춰 걷기, 재미있는 이야기 해 주기 등 온갖 기술을 다 구사하시던 저희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에휴...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린시절에 간직한 추억만큼 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 마음 속에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p59)

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입니다. 과연 그는 천재라서, 평소에 아이들에게 관심도 주지 않았을 법한 독선적인 위인이 정작 교육에 대해 입을 떼니 저리도 정확한 언명을 빚어내네요. 진정한 천재는 특정 분야에 한정된 게 아니라, 어떤 주제를 놓고서도 매번 폐부를 찌르는 정확한 통찰력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저런 사람을 천재라고 하는 거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관계를 통해서만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고립된 섬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 성장과정에서 적절한 관계 맺기를 통해 인성을 가꾼 사람만이 온전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 같은 나라는 홈스쿨링 등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고 표준적인 사회화 과정을 반드시 거칠 것을 의무화합니다. 불량스럽고 천박하게 무리 짓고 돌아다니며 폭력에 쉽게 의존하는 건 사회성의 형성이 아니라 저급한 일탈에 불과하며, 이런 인간들은 사회성이 뛰어난 게 아니라 오히려 결핍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존중감이 부족하기에 폭력에 쉽게 의존하고 화를 잘 냅니다. 사회성이 발달할수록 참된 자존감을 가진다(p84)는 저자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귀엽습니다만 아이들을 모두 똑같이 대한다면 아마 애들이 싫증을 낼 것입니다. 차별 없이 대한다는 게 아니라, 귀여워해도 똑같은 방법으로 귀여워하지 말라는 거죠. 미인의 마음을 사려 해도, 천편일률적인 주접을 떤다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도 못한 것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그녀에 걸맞기도 하고 마음 속으로 원하던 찬사와 배려를 베풀어야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고 관계도 원만히 형성되는 거죠. 저자께서는 손주에게 "돌돌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시는데, 너에게 향하는 나의 애정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음을 분명히 표시하는 멋진 방법입니다(물론 돌돌이에게 어머니라든가 다른 지인, 친족이 베푸는 애정들은 또다른 방식이겠구요). 마치 생떽스의 <어린 왕자>에서 길들이기가 의미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참고로 뜻은 "돌을 좋아하는 똘똘이 손자"입니다.

"할머니, 신라가 천 년이에요?" "와 엄청 길다!" 사실 세계적으로도 단일 왕조가 천 년을 간 건 유례가 없습니다. 물론 성씨가 말년에 교체되기도 했고 중앙집권이 미흡했으며 귀족 연합체로 퇴락했긴 했지만 말입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아예 왕실의 연속성도 없었고 말기에는 도시국가 수준으로 위축되었으니... 여튼 할머니는 문화재를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하시는 등 역시 절제된 육아 방식을 유지합니다. 예전 분들은 이처럼 어떤 경우에도 선을 넘지 않고 질서와 공익을 염두에 두시죠. "할머니, 토함산은 토하는 산인가요?" 저는 이 말을 읽고 빵 터졌는데 제가 초등학교 4학년때 경주 소재의 그 유서 깊은 산 이름을 들은 이래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입니다. 이걸 제게 가르쳐 주신 담임 선생님이 들으시면 뭐라고 하실까요? ㅎㅎㅎ 역시 아이들은 기발합니다.

인천에서 김포로 가는 구간 중에는 해저터널이 있습니다. 인류 문명이 이처럼이나 경이로운 일을 해 냈지만 그런 역사(役事)에 직접 참여한 게 아니라 그저 혜택만 누리는 입장에서는 어린이 아닌 어른이라도 해도 그 엄청난 의의를 알 리 없습니다. 그냥 해저터널이라고 하니까 해저터널인 줄 아는 거죠. 어디 해저뿐이겠습니까? 미친 속도로 달리는 지하철 구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돌돌군은 경이로워하는 눈빛으로 "해저터널이야 이게?"를 연신 묻습니다. 어른이 애써 가르치는 놀라움과 경의가 아니라 자신이 정직하게 느끼는 감탄이라야 올바른 교육입니다.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놀아주고 체험을 공유하는 과정이라야 참된 성장과 성숙이 이뤄집니다. 이 책 내내 펼쳐지는 흐뭇한 공감과 놀이 과정, 멋진 그림과 함께 하기에 더 절실하게 독자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독자도 힐링하고 해피해지는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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