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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식포럼 인사이트 2021 -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의 향방을 예측하다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 사무국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2월
평점 :
어제 셀트리온이 코로나치료제 관련 발표를 했고 나쁘지 않은 성과가 확인되었습니다만 주가는 빠졌습니다. 셀트리온이나 바이오 섹터뿐만 아니라 어떤 종목이든 재료가 노출되면 차익실현 물량이 나오기 때문에 이런 조정은 받기 마련입니다. 아무튼 서정진 회장은 한국에 전혀 없던 분야를 개척한 사람이고 공매도 세력과 단독으로 싸워 이긴, 존경 받아 마땅한 면이 분명 있습니다.
pp.176~185에는 그 서정진 회장의 행사장 현지 발언이 topic 다섯 꼭지로 정리되었습니다. 본래 좀 거구인 분이고 박력 넘치는 캐릭터시지만 사진과 함께 발언 텍스트를 읽으니 현장감이 지면 너머로 전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바이러스는 싸워서 이기는 대상이 아닙니다. 뇌가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들의 위험을 요령껏 피해서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해야 합니다." 서 회장뿐 아니라 모더나의 CEO도 바로 어제 이런 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2&aid=0001538286 )을 했습니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야전사령관들의 공통된 통찰이겠습니다. 특히 "한국은 제조업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이 눈에 띄는데, 현재 구 대기업 임원들은 젊고 능력 있는 구직자들이 네이버나 카카오(이런 곳들도 이제는 엄연히 대기업이죠) 같은 IT 섹터에서 편한 일만(?) 하는 풍조를 개탄한다고 합니다. 한국은 밖에서 외화를 벌어와야 생존이 가능하기에 제조업 섹터에서 일하는 이들과 자부심과 긍지가 같을 수 없다는 건데... 글쎄요.
이 책 저 앞 p90에는 셀트리온 미주 법인 사장으로 제니 주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제니 주 사장 본인의 성공 스토리도 흥미진진할 듯하지만 이분이 들려주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습니다. 글로벌 최상위 부유층만 상대하는 이든 클럽이라는 게 있는데, 톰 로런스라는 이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작 그 자신은 전혀 백만장자 출신이 아니었고, 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부자들의 생리를 정확히 캐치하여 떼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도 저렇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이든 클럽 같은 데 가입할 수 있는 원천의 부를 창출하고 싶었지만, 여튼 돈 버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는 점 다시 확인했습니다. 유익한 책은 그저 교훈만 앙상하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책 구석구석에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꼭꼭 채워졌다는 게 또하나의 장점이죠. 제니 주의 결론은, "성공에는 어떤 각본도 없다."입니다.
책 뒤표지 바로 앞에 보면 이 책의 주제가 된 연례행사, 즉 세계지식포럼 인사이트의 히스토리가 나옵니다. 매경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는 꽤 유명한데 정확히 2000년에 시작했으니 작년으로 21회째를 맞은 것입니다. 행사 주빈의 면면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집니다. 작년에 초청된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 같은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21년 전이면, 당시 아직 젊었던 장대환 매경 회장이 국무총리 지명자로 국회 동의를 받기 위해 인사청문회에 나오기도 했을 터입니다. 아무튼 대단한 행사이며, 이 책 역시 그 무게에 걸맞게 매우 알찬 내용으로 짜여져 있네요.
작년(2020) 행사의 메인 연사 네 분 중 아마도 가장 비중 큰 인사였을 테리사 메이의 발언 내용은 책 맨앞에 배치, 정리되었습니다. 인터뷰어는 도이체 벨레 선임앵커인 테리 마르틴인데 표준 독일어 공부하고 싶은 분은 도이체벨레 웹사이트에서 송출하는 실시간 온에어를 이용하면 아주 유익합니다. 도-이체벨러라고 diphthong이 도중에 끊어지는 특이한 발음이 인상적이죠. 책의 사진을 봐도 알 수 있듯 현장 인터뷰이며 청중 질문을 한 두 사람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태영호 국회의원입니다. 후자는 영국 주재 고위 외교관이었기에 메이 총리와도 구면이죠.
p112에는 딜리버리히어로 창업자인 니클라스 외스트버그의 말이 나옵니다. 이 회사 이름은 한국인들에게도 꽤 익숙한데, 바로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를 인수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향점은 "라스트마일 배송"인데, 상품이 배송지를 떠나 고객의 집 바로 앞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뜻한다고 합니다. 뭐 긴 말 필요 없이 바로 택배 서비스의 요체이며, 한국도 1990년대 전반부터 이런 서비스가 크게 발달하여 많은 이들의 편의를 증진했습니다.
니클라스 외스트버그는 "왜 배달의 민족에 관심을 가졌느냐"는 질문에,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회장을 10년째 잘 알고, 앞으로도 같이 일할 분"이란 말로 답을 대신합니다. 사업 자체의 전망보다, CEO의 인성이나 자질 등이 투자시 최우선 고려사항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는 "음식 배달 말고 다른 상품도 함께 배송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원가를 더 절감하겠다"고 하는데 지켜볼 일입니다. 요마트의 운영전략도 함께 언급하는데, 단 최근 공정위의 반독점 결정 때문에 요기요 사업체는 매각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케빈 스니더는 맥킨지앤드컴퍼니 글로벌 회장으로서 새 시대 CEO의 목표를 네 가지로 요약(p87)합니다. 열 배 넘는 목표 설정, 변화하는 리더像 표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수용, 동료 CEO와의 네트워크 구축이라고 합니다. 이 중 세번째 것, 즉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란,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s' capitalism)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네 일에나 신경 써(Mind your own business)."로 요약되는 영미식 개인주의로는 이런 전향적인 개념을 수용하기 어렵죠. 주식회사의 요체 기관인 주주총회에는 주식을 소유한 이들만 입장하여 발언하거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저 컨셉 하에서는 직간접의 이해관계를 지닌 지역공동체의 일원 같은 이들이 참여하여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죠. 십 년 전만 해도 유럽 진보 성향 진영에서나 논의되는 게, 이제는 지구촌의 정신으로 번져가는 겁니다.
이와 관련 p157을 보면, 케리 워링 국제기업지배구조네트워크 CEO의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요즘은 우리도 주변에서 흔히 듣는 개념이 ESG인데, 지난 십 년 동안 CSR이 광범위하게 논의되었다면 이제는 보다 확장된 아젠다인 ESG로 메인 이슈가 넘어가는 듯합니다(그 뜻은 책 p158에 잘 나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팬데믹 때문에 주주들은 사회적으로 분노를 느끼고 있으며 기업에 더 많은 것을 하라고 촉구한다"는 것입니다. ESG투자란, 그의 말에 의하면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고 리스크는 더 낮추는 것"이며, 한국의 현 정부가 특히 강조하는 스튜어드십코드 같은 것도 이에 포함됩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한국에서 ESG투자의 주류화 전망이 다뤄지는데, 아마 주식 투자에 관심 많은 분들은 이미 익숙한 내용일 것입니다. 전기차, 2차전지, 태양광, 풍력, 수소 등은 투자자들이 필수로 알아야 할 테마이며 이미 많은 시세를 분출합니다(ESG 중 E에 한정된 트렌드이긴 하나 첫 발걸음치곤 의미심장하죠).
p207 이하에는 세드리크 오라는 분이 "사회적 격차가 디지털 격차로 번지는 결과를 막자"는 주장을 폅니다. 5~6년전에도 큰 화제가 된 분인데 입양아 출신으로 장관직, 대통령 보좌역이라는 고위직에 올라서였죠. 그런데 저는, 도대체 한국에서 고아 수출(...)이 얼마나 많았기에 세월이 흘러흘러 저 지구 반대편 프랑스 같은 데서 장관까지 배출하게 된 건지 좀 기가 막히기도 했습니다. 남한테 받았으면 베풀 줄도 알아야 하는데 최근에 일어나는 이런저런 사건을 보면 참 갈 길이 멀었다 싶기만 합니다.
5G도 아직 인프라가 덜 깔렸는데 6G는 터무니없는 말만 같지만 남보다 앞서가려면 목표를 멀리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일본인인 나카무라 다케히로 NTT도코모 집행임원의 유익한 발언이 실려 있네요. 그의 말에 따르면 "2028년에는 서비스 상용화가 될 것으로 본다(p214)"는데, 음... 미국 현지에서의 5G 주파수 경매도 아직 진행 중이며 버라이즌, AT&T 등이 하도급을 줄 삼성전자, 또 재하도급을 받을 케이엠더블유 등의 업체가 아직 손 놓고 있는 현실에 좀 답답한 마음이 드네요.
p225 이하에는 존 헤네시 알파벳 회장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요즘 공학 분야는 현장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고 실제 업적을 이룬 엔지니어들과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는데, 이분은 학자이기도 하고 엔지니어이기도 하고 CEO이기도 하죠. 이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스타트업 경력을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20여년 전에 그냥 돈 버린다고 생각하고 구글 주식을 산 이들은 지금... 인터뷰어는 차상균 서울대 디지털사이언스대학원장이며, 인터뷰이에게 유익한 답변을 끌어내는 기술이 대단하십니다. 헤네시 회장이 여기서 꺼내는 주 토픽은 AI인데, 왜 저기 복잡계의 여러 난제는 기존 패러다임으로 풀 수 없고 그 대표적인 예로 기상현상을 꼽죠. 북경의 나비가 펄럭이느니 하는 비유 말입니다. 변수가 너무도 많아 일일이 계산, 추적할 수 없을 때 카오스 이론에 기대며, 이것을 AI가 잘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입니다. 차 원장은 여기에 덧붙여, 신약개발 과정을 크게 단축시키고 원가 절감도 도모할 수 있겠다는 헤네시 회장의 답을 끌어냅니다.
가뜩이나 세상의 변화가 빠른데 코로나 같은 뜻밖의 변수까지 생겨 모두가 힘든 요즘입니다. 이럴수록 뛰어난 지성인, 창의적인 리더들의 인사이트를 접하고 우리들의 세부 목표를 더욱 미세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년 만나지만 언제나 새롭고 유익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