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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게임 - 심리 편향에 빠진 메이저리그의 잘못된 선택들
키스 로 지음, 이성훈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우리가 원칙으로 여기고 대체로 지키곤 하는 많은 이런저런 명제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니 우리들도 별 생각 없이 옳겠거니 하고 따르는데, 과연 그게 언제나 옳은지, 아니면 상당한 경우들에 옳기는 한지, 이건 실제로 따져 봐야 하긴 합니다. 그 중 상당수는 통계적으로 옳고 그름이 증명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이치적으로 따져서 진위가 가려지는데 사실 전자의 경우 생각만큼 그 증명이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아니라고 판명날 경우,대체 왜 그렇게 오랜 동안 그것이 옳다고 믿었는지도 한번 가려봐야 합니다. 이것은 행동경제학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보다 우연이 많이 개입합니다. 예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하이라이트를 보면 확실히 옛날이라서 내야 수비가 허술하구나(시프트 같은 것도 없고)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만, 이 역시 근거 없는 인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점수가 나는 장면의 하이라이트만 모아 놓았으니 내야수 사이를 총알같이 빠져나가는 케이스가 저리 많지 않았겠습니까. 여튼 "이런이런 경우에는 요러요러한 작전을 써야 한다"는 불문율이 예로부터 진리처럼 통용되는 게 야구인데(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니까) 그게 일일이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게 세이버매트리션들에 의해 드러나는 게 요즘입니다. 이 책은 그 중 일부를 다뤘고, 행동경제학의 관점에 따라 "대체 그럼 왜 그런 잘못된 믿음이 통용되었는가?"도 부분적으로 다룹니다.
p88에는 재미있는 설문이 나옵니다. "모세가 방주에 몇 종류의 동물을 태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들은 보통 동물의 종류에 질문의 포인트가 있다고 여겨, 저 주어가 "모세 아닌 노아"임을 잊어버립니다. 즉 질문 자체가 오류인데도 우리는 "부분적 일치" 때문에 전체적 허위를 잊는다는 거죠. 이 책은 2020년에 나왔습니다만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에 벌써 코비드19 백신의 위험성에 대한 루머, 가짜 뉴스가 돌았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홍역 등 다른 백신 이야기인 듯합니다만 여튼 백신이 위험하다는 가짜 뉴스가 만연했나 봅니다. 가짜 뉴스들 역시 부분적으로는 진짜이고, 그 사이에 가짜 결론을 슬쩍 끼워넣기 때문에 전염성이 강한 것입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클러치 히터 신화"를 비판하기 위해 주로 끄집어 낸 것입니다. 위기에 특히 강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나아가 누구는 영양가가 있고 누구는 그렇지 못하다는 신화는 사실 예전부터 논쟁거리였고, 요즘은 잦아들었지만 한국 인터넷에서도 이른바 "영양사 논쟁"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주로 패트릭 브래넌(p91)의 논거를 댑니다. 클러치 히터라는 건 DNA나 능력 요소로서 항구적인 게 아니라, "인상"에 불과하다는 거죠. ㅎㅎ 한국에서는 누가 이런 평가를 받을까요? 박정권, 김강민, 혹은 예전의 유두열? 아니면 한화의 이성열이라든가 말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김강민이나 이성열은 꼭 결정적일 때마다 한 방씩 날려주는 것 같던데, 이것도 다 "인상"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아니면 저 국제대회에 강했던 이승엽이라든가, 한대화는 어떻습니까? 예전에 허구연씨는 "거 이상하네요. 이승엽은 꼭 결정적일 때만 저렇게 상황을 끝내 주는데.." 같은 말을 했습니다만 그 역시 클러치 히터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믿음 하에 그런 말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며, 저 같은 일반 팬들은 전설과 신화에 더 기대어 열광하고 싶어합니다. 아마도 제가 독자로서 이런 반론을 제기하면, 이런 건 저자가 말하는 이른바 "당신이 준 팩트들을 기존 자신의 생각에 맞춰 새로운 설명을 만들어내는 그"에 해당할 것입니다.
많은 오류들은 그걸 거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도 인기가 좋은 이론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좀처럼 이를 폐기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류라고 판명이 난 후에도 말입니다. 또 책에서는 "반복을 진실로 착각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이는 히틀러 역시 <나의 투쟁>애서 선전 선동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논한 적 있습니다. 또 현대에 이르러서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캠페인에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를 놓고 벌써 승부가 결정난 듯이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 시청각에 누구 이름이 많이 노출되었을 때 그가 벌써 유리하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말이죠.
진기록과 대기록은 사실 구분되어야 하죠. 누군가가 한 시즌 내내 기록적인 고타율을 기록했다면 이것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컨대 연속경기안타기록, 사이클링 히트, 연타석 만루홈런(데이비드 타티스라든가 한국의 정경배) 등은 물론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기록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선수의 기량을 좌우하는 지표는 아닙니다. 특히 사이클링 히트의 경우 아마도 호타준족 증명일 수는 있지만 한 경기 기록만으로 당사자의 재능, 기량을 판단하기엔 무리입니다. 그나마 이 중에서 연속경기안타기록은 선수의 진가에 어느 정도는 근접하겠죠. 책에서는 조 디마지오의 MVP수상을 두고 문제를 삼는데, 저는 이 예가 "아무것도 아닌 선수가 연속경기 기록 하나로 최우수선수가 된 케이스"로 잘못 이해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조 디마지오는 위대한 선수이지만, 단지 56경기 연속 안타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는 건 아니다"로 오히려 받아들여야 맞겠습니다. 앞에서 논의된 "부분적 진실로 전체 명제의 진위를 가르는 예"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책에서 논의된 순서는 반대입니다만)
이른바 "대리인 이슈"는 행동경제학이 한 주류 분파로 자리잡기 전(이 아니라 아마 그 작은 맹아가 싹트기 전)에도 이미 경제학의 중심 난제 중 하나였습니다. p216에서는 작년(재작년) 아지 알비스가 맺은 말도 안 되는 계약에 대해서 다루는데, 이걸 두고 저자는 대리인과 본인 사이에 이해가 상충해서 벌어진 일로 분석합니다. 사실 미국에서 이런 벌어지기나 할까 하며 고개가 갸웃해지는 게 정상인데, 한국도 요즘은 에이전트 기법이 대단히 발달하여 소속(구단이 아니라 에이전트사) 선수에게 불리한 계약이 좀처럼 맺어지지 않기때문입니다. 열의나 집념이 아니라 머리를 잘 쓰고 기법이 발달해야 유리한 계약이 체결되는데, 과거에 최동원 선수나 선동열 선수의 부친들께서 아무리 열성이라고 해도 결국 구단의 술수에 말려서 불리한 내용에 싸인한 결과(혹은, 당시의 팬들에게 나쁜 평판이 남았다든가)를 보면 알 수 있죠.
p240에 보면 매몰비용 이슈가 나옵니다. 이 역시 행동경제학 이슈일 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에 경제학 일반에서 다루던 논제입니다. 하지만, 이미 지불되어 더 이상 현재에 영향을 끼칠 이유가 없는팩터가, 여전히 "당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이니 행동경제학에서 이를 빼놓고 다룰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걸 놓고 "아 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문제지"라고 착각하는 자체가 (행동경제학적인) 인지 편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p276 이하에서는 트레이드라든가 신인 드래프트 픽에 대한 여러 일화가 나오는데, 이 역시 물론 행동경제학 프레임에 넣어 다룰 수도 있고 혹은 게임이론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드래프트 같은 건 게임이론으로 봐야 더 간편한 솔루션이 나오죠. 이 책에서 다루는 많은 문제들은 우리 같은 일반 독자들의 "상식"에 반합니다. 단 책에서는 "이미 증명되었다" 처럼 간단하게 다루고 넘어가기에, 아마 많은 독자들이 더 깊은, 더 철저한 설명을 요구할 만합니다. 그런 독자들은 같은 저자가 쓴, 2020년에 출간된 <스마트 베이스볼>을 꼭 읽어 보십시오. 저도 지금 같이 읽는 중인데 꽤 재미있고 아마도 이 두 권을 같이 읽어야 우리 일반 야구팬들에 뇌리에 꽉 남은 갖가지 오류들이 청산되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