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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오아물 루 그림,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올해가 생텍쥐페리 탄생 120주년이 된다고 합니다. 생텍스는 40대 초반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망했고 아주 많은 작품을 남긴 것도 아닌데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세계 사람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거의 없지 싶지만 아직 <어린 왕자>를 안 읽어 본 이라고 해도, 외로운 별에 혼자 예쁜 옷을 입고 서 있는 어린왕자의 이미지, 선명한 삽화를 모르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린 왕자의 그 많은 명언 명구, 깨끗한 심상도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더 인지도가 높은 건 삽화입니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지은 피터 래빗 시리즈도 나온 지 118년 정도 되는데 이 동화가 그렇게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작가 포터 여사가 직접 그린 삽화의 매력입니다. 비슷하게, 어린 왕자도 언제나 삽화와 함께 출간되는 이유는 생텍쥐페리가 그 유명한 그림들을 직접 그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어렸을 때 범우사판으로 읽었는데 물론 이 책처럼 깨끗한 고급의 백상지에 원판의 일러스트가 모두 수록된 버전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물론 우리와 동시대인인, 세계적인 일러스트 작가인 오아물 루의 멋진 작품들이 더 들어 있고요. 우리 독자들도 <어린 왕자>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오리지널 삽화가 뭔지는 머리 속에서 다 재현해 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텍스트나 이야기만큼이나 생텍스의 원 그림이 유명한데, 이 책에 고맙게 수록된 오아물 루의 그림들은 어느 게 원화이며 어느 게 그의 창작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마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에다, 현대의 솜씨 좋은 어떤 작곡가가 완성의 붓을 더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도 생텍쥐페리가 현대에 부활한다면 오아물 루의 그림을 보고 더 흐뭇해할 것 같습니다. 마치 레전드 가수들이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여 아이돌 가수들의 재해석을 듣고 감격하듯 말입니다. 오아물루는 중국인인데 본명은 卤猫이라 쓴다고 하네요. 卤는 소금 로 자입니다. 우리 식으로는 鹵이라고도 씁니다.
"밀은 황금빛이니까 밀을 보면 네가 생각나겠지. 네가 나를 길들여놓으면 신날 거야. 나는 밀밭을 지나는 바람소리도 좋아하게 될 거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찡해지는 구절입니다. 사실 황금빛 밀밭을 본 적이 없어서 완전한 실감은 못하지만, 주인공의 머리 빛깔을 암시하는 의도라는 건 누구나 파악할 수 있죠. 어린 왕자 자신은 사실 머리가 좀 짧은 편이라서 그렇게 찰랑찰랑하는 느낌은 없지만 말입니다. 여튼 어린 왕자는 화자에게 저렇게 말합니다. 자신은 빵을 먹지 않기 때문에 밀이 그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다고도 하죠. 선녀가 이슬만 먹고 산다는 설화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은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이것저것 구차하게 먹고 배설도 해야 하지만요.
들판에 핀 장미꽃은 누구 눈에도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빨간 장미를 흉내내어 입술도 새빨갛게 바르고 간혹 의상도 빨간 드레스로 차려입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미라고 해도, 어린왕자는 "길들여짐"을 거치지 않았다면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마치 김춘수 시인이 "그의 이름을 불러 주고 난 후에야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한 것이나 비슷합니다.
사실 무엇이 아름답다고 단정하는 것도 어쩌면 일방적인 처사입니다. 마치 이 이야기에 나오는 어떤 임금님이 타자에 대해 부당한 권력을 마구 휘두르려 드는 것과 같죠. "길들임"이란 소통, 서로 오가는(reciprocal) 사귐인 듯합니다. 사실 우리말의 "길들임"은 약간 좋지 않은 뉘앙스도 있기 때문에 해당 작품을 처음 읽는 한국인 독자라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120주년 기념판이고 그 유명하신 김석희 선생 번역이라서 저는 이 부분이 다른 말로 혹시 바뀌지는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선생도 우리 독자들에게 익숙한 그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여튼 이 작품에서 "길들이기"는 순수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가리키는 핵심 어휘죠. 시간과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장미 한 송이는 광활한 우주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특별한 장미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장미, 혹은 내가 길들인 여우는 이제 나를 향해 특별한 눈빛을 보냅니다. 그와 관계를 맺기 전의 나는, 이제 그 때문에 그에게 특별해진 지금의 나와 다른 존재입니다. 이것은 시간의 전후가 끼친 영향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닌 그에게 무엇이 된 나로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었기 때문에, 나 역시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보석이 된 것입니다.
순수해지려면 혼자 고립되어서는 안 되며, 나를 길들이고 내가 길들인 당신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은 순수한 게 아니라 술주정뱅이, 임금님, 허영꾼처럼 오히려 타락하기 쉽습니다. 관계의 소중함 속에서 태어날 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이 고전에서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