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옳았다 - 미처 만들지 못한 나라, 국민의 대한민국
이광재 지음 / 포르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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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저자는 한때 노무현 대통령의 양대 브레인 중 한 명으로 꼽혔고 10년 전 강원도지사를 거쳐 올해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7대, 18대에도 젊은 나이에 이미 의원을 역임했으며 특히 국회에 뉴페이스가 대거 진출했던 17대에 활동상이 많았습니다. 18대에는 보수정당 웨이브가 거셀 때였는데 그때도 당선되었죠.

현재 여권에서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재판 중이라 아주 힘든 시기이며 이낙연 전 총리도 몇몇 악재가 생겼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친문과 불편한 사이라서 대권 도전이 힘들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제3후보론인데 이 후보군에는 정세균 현 총리라든가 이 책 저자 이광재씨 같은 인물이 꼽힙니다. 이런 시사적 배경이 있어서인지 책이 더욱 흥미롭게 읽히며, 책 제목 "노무현이 옳았다"는 구절도 과연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가 벌써부터 호사가들의 입에 오릅니다. 여러 재미난 해석이 있으나 ㅎㅎ 과연 저자 말고 누가 그 뜻을 정확히 알겠습니까.

"민주주의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 물론 어찌 민주주의라는 단어, 개념에 저 뜻만 담겼겠습니까만 저자가 이 시점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민주주의가 타인에 대한 존중인가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그 반대가 독재이며, 독재가 이른바 "타자"에 대해 철저한 무시, 경멸로 일관한다는 점에 생각에 미치면 아! 하고 수긍할 만하죠. 그렇습니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독재이며, 독재와 민주주의는 어떤 지점에서도 서로 만나지 않습니다. 이 시점에서 과연 민주주의를 위해 그 청춘을 불사른 투사이자 왕년의 정책통답게 참 절묘한 말씀을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보다시피 "이광재가 옳았다"가 아니라 "노무현이 옳았다"입니다. 왜 이 시점에서 노무현인가? 그 취지는 책의 p16에 잘 나옵니다. 노 대통령은 당시 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는데, 그때 꺼낸 말씀이 "야당이 우리의 적은 아니지 않나?"였답니다. 노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모시던 저자이기에 이런 사정은 누구보다도 잘 아시겠죠. 이런 제안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한 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습니다. 또 야당과 공생하려는 태도도 보였던 노 대통령을 아쉽게 대하여 결국 자살이라는 비극이 벌어졌기에 그 반대편 진영이 당시에 비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야당을 적으로 보지 않았던 노무현 정신의 일면에 대해 주목을 하자는 겁니다, 저자의 취지가 말이죠. (또, 당연한 소리지만, 노무현 진영의 반대편에서도 역시 그 상대를 적으로 보면 안 되는 겁니다)

권위주의와 권위가 다르다는 말은 1987년 6월 민주혁명 직후 동아일보의 어느 칼럼에서 개인적으로 처음 봤던 기억입니다. 김진현씨였나 필자가 뭐 그랬었습니다. 이광재 저자께서도 유독 이 시국에서 그 말을 다시 떠올리는군요. "노무현 대통령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권위주의를 버렸고 반대진영을 끌어안았다. 그가 우리의 대통령이었을 때 우리는 그가 권위 없이 행동한다고 비난하곤 했다(p19)."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워지는 대목입니다.

저자는 말을 이어갑니다. "독선과 호통을 내려놓은 그(=노 대통령)의 권위를 지켜 주기보다는 진영, 집단의 힘으로 그를 구석까지 몰아붙였다. 결국 우리는 권위주의를 다시 불러들였다. 민주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도 다시 불안해졌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폐부를 찌르는 지적입니다. 역시 젊은 나이부터 중책을 맡고 세상을 넓게 경험한 분 답습니다. 이렇게 유연한 사고를 가진 분이, 20대 대학생 시절에는 또 누구보다 최선봉에 서서 목숨을 걸고 불의와 타협 없이 투쟁도 했던 것입니다. 반대로 상황이 엄중할 때는 구석에서 벌벌 떨던 위선자가 상황 다 끝나고 나서 요란하게 밥숟갈을 얹는 거죠.

p36에는 김대중 정부의 치적이 하나 나옵니다. "1990년대에 청년 세대를 대거 등용하여 차세대 정치 리더들이 기반을 잡을 수 있게 도와 주었다. 그런데 어느덧 기성세대가 된 386은 새로운 디지털 세대를 여간해서는 기용하지 않는다." 청년은 아니었지만 저 무렵에 기용된 분이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낙연씨였고 당시 대변인으로 막 데뷔했습니다. 그 당시 부대변인이 여성으로서는 파격으로 뽑혔는데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김현미 전 장관입니다. ㅎㅎ 참 역사의 아이러니죠. 정작 저자 이광재씨는 저 무렵 픽업된 청년 지도자도 아니었는데 김대중 정부의 이 훌륭한 선택을 특별히 기념하는 겁니다. 이때는 새천년민주당이 갓 출범할 때였고, 이보다 앞서 새정치국민회의가 4년 전 창당될 때는(김대중 대통령이 아직 야인 시절) 30대 여성 판사 추미애, 또 호남의 수재로 유명했던 천정배 씨, 또 MBC 앵커 정동영 씨 등이 있습니다. 뒤의 두 분은 권노갑 의원이 직접 맞이한 인재였죠.

그가 속한 세대의 감정선을 잘 건드리며 저자는 p66에서 하루키가 쓴 <랑겔한스섬의 오후>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여기서 그는 하루키식 감성이 물씬 배어나는 여러 심상을 말하는데, 대부분이 요즘 젊은 세대가 지평으로 삼는 "소확행"입니다. 어떤 야무진 비전이나 과장된 야심은 일찍이 포기하고, 일상에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잔잔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 이는 한편으로 젊음의 특권인 끝없는 상상과 포부를 포기한 것이라서 슬프지만, 다른 한편으로 엄중한 현실에 눈을 뜬 결과라서 대견해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20대는 그 전 세대가 젊었을 때의 성향보다 훨씬 보수적이라고도 하고, 한편으로 업무 능력이라든가 사회를 보는 시야가 훨씬 폭이 넓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특정 매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무조건 믿고 따르며 베껴대는 성향이 없다시피합니다. 젊은 세대가 그전 세대보다야 더 현명하고 더 지혜가 늘어야 정상이므로 이런 현상은 대단히 바람직합니다. 책에서도 이런 새로운 세대들에 대해 저자의 애정이 잘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지도자라면 이처럼 시대가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예민한 촉수를 갖춰야 합니다. 자신이 젊었을 때 형성한 가치관에 갇혀 있다면 남 앞에 나설 그릇이 못 됩니다.

p103에는 역시 한때 대통령의 최측근에 서서 정책통 노릇을 했던 저자다운 명석함이 두드러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정부출연 연구소와 국공립 연구소에 매번 많은 예산을 지출하는데, 그 과제의 성공률이 98%에 달한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나라의 연구원들은 두뇌가 우수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라도 하는 건가? 저자의 해석은 정반대입니다. 애초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안전한 과제만 골라 제출하고, 그에 자금이 지원되어 성공하는 것이니 이걸 어떻게 도전이라 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나온 산물이 어떻게 높은 성과와 파생의 성취를 담보하겠냐는 겁니다. 세계 4위의 특허강국이 라이센스로 전환되는 예가 드문 것도 이로부터 설명이 가능하지 않냐고 저자는 묻습니다. 상품화, 비즈니스로 이어지지 못하는 특허 양산이란, 그저 스펙 쌓기라든가 보여주기식 행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생각의 힘으로 진화한다(p147)." 이는 인구대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재를 배출하는 사실로 유명한 유대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입니다. 유대인은 한국인처럼이나 교육열이 높은 민족이지만, 한국인처럼 주입식 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임기응변 능력도 그리 높이 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중요시하는 건 일상의 매 순간이 배움으로 충만한, 지혜의 축적과 숙련입니다. 흔히 주입식 교육의 낙오자들이 창의력이나 토론이 뭔지도 모르고 함부로 자신들의 특기인 양 참칭하지만 기실 그들이 능한 건 뻔한 상투어의 반복이라든가 흔해빠진 자기연민뿐입니다. 유대인은 언제나 토론과 비판을 중시하며, 종족이 중히 여긴 도그마라 해도 회의와 개량의 여지를 남겨 둡니다. 아랍과 살벌히 대립하는 그들이지만 이스라엘의 의회에는 언제나 다양한 정파가 모여 끝장 토론을 즐긴 후에 최상의 안을 도출하려 애씁니다. 살아생전 대한민국에서 토론에 제일 능했던 분 중 하나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한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비단 코비드19 같은 전염병이 아니었다 해도, 여러 아젠다를 두고 격렬히 찬반이 대립하여 나라가 두 쪽이 나기 직전입니다. 현명한 지도자가 나와야 이 난국이 수습되겠으며, 그런 의미에서 "다시 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외치는 이 저자 같은 분이 지혜롭게 대중을 이끌어가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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