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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 한국사를 다시 읽는 유성운의 역사정치 ㅣ 지도로 읽는다
유성운 지음 / 이다미디어 / 2020년 12월
평점 :
역사는 언제나 지도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한국인들의 필독서처럼 꼽히는 <삼국연의>도 후한말의 행정구역도와 함께 읽어갈 때 각 인물이 구사하는 전술과 책략의 구체적인 의의를 파악할 수 있고 해당 분야의 많은 마니아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죠. 그런데 각종 취업 시험에서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점수를 요구하는 요즘인데도 정작 한국사를 지도와 함께 공부하려는 노력은 드문 듯합니다. 시험의 최신 추세가 그쪽을 묻고 있는데도 말이죠. 한국사 역시 지도와 함께 공부하면 대단히 재미있어지고 의미가 정확히 와 닿는데다 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맥락이 와 닿습니다. 이 책은 물론 수험서는 아니지만 평소에 역사를 취미로 재미로 넉넉히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면 각종 시험도 한결 수월히 통과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유성운 저자님은 중앙일보 기자입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N모나 D모 포털에 역사 관련 독특한 제목을 단 아티클이 노출될 때가 있는데 클릭해서 읽어 보고 재미있다 싶어서 지난 연재물까지 죽 읽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역사는 물론 한국인이면 누구나 중고등 과정에서 필수로 배우지만, 교과서에서 딱딱하게 그 의의를 정리한 내용 말고, 우리가 사는 이 현대의 맥락으로, 혹은 실용적 프레임으로 재해석하면 어떨까, 어떤 이런 고민, 그리고 재미가 녹아 있는 글들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지도와 함께 책으로 나와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잡념과 근심이 싹 잊혀지고 독서에만 완전히 몰입항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p108에는 5대 10국 시대의 컬러 지도가 나오고, 이무렵에 해당되는 한반도의 시대의 고려 초기입니다. 조광윤의 송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것보다 고려의 건국, 반도 통일이 조금 더 빠르죠. 조광윤이 대체로 화북에서 큰 인망을 얻었던 정치인이었던 것처럼 왕건도 이 땅애서 당시 두루 존경과 기대를 모은 인물이었습니다. 견훤의 후백제도 망하기 전에 오월과 통교했다는 사항을 국사 교과서에서 배웠는데, 이 책의 지도를 보면 그 의미가 확실히 와닿습니다. 발해는 926년에 상경성이 포위되어 큰 위기에 빠졌는데(p109), 아무도 와서 돕지 않았다고 책에 나옵니다. 사실 거란이 동북아시아에서 너무도 강성했기에 그 비위를 거스를 수 없었겠죠. 미국이 쿼드를 만들어 동참을 권유하지만 일본조차도 흔쾌히 미국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 것(공동성명이라든가)과 비슷하네요. 발해는 수도를 여러 번 옮겼으나 주된 근거지는 상경성이었고 책에도 그래서 이 곳을 특별히 언급합니다. 바다 건너에는 왜(倭)가 있는데 지도를 보면 확실히 그 판도가 파악됩니다.
p80에는 페르시아의 서사시 <쿠시나메>가 소개되는데 여기에 신라가 바실라라는 안전한 나라로 등장합니다. 당시 신라가 얼마나 번성했는지도 간접적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p87에는 저자께서 이라크의 한 공무원과 대화를 나눈 사실이 적혔는데, 이라크도 한때 페르시아에 복속된 지역이었으므로 중동인들의 어떤 이상향을 현대의 후손들이 공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산수 경관이 수려한 곳... 예전 어느 프랑스인도 故 김소희 명창의 연주(창)을 듣고 우리 나라가 맑은 물, 자연의 물을 그대로 식용수로 쓸 수 있는 나라 아니겠냐고 (사전 지식 없이) 추측한 적이 있다고 하죠. 금이 풍부하다는 말은 고려, 조선 代까지 계속 내려왔는데 그동안에 너무 채굴이 되어서인지 이후에는 그런 사정이 기록에 보이지 않고 고작 구한말에 미국, 러시아, 영국인들의 이권 침탈 건 연관뿐입니다. 손님을 환대하는 풍습이 아름다운 우리지만 이제는 국제 정세와 우리 내부의 사정이 복잡하게 변해서 그런 멋진 리액션의 발휘가 힘들지 않을지... 저자도 그 비슷한 말씀을 p89에서 합니다.
우리는 예전부터 대륙의 강대국을 큰 충돌 없이 무마하기 위해 각종 묘안을 많이 내었는데 이를 두고 "약소국의 잔꾀"라며 조롱하는 전통도 대륙에서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뭐 어쨌건 간에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국토를 물려 주려고 고군분투한 조상님들의 노력에 감사하는 바입니다. 욱하는 성미를 부리기는 쉬워도 참고 또 참으며 생존의 지혜를 발휘하기란 쉬운 게 아닙니다. p167에는 이런 사연, 즉 일본이 절대 (갓 대륙을 통일한) 원조에 입조하지 않으리라는 냉정한 판단을 내린 고려의 필사적인 노력이 나옵니다. 이렇게 애를 썼는데도 쿠빌라이는 기어이 원정을 단행했고,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게 됩니다. 이 비슷한 일이 태종~세종 연간에도 있었는데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마도를 정벌했기에 당시 명 성조 영락제의 무리한 요구가 더 이상 없었겠죠.
책에서는 고려 문종 대에 큰 번영을 누린 비결 중 하나가, 이전 시대에 주적을 거란으로만 잡고 분명히 국력을 집중했었고, 남쪽의 근심거리를 없앤 덕분이 크다고 합니다. 일본만 헤이안 시대가 아니라 고려 역시 "평안"했었다고 규정(p149)합니다. 일본은 그런데 왜 고려를 적대했던가. 그 이전 신라시대에 중앙정부가 통제력을 잃었고 이 무렵 신라 해적이 일본에 적지 않은 피해를 끼친 탓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일본이 신라를 적지 않게 침공했고 양국은 거의 항상 적대관계였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백제와 연대했기 때문이죠. 신라를 계승한 게 고려였고 고려 역시 일본의 적국이라는 태도가 일본 사서에 보인다고 하며, 우습지만 일본은 신라나 발해도 다 자신의 속국으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한참 후 고려말에는 열도에 남북조시대가 전개되며 이때 대거 왜구들이 반도 남부에 침략, 막대한 피해를 끼칩니다. 이때 큰 활약을 한 무장이 최영, 최무신, 그리고 이성계 등이죠.
조선 시대 대체로 남인계는 일천즉천 정책을 지지했습니다. 이 먼 뿌리로 책에서는 퇴계 이황이 노비를 양인과 적극 혼인시키려 든 예를 듭니다. 부모 양쪽 중 하나가 노비면 그 자식도 노비가 되는 식입니다. 이황은 전처와 후처 가문이 모두 지역 명문이었는데 이로서 특히 가세가 확장되었다는 말도 책에 있습니다. 학문적 재능이 뛰어난 이황의 가문과 혼사를 맺으면 앞으로 정신적 영향력을 향토에서 크게 확대하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겠죠. 책에서는 어떤 현대 정치인의 예를 들며 이황의 노련한 처세를 부각하는 듯하지만 아무려면 그 사람과 이황이 같은 선상이겠습니까. 바로 앞에는 조광조의 현량과 시도를 비판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이슈에서는 독자인 저도 저자분께 적극 찬동합니다. 사실 당대의 사정에서 추천제로 인재를 등용하는 건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거죠. 중국에서도 과거제가 확고히 자리잡았고, 이후 조광조의 후예를 자처한 사림들도 그 어느 당색에서도 현량과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습니다. 과거제는 비록 일부 타락, 변질했지만 뼈대 자체는 갑오경장때까지 유지되었죠.
다만 그렇다고 과거제가 만능이라는 건 아닙니다. p318 이하에서는 과거제 역시 생계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양반계급의 특권이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양인인 이상 일개 농민이라고 해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자체가 어디겠습니까. 고려나 신라 대에는 없던 제도적 장점이죠. 한국도 요즘 이런저런 아빠찬스 무슨 찬스가 문제가 됩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씩이나 기회가 공평히 주어지는 나라도 드뭅니다. 미국은 대놓고 기여입학제가 있지 않습니까. 다만 제도를 잘 돌보지 않으면 어떤 이상한 이들이 조삼모사식 술책을 부려 불공정을 시스템화할지 모르는 일이죠.
전쟁은 본래가 문명 혁신의 기회입니다. 내가 살고 적을 죽이기 위해 그야말로 있는 지혜 없는 지혜를 다 짜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p354에는 임란을 거치며 하이테크에 눈을 뜬 후기 조선을 조명합니다. 비록 왜란과 호란을 겪었으나 조선은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었고(p390), 나선 정벌에 정예 포수들을 보낸 것도 강대국의 요구에 굴복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저력을 보여 줬다고 봐야 합니다. 정조가 화성을 축조한 것도 나라 형편이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방증인데, 다만 서세동점의 결정적 시기에 집정자들이 단견이었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통신사는 조선 초,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고도 하나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큰 비용을 들이며 정기적으로 파견된 건 임란 후 풍신수길 세력이 망하고 덕천 막부가 들어선 후입니다. 이것도 덕천 막부가 먼저 청해서 이뤄진 거고요. p499에는 "18세기 들어 기반이 탄탄해진 막부는 더 이상 통신사 효과가 필요없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역으로 그 이전에는 조선과 교류할 필요가 저쪽에서 더 절실했다는 뜻입니다. 역사에서 가슴이 아픈 대목은, 왜란 같은 끔찍한 재난을 당하고도 왜 곧바로 반격하여 복수를 꾀하지 않았냐 같은 게 아니라, 처음에 확고했던 경제적, 문화적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을 당하는 이런 국면입니다. 실제로 조선은 호란에 대해서는 국치로 여겨 이후 효종 등이 북벌을 꾀했지만, 왜에 대해서는 남정 같은 시도가 미미했습니다. 상대도 안 되는 야만인에 대해 구태여 복수심을 품을 필요도 없다는, 역설적인 자신감의 발로 아닐까요? 진짜 분한 건 경제적 문화적 실력의 역전상입니다. 그러니 19세기 서세 동점의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이 그처럼 차이났던 거죠.
책은 모든 페이지가 고급 백상지이고 실린 지도도 컬러라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저자님은 현대사에 대해서도 신문사의 같은 코너에서 흥미로운 글을 오래 연재해 주셨는데 후속편도 독자로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