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 - 코로나19, 안나의 집 275일간의 기록
김하종 지음 / 니케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김하종 신부님은 본명이 빈첸시오 보르도, 이탈리아 태생인 가톨릭 사제이십니다. 이처럼 한국인 이름을 가지신 사실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이, 30여년 전 한국에 와서 노숙인과 소외된 이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시는, 한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살갑게 공감하며 이를 행동으로 옮겨 온 고마운 분입니다.

김 신부님은 1990년 5월 12일에 한국에 오셨고(p99), 1957년생이시라니 33의 한창 나이때 이 땅을 처음 밟으신 분입니다. 그때 이후로 계속 한국에서 어려운 이들을 돕고 봉사하는 거룩한 삶을 사신 거죠. 그의 신조는 명쾌하고 간단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건 기쁨입니다."(p52)

노숙자 일반을 상대하는 건 남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p114에 보면 "자주 오는 우리의 친구(신부님, 즉 이 책 저자의 표현입니다)"가 갑자기 칼을 빼어들고 누굴 죽이겠다며 위협하는 그 아찔한 순간, 직원분들의 힘으로 간신히 상황을 진정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군가 새치기를 해서 그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새치기를 한 사람이 나쁩니다. 아직도 이런 사람이, 더군다나 모두가 줄을 서서 무료 도시락을 받는 그 줄에서 새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놀랍죠. 그렇다고 분노를 조절 못 하고 바로 칼을 뺀다는 건 더 나쁜 행동입니다.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지만 지적 장애가 있어 아이 같다(p115)." 어쩌면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새치기라는 악을 자신 나름대로 응징하여 신부님과 직원들의 수고를 헛되이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 해도, 그런 행동은 더 큰 악을 낳을 뿐입니다. 신부님과 그의 동료들은 이런 상황까지도 인내하고 부모의 입장에서 배려해야 합니다. 그저 정해진 동작과 언사만 반복하는 게 봉사가 아닙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상황을 하루라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 물고기로 수천 군중을 먹였지만, 우리들 인간은 그런 놀라운 물리적 기적을 행할 수 없습니다. 780인분의 음식을 준비해도, 다른 급식소들이 문을 닫으면 그 사람들이 전부 이리로 오니(p55) 음식이 배겨날 리 없습니다. "신부님, 저희는 너무 배가 고파요." 한국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 아직도 이런 딱한 분들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더 부끄러운 건, 이틀 전인 12월 14일자 뉴스로 난 바로 이런 일(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0121472547 )입니다. 구태여 이런 행동을 해야만 했을까요?

p56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옵니다. "당장 음식 주는 걸 멈추세요! 바이러스를 옮기고 있다고요!" 이 책은 특히 최근 코로나 사태 와중 275일간의 사정을 다루므로, 어느 주민이 신부님더러 항의한 저런 말, 민망한 말을 고스란히 또 담습니다. 어떤가요?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이면 위험이 커지긴 합니다. 어려운 이웃보다 내 건강을 먼저 신경 쓰는 건 인지상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저런 야박한 언사를, 부득부득 봉사자 앞에 찾아와서 내뱉어야 하겠습니까? 신부님은 일단 "그들을 이해는 한다"고 하십니다. 왜 그들은 신부님을 이해 못 하는 걸까요? 노숙인을 이해 못 하는 건 또 그렇다 쳐도.

p39에는 더 난감한 사정이 나옵니다. 시청의 행정담당 공무원 두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지역의 다른 식당들은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려고 문을 닫았습니다. 안나의 집(신부님이 운영하는 봉사 시설 명칭)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한숨이 나오네요. 이런 일 역시 본래는 시청 등 관공서의 소관일진대, 그 일을 대신해 주는 외국인 성직자에게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게. 하긴 하급 공무원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 무슨 재량이 있겠습니까만.

"내 아들아, 가거라! 나는 매일 기도로 너와 동행하고, 주님께서는 언제나 너를 보호하실 것이다." 미성년일 때는 타인의 보호를 받아도, 이제 성년이 되면 자기 일을 찾아 둥지를 떠나야 합니다. 희철(가명)은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미용사 자격증도 땄고, 18개월의 군 복무를 이행하기 위해 안나의 집을 떠나야 했답니다(p128). 가톨릭 신부님들은 대개 신도들에게 "아들, 딸" 같은 말을 쓰죠. 영화 <대부 3>에도 죄를 뉘우치려다 망설이는 마이클에게 "고 온 마이 썬, 고 온!"이라며 고회를 재촉하는 추기경 람베르토(라프 발로네 扮)의 모습이 나오죠. 그래서 가톨릭 사제의 번역 명칭이 "신부"이고, 아버지 부(父) 자를 쓰는 거죠.

많은 노숙인들은 안나의 집에서 마치 자신의 집과 같은 안정감을 느낀다고 합니다(p162). 신부님과 그의 직원분들이 친구(이 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지요)처럼 대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부님은 이들이 불우한 가정 환경이라든가, 기타 여러 인생의 좌절 때문에 자신감이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라고 합니다. 정확하게 짚으신 이유인 듯합니다. 그저 일방적인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친구, 동료로 보시는 거죠.

"제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할 사람이 없어요. 명함을 주세요(p187)." 아무리 노숙인이라 해도 신변애 생길 이상, 돌발 사태에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습니다. 명함은 온전히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나 수요, 공급되는 건데도 여튼 이 "친구"분은 명함을 달라고 합니다. 기어이 가장 우려하던 일이 생기고야 말았고, 갑자기 급한 일을 당한 그 친구분이 쥐고 있던 건 신부님 명함뿐이어서 경찰은 바로 이리 연락을 취합니다. "죽어가는 이 친구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이 흘렀다."

신부님과 항상 함께하는 건 아니라도 많은 유명인들이 봉사하러 옵니다. 배우, 가수, 국회의원 등 다양하다고 하네요.(p206) 이 중에는 이름이 특이한 이도 있습니다. 신부님은 명품의 고장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이탈리아 말고 프랑스식 이름을 단 명품도 있는데 루이 비통이 그 한 예이겠습니다. 명품하고 이름이 같은 강아지 한 마리가 이 안나의 집에서 자기 식으로 열심히 봉사를 하는데 책에 그 사진이 나와 있고 아주 잘생겼습니다. 녀석에게 하필 그런 이름을 붙이는 유머감각이 빛나는 신부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녀석의 훌륭한 마음가짐이야말로 명품 중의 명품이죠. 개도 이런 착하고 장한 일을 하는데 사람이 그보다 못하기도 하다는 게 참 한심하기도 하고 부끄럽습니다.

책 말미에는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기도문이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틈틈히 참조하여 자신의 기도 일정에 보태면 좋겠고, 해당 종교 신자가 아니라도 한 번쯤은 읽어 보며 이런 시국을 사는 태도를 돌아볼 만합니다. 그 뒤에는 안나의 집 관련 노숙인 실태를 조사한 통계 자료가 나왔는데 역시 여러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소중한 기록입니다. 책 띠지 뒷면에는 이탈리아 출신인, 방송인으로 요즘 잘 알려진 알베르토 몬디의 사진과 그의 한 마디가 실려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