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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평점 :
계몽주의 이래 사람은 개인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되고, 어떤 환경이라든가 그 부모의 신분이라든가 하는 개인 외적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책임을 지우지 말아야 한다는 게 컨센서스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백 년이 지나도 우리들은 여전히 누군가에 대해 고루한 편견을 가지는 게 보통이죠. 일단은 이게 잘못입니다. 그런데 당하는 쪽 입장에서도 뭔가 방어논리를 만들려고 터무니없는 날조된 사항을 지어내어 오히려 (가해자의 비열한 시도를 흉내내어) 역공을 펴기도 하는데, 일단 가해자가 잘못이기에 자성은 해야하지만 피해자 측의 저런 터무니없는 시도도 꼴사납거나 한심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여튼 이런 공방이 아주 꼬인 양상으로 펼쳐지기도 하기에, 무엇의 선악과 당부를 가르는 게 상당히 어려운 세상이 된 건 틀림없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도 가리기가 어렵거니와, 그 이전에 아예 "누가 누군이지도" 그리 쉽게 판명이 나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제는 말이죠.
저는 처음에 책을 펼쳤을 때 나오는 기도라는 이름의 변호사가, 이 시작의 액자에만 잠시 나오고 이후에는 다른 주인공들이 나와 이야기를 이끌어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고, 이 제법 긴 소설의 주인공 겸 화자는 내내 "기도"입니다. 이름도 좀 이상하지만(책 p77에 "기도"의 한자 표기가 城戶(성호)라고 나옵니다), 이 주인공은 자이니치, 즉 재일한국인입니다. 묘하게도 일본 메인스트림 작품에 재일동포 줄신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었는데 작가 히라노 선생이 창작 당시부터 이 멋진 작품이 한국어(제법 큰 시장이자 우호적인 독자들이 포진한 나라)로 번역 출간될 걸 의식은 하지 않았겠나 짐작합니다. 재일동포에 우호적인 시선과 주제라고 해서 한국 독자 입장에서 무조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건 아니고, 사실 뭐가 되었든 거론 자체가 좀 불편한 게 솔직한 느낌입니다. 그런 거론은 보편적 휴머니즘과 연관이 되어야만 하며, 언제나 그래 왔듯 히라노 선생은 이번에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독자의 느낌을 떠나서도 말입니다.
문구점 주인네 딸 리에는 누구한테나 사랑 받는 참한 처자입니다. 저 아이는 계속 그 인생이 행복하겠거니 하는 짐작과 축원이 누구로부터도 나올 만한... 그런데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운명의 장난은 상당히 부당한 방향으로 그녀의 생을 끌고 갑니다. 마치 불멸의 신들이 테스(더버빌가의 그녀)를 갖고 놀다 한 생을 끝내었듯...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처음에 이 여인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줄 알았습니다만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여인은 한 번은 성격이 잘 안 맞았던 건축가와 결혼했다가 둘째 아이를 잃고 이혼했으며, 다른 한 번은 "(나중에 드러나길)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했다가 사별했습니다. 이 남자, 즉 "한 남자(소설의 원제이기도 한 아루오토코)"의 두번째 결혼은, 신분 사칭이었음이 드러나서 결혼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호적에 그 사실조차도 남지 않게 된 결합. 이 결합의 상대방이 과연 누구였는지를 밝히기 위해 변호사 기도 씨는 동분서주하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충격적인 여러 사연들이 소설의 줄기를 이룹니다.
책 뒤의 역자 후기에도 나오지만 작가 히라노 선생은 다소 문어체적인 스타일입니다. p12에는 "이제는 사어(死語)가 되다시피한 표현이지만 그는 "인물(人物)"이었던 것이다."란 문장이 나오는데 우리 현대 한국어에서는 이런 문맥에서의 "인물(人物)"이 사어일까요? 이런 뜻을 강조하고 싶으면 아마 "훌륭한"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게 보통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어가 맞겠네요. p19에는 "부절(符節)이 안 맞네"란 표현이 나오는데 한국어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용비어천가 1장에서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고성이 동부하시니"라고 할 때, "동부(同符)"가 바로 "부절이 맞다"는 의미가 됩니다. p68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p380의 후주에 보면 여급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대략 유흥업소 여성 종업원(완전 매춘부까지는 아니고)을 가리키는 이 단어도 이제는 한국에서 듣기 힘든 듯합니다. 예전 소설책 중에서나 볼 수 있던...
변호사인 기도 씨는 참 훌륭한 인격자입니다. 전 처음에 ㅎㅎ 이 기도 씨가 혹시 우리가 찾는 그 사람 본인이며,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처럼, 혹은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전혀 아닐 것 같은 그 사람이 바로 범인이라는 충격적 결말이 아닐까 했었는데... 그건 아니었구요. 자신에게 딱히 이익이 될 것도 없는 사건을 자진해서 맡아 기어이 진상을 밝히고 마는 멋진 아저씨입니다. 할 일이 없어 파리만 날리는 변호사인가 하면 그건 또 전혀 아니고 본문 중에 오십 건 넘는 사건 처리하느라 몹시 바쁜 몸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기도 씨는 재일교포 3세입니다. 아내인 가오리 씨는 꽤 미인이며 집안도 훌륭한데다 흠 잡을 데 없는 일본인(아, 물론 평균적인, 우리 입장에서는 유감스러운, 일본인의 시선에서 그렇다는 거고요) 혈통입니다. 이런 부인이 간혹 등장하여 남편에게 불평이라도 토로하는 대목에서 우리 한국인 독자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일본인 남편한테였다면 저렇게 했겠는가. 물론 이 역시 독자의 역편견이며 괜한 피해의식의 발로일 수 있습니다. 여튼 저는 그런 느낌이 가끔 들었었네요. p123에서 부인이 저렇게까지 집요하게 의심하는 걸 보고 혹시 이건 소설의 반전을 위한 복선이 아닐까 생각했었으나 뭐 그건 아니더군요.
기도 씨는 어떤 동기에서 이런 일을 이어나갔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소설을 다 읽은 독자라면 궁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작품 중에서 설명이 좀 과할 만큼 자세하여 약간 피로감이 들 정도였죠. 대화 중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치게 긴 사람이라면 대개 어떤 불순한 동기가 끼어든 게 보통입니다. p53에서 "(동생이) 범죄자들하고 어울리기라도 하면 우리 여관은 끝장"이라 떠드는 교이치의 사설이라든가, 소설 중반부쯤 학생시절 무슨 비디오를 찍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헛소리를 늘어 놓는 그 교도소의 호적 사기꾼도 마찬가지입니다. p65에서는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흔히 볼 수 있는"이란 말이 나오는데, 비단 가정폭력범뿐이 아니라 모든 불량배들, 특히 사이코패스 경향이 짙은 질 나쁜 인간들이 공통으로 보이는 모습이고 태도입니다. 아무도 관심 없는, 게다가 날조까지 된 이야기를 뻔뻔스럽게 참 길게도 늘어놓죠. 이런 건 뭐 "중년 형제간의 복잡한 심리(p52)" 정도로 얼버부릴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이렇게 아주 질이 나쁜 인간은 반드시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아야 합니다. p280 교이치의 무심한 말, "선생 망상이 아니냐" 어쩌구하는 소리는 참 기가 차지만 어쩌면 이런 투박하고 나쁜 말에 일말의 진실이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씁쓸하게도 세상은 그리 고상한 곳이 아니니 말이죠.
특히 교이치 같은 사람은 참 어이가 없죠. 무슨 이런 인간이 다 있는가 싶을 만큼. 정작 불량배들과 어울린 건 자신이 아닙니까? 착한 둘째 아들을 끝까지 구박하다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싶다고 한 그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부모들이 왜 이렇게 지네 아이들을 차별했을까에 대한 답은, 소설 결말 근처까지 가서 미스즈의 회고에 잠시 암시됩니다. 외모가 보잘것없고 약간 바보 같았다는 평가가 나오죠. 하필 그런 남자와 사귀기로 한 (미인이었던) 미스즈의 동기에 대해서는 역시 그 대목에서 자세히 설명됩니다.
p317에는 "어떻게든 나(미스즈)와 한 번은 자야 굴욕감이 해소되었을" 교이치의 심리에 대해 그녀가 아주 노련하게 설명을 합니다. 세상을 이런 동기에 의해 사는 인간도 우습지만 있기 마련입니다. 뒤에는 르네 지라르의 이론까지 동원되는데 약간은 현학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현학적인 대목이라면... p55에서 기도 변호사가 어린 아들과 이런저런 소통을 하는 장면에서도 나옵니다(제 느낌으로). 그는 여기서 울트라맨과 나르키소스의 변신을 연결짓는데 ㅎㅎ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한참 뒤 p346에서는 아이에게 "답을 아직 못 해줬다"고 하며, 다시 p349에서 오비디우스의 고전 <변신 이야기>의 일부를 길게 인용합니다.
소설 속에는 여러 바(bar)라든가 음식점 등이 등장하는데 좋은 곳일수록 멋진 음악과 함께하는 게 보통이죠. p87, 또 그 후주가 있는 p381에는 조 코커가 언급되는데 국어원의 표준 표기법에 맞춰 조 코커라고 하면 약간 귀에 설지만, 우리들도 다 아는, 허스키한 창법의 대명사처럼 꼽히는 "조 카커", 바로 그 사람이죠. 이 노래 말고도 영화 <사관과 신사>의 주제곡이었던 "Up where we belong"을 제니퍼 원스와 함께 부른 가수입니다. 남녀 듀엣곡으로 제가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습니다. ㅎㅎ
p118에는 3D 프린터로 만든 노벨티 때문에 뇌손상을 입은 아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현재는 3D 프린터가 그리 처음 예상처럼 대중화되지는 못했지만, 사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며 전개될 세상의 모습은 이에 가깝기는 합니다. 세상이 바뀌려면 법이 먼저 정비가 되어야 하죠. 히라노 선생이 법대 출신이라서 작품에는 이런 언급이 자주 나옵니다. 작품 맨 앞에 "어설픈 법학도였기에 (기도처럼) 제대로된 법조인을 만나면 주눅부터 들었다"고 한 건 어느 정도는 히라노 선생의 자기 고백이겠습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나마 이런 반응이고, 양심이 썩은 쓰레기는 오히려 뻔뻔스럽게 사이비 이론부터 들이대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며 저능한 안심을 하고선 말입니다.
p120에 상속격차규정이란 말이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글쎄 모르겠습니다. 상속분에 적서의 차별이 있었는지? 장자와 그 아래 형제들 간에는 차별이 있었지만 말이죠. 몇 년 전에 어느 정치인의 사생아가 유산 청구를 했었는데 엄연히 법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묘리 탈법 수단을 써서 빠져나가는 걸 보고 참 기가 막히더군요. 한국에서는 (일본과 달리) 일찌감치 이런 위헌 상태가 해소되었으나 법이 바뀌면 뭐하겠습니까. 법을 대놓고 어기는 철면피들이 있는데.
p168에는 호적 데이터베이스화 이슈가 나오는데 이런 건 확실히 우리 한국이 일본을 앞서가는 거죠. 추정 300일 문제 역시 한국에서는 입법적으로 오래 전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유전자 감식 기술이 얼마나 발전되었는데 이건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죠. p172에는 개인번호 도입이 언급되는데 한국은 이미 1960년대부터 제도화되었습니다. 아직도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개인정보 침해라고 하지만 말입니다.
p323에는 "로마제국 영속을 전제로 한..."이라고 하는데 역시 히라노 선생 답습니다. 제국은 망해도 법은 영원히 남았습니다. p356에는 호적을 등기부와 착각하는 사장의 대사가 있는데 이런 걸 픽션으로 꾸며내는 법학도 출신 작가가 참 귀엽죠.
일본에서 요즘 부쩍 혐한 세력이 늘어 뜻있는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죠. p140에는 "극우의 배외주의"라는 말이 나오며, p339에서도 다시 "배외주의"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p140과 그에 연관된 후주에서는 1923년 관동 대학살 당시 특정 구절을 발음해 보라면서 일본인과 조선인을 변별하는 수단으로 썼던 사실이 언급되는데, 이런 걸 shibboleth라고 하죠. 기독교 구약에 그 연원이 있을 만큼 아주 오래된, 악명 높은 풍습입니다.
p161에는 헤이트스피치 규제와 표현의 자유 간 충돌이 이야기되는데 아무리 나쁜 행동이라도 헌법상의 원칙 또한 존중되어야 하므로 이런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p224에서 사형은 신체형이 아니라 생명형인데 작가께서 잠시 착각한 듯합니다.
주인공인 기도 변호사는 훌륭한 사람이며, 재일 3세라는 신분상 열등감이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망정 그 인품에 대한 평가가 변하지는 않습니다. p201에는 "취미처럼 X 찾기로 현실도피"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며, p29에는 아내 가오리가 함께 카운슬링을 받으러 가자고도 하나 착한 사람이니까 이런 최소한의 자기 성찰도 시도하는 겁니다. 나쁜 인간이면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합리화죠.
미스즈도 재미있는 캐릭터입니다. p301의 "어떻게든 겁을 주려고 했으나 어설픈 게 그야말로 다이스케 같은 느낌"이라든가, p311의 "뭔가 진짜 눈에 선하네요." 같은 말이, 마치 어머니처럼 다이스케를 훤히 꿰고 하는 소리라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p322에서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한 답은 p328에 나옵니다.
자신이 아닌 남을 흉내내어 사는 게 그토록 큰 유혹, 흥분(p60), 쾌감, 혹은 힐링을 줄까요? "한 남자"의 깊고도 근원적인 고충에 대해서는 작품 중에 충분히 설명이 나오므로 공감할 수 있으나, 일반론으로는 어떻겠는가 하는 겁니다. p360에는 그 "한 남자"가 실제로 다니스케가 유년기에 검도를 배웠다는 걸 알고 그것까지 거짓으로 지어내어 하는 말이 나옵니다. 정말 지독하죠. 안타깝긴 해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