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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축의 전환 - 새로운 부와 힘을 탄생시킬 8가지 거대한 물결
마우로 기옌 지음, 우진하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세상은 본디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2030년이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맞는 전환점이리라 예측합니다. 이 한국어판에는 특별히 한국어 서문이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 한국은 모든 면에서 중간 규모의 나라이며, 자체적인 인구 수나 경제규모에 의존해서는 미래의 번영을 장담할 수 없으며, 주변국들과 협력해야 한다. .. 지정학적 한계 속에서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권역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 책에서 분석할 경향들 속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다....(p5)"라고 말합니다.
약점은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자도 지적했듯 한국은 어떤 면에서 그저그런 나라의 한계를 못 벗어날 수 있지만, 언제나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종래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이런 성격과 특징이란 게, 앞으로 급격하게 변화를 맞이할 세상에서는 메리트로 작용하여 번영의 큰 실마리를 먼저 나꿔챌 수 있다는 뜻입니다. ㅎㅎ 이렇게까지 말하는 저자의 책이니만큼 우리 한국 독자들이 더욱 눈에 불을 켜고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일자리 소멸 현상이, 중간 정도의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 몰려 있는 제조업 분야에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야말로 쉽고 좀 더 경제적으로 기계화 혹은 자동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p52)" 그래서 트럼프 같은 이가 미국 블루칼라 백인층을 특히 타겟으로 삼아 효과적인 선거운동을 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인기가 높다는 게 (역설적으로) 투표 결과 확인되어, 4년 뒤 가장 유력한 후보로 벌써부터 부상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도 여튼 잘 지적하고 있듯 이런 이들의 일자리를 뺏는 건 이주 노동자들이 아니라 "기계"인데도 이들은 분노를 엉뚱하게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새로 일어나야 할 듯하네요.
일단 저자는 이주 노동자는 선진국 입장에서 환영해야 한다는 편입니다. 왜? 인구 노령화 추세가 선진국일수록 두드러지니 말입니다. 일자리의 공백(?)은 이들이 채우는데 "대체 이주"로 명명된다고 합니다. "대체(replacement)"는 사실 영어와 우리나라말에서 쓰이는 용법이 사뭇 다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문제도 2030년을 기준으로 삼아, "절반 이상의 인력"이 "여러 일자리(꼭 앞에서 말한, 기계화되기 쉬운 일자리만은 아니라고 하네요)"를 채울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필립스는 1939년에 벌써 전기면도기를 내놓았고(지금도 유명하죠), 983년의 CD 플레이어(한국에서는 1990년부터 널리 팔렸습니다), 1998년의 DVD 플레이어 등도 모두 이 다국적 기업의 작품이라고 책(p83)에서는 말합니다. 이런 기업도 희한하게 저 놀라운 혁신 상품을 내내 출시하던 그 무렵부터 거대한 적자의 덩어리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2011년 프란스 반 하우턴이 새로 CEO에 부임하고 나서야 비로소 문제의 해결 그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다름아닌 인구통계학적 흐름을 애써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선택이었다고 하네요.
뭐 삼성그룹도 이를 알아채고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회사를 새로 만들어 헬스케어 분야에 적극 뛰어들었으며 셀트리론의 서정진 회장 같은 이도 이 트렌드를 일찍부터 내다본 것입니다. 노령자가 많으면 당연 노령자의 가장 큰 관심사가 뭔지를 알아채어야죠. 몸을 들썩이며 워크맨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세대가 많으면 소니 같은 기업이 흥합니다만 지금은 1020이 선진국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튼 저자는 이를 두고 "노년의 재발견"이라 합니다.
"Z세대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첫번째 세대다."(p105) 저자는 이들이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태도와 법률이 그야말로 번개처럼 바뀌는 모습을 본다"고 합니다. Z세대가 아닌 우리들도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뀌는 과정을 다 봅니다만 우리는 우리가 어렸을 때 형성했던 관점들을 대체로는 그대로 유지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고정관념이 생기기도 전에 대세와 주류가 바뀌는 걸 보며,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와 교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세대가 공히 어떤 가치를 셰어하는지도 의심스러운 판입니다.
그런데 이제 갓 산업화의 과실을 맛보기 시작한 중국은 어떠한가? 우리 생각에는 아직도 이 나라가 청장년층이 열정적으로 사회를 이끄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쪽이지만,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현상을 관찰한다고 합니다. "선진국들이 노령화로 걸어들어가고 있다면, 중국은 달려들어가고 있다(p107)." 60세 이상의 인구가 2억이 넘으며, 5천만명 넘는 노인들이 자녀들과 떨어져 산다고 합니다.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도 이미 1980년도부터 목격되었으나, 중국은 그 추세가 훨씬 빠른 편이라는 거죠. 한편 중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미국의 또래보다 저축액이 3배 정도 많다고 합니다. 중국이 가난하다고 무시 받는 건 그 앞 세대의 문제에 그칠 수 있다는 암시입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청년들은, 나라는 부강하나 자신들은 가난함을 느끼는 첫번째 세대가 될 수 있다고 독자인 저는 암시를 받았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일각에서 열렬히 찬성하는 기본소득제는 과연 대세가 될까요? 미국에서 좌파성향으로 여겨지는 루스벨트 연구소도 "세금으로 지원하는 기본소득제로는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p147). 사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이들도 어떤 장밋빛 환상을 무턱대고 내놓지는 않습니다. 대체로는 정직하게 "성장이라는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며, 이런 전제 하에서라면 기본소득이 큰 모순은 아니죠. 실제로 알래스카에서 시범 시행을 한 결과는, 의미없이 금방 써버린다거나, 오히려 빈부 격차가 더 커졌다든가 하는 현상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유는 여유 있는 계층일수록 이를 성공적으로 재투자했기 때문이라는군요.
어느 나라나 중산층의 성장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 지표야말로 빈곤층의 감소를 직접 증명하며, 사회의 건전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중간층(중산층은 중간층과 다릅니다만 일단)이 수적으로건 질적으로건 상층부와 하층부를 압도해야 사회가 안정된다고 그 예전부터 지적(p119)했었다는군요. 그렇다고 중산층이 마냥 선량(p125)하냐면 그건 아니겠죠. 미국과 유럽의 중산층은 계급으로서 언제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그 쇠퇴의 기미는 어느때보다도 뚜렷합니다. 반면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중산층은 나날이 성장합니다. 이 역시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2030년이 중대한 기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표면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게 수자원이지만 인간이 식수 등으로 이용하기에 물은 턱없이 부족합니다(p211). 특히 남아시아에서는 깨끗한 물이 날로 부족해지며, 가장 가난한 나라일수록 깨끗한 물을 길어 오는 노동이 주로 여성에게 부과되며 이는 우리나라도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았겠죠. 상하수도 시설이 온전히 갖춰진 나라에서 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특히 물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작업을 벌이는 강도와, 수질 오염이 서로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농업 역시 여러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는 분야이지만 비판자들은 새로운 기법이 과거와는 달리 환경파괴적 경향을 띤다고 지적합니다. 농업 역시 사실 마냥 환경친화적이진 않아서, 사하라 사막이 점점 커지는 이유도 무분별한 관개 작업 때문이었으니 애초에 인구가 지나치게 느는 자체가 환경에는 재앙이겠습니다. 이런 까닭에 선진국에서는 "수직 농업"이 각광받는다고 책에 나옵니다(p215).
애플의 스마트워치는 여러 신기한(더 이상 뭐 신기할 것도 없는) 기능으로 소비자들의 주목 대상이 됩니다. 책에서는 유명한 코믹스 캐릭터인 딕 트레이시가 이미 1946년에 이런 신기방기한 손목시계를 차고 나왔음을 상기합니다. 1970년대 세계를 놀라게 했던 기술 중 하나는 일본이 선뵌 것으로, 수정 진동자를 이용하여 더욱 정교함을 높였다고 합니다(p237). 휴대전화가 널리 사용되면서 사실 시계가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 추세가 굳었으나 애플 등이 스마트워치를 출시함으로써 폰의 기능도 보조하고 패션 아이템 기능도 제고했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p256에서는 사물인터넷 기술이 언급됩니다. 사실 이 기술도 이미 2015년 즈음에 책이나 미디어에서 널리 회자되었는데 아직도 생각보다는 진척이 느리며 자율주행보다도 더 늦게 대중화할 듯합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포인트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동시에 새롭게 만들어진다"입니다. 단순 반복 노동은 없어지는 반면 인간의 창의력이 상대적으로 더 요구되는 분야는 늘어나리라는 함의가 읽힙니다.
공유경제 개념은 이미 미국인들이나 우리 동아시아인들의 삶 속에 깊이 침투했고 우버나 (한국의) 쏘카 같은 서비스가 널리 보급되었지만 여전히 현행법과의 충돌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책에서는 공유경제 개념의 함정을 살짝 주목하여 이른바 "공유지의 역설" 등이 설명됩니다만 결국 이런 컨셉이 더 널리 받아들여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대한 유익을 믿게 된다(p308)"고 합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급등합니다만 아무래도 화폐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만한 게 블록체인 기술의 발달입니다. 암호 관리는 비단 가상화폐 관련뿐이 아니고, 널리 지적 재산권을 보호할 때에도 필요합니다. 지적재산권이 해적질의 대상이 된다면 결국 아무도 머리를 써서 무형의 자산을 만들려 들지 않을 것이며 현재 뮤지션들이 그럭저럭 마음 놓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것도 각종 플랫폼이 아슬아슬하게 장벽을 쳐 주는 덕분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은 블록체인이나 양자암호 시스템이 두루 이런 지적재산권 관리 체계로 편입이 되어야 합니다.
책은 유진 오닐의 말로 마무리됩니다. "행복을 추구하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나 행복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추구되어야겠으며, 이 자격은 지구상의 다른 이웃과 공존과 공영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자가 축의 전환으로 규정하는 2030년에는 더 많은 공감과 유대, 형제애가 지구를 채우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