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
라종일 외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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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한 대통령(혹은 내각수반)들이 평범한 시민들으로 돌아간 후 행복하게 사는 정치, 또 그런 정치가 이뤄지는 나라가 정상입니다. 권력을 내려놓은 후 영어의 몸이 되거나, 목숨을 잃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 당사자뿐 아니라 그 과정을 지켜 보는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지금껏 한국의 대통령들은 모두 불행한 운명을 맞았는데, 당사자들에게만 불명예일 뿐 아니라 그런 역사를 예외 없이 이어가는 국민과 국가의 부끄러움으로 남습니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들도 반성해야겠지만 역사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 갔다는 자성과 회개는 국민의 몫이기도 합니다.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역사". 이것은 우리 자체의 평가일 뿐 아니라, 외국에서 <이코노미스트> 등 권위 있는 미디어가 내린 객관적 판정이기도 합니다(p19). 세계 최빈국에서 글로벌 10위권 무역 대국을 이뤄 냈고, 세계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운 대기업들을 보유했으며,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힘들여 정착시켜 가는 성과도 이뤘습니다. 간혹 민주주의라는 가치 자체를 회의, 부정하는 미친 사람이 보이기는 하나 사리 분별이 부족한 극히 예외일 뿐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행한 대통령의 행렬이 이어지는 현상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왜 이런 식으로 현대사가 채워져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들은 다양한 방향으로부터의 고민을 통해 해답에 가까운 걸 내놓습니다. 일단은 대권을 쥔 최고권력자의 "주변"에 건전치 못한 이들이 포진하기 쉽다는 게 문제입니다. "제왕"의 주변에 황태자, 가신 측근, 궁정 광대(pp.35~36) 들이 머무는 건 당연한데, 민주주의 하에서 대통령이 제왕을 닮아서(그래서는 안 되는 데도 불구하고) 저 비슷한 사람들이 꼬여든다는 건 확실히 문제입니다.

책에서는 아들 관리를 잘못한 김영삼, 김대중, (아들은 아니지만 친인척이 문제였던) 나폴레옹 1세 등의 예를 듭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는 친형의 문제를 거론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관 중 한 분으로 책에 등장하는 분이 전남 보성 출신 박주선씨인데 정말 훌륭한 분이죠. 대한민국 엘리트 중의 엘리트입니다. 이런 뛰어난 인물들을 기용하고 실력을 발휘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용렬한 자는 리더가 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 밑에 쓰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질들입니다.

p45에는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 다음해인 2001년 북한에서 어떤 소설이 출판되어, "김대중 대통령이 불측한 동기를 갖고 방북했으나 김정일의 위엄에 눌려 굴복하고 돌아갔다"는 내용을 담았다는 정보가 나옵니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의 신체적 취약점까지 들먹입니다. 우리가 당시 그 전 과정을 보다시피했는데도 북은 이처럼 한심한 곡해와 유치한 선전을 일삼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아무리 선의로 접근해도 과연 올바른 성과가 나올지 정말로 의심이 되는 대목이죠.

p63에서 "불행한 가정은 다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유명한 구절이 인용되는데 다들 알다시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이죠. 라종일 석좌교수의 박학다식과 인문적 품격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김영삼은 취임하자마자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북으로 돌려보내는데 이런 관대한 화해의 제스처가 북에서는 국내 선전의 목적으로 철저히 악용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남으로 귀환 후 그 제일성이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여기(평양)까지 왔는데, 당신이 답방을 하지 않으면 되겠소!"라고 일갈을 담은 연설을 했었습니다. 이 당시 이한동 씨 등이 측근에서 경외감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런데도 김정일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일국의 지도자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그의 임기 말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했고, 이에 놀란 일본이 강경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게 저쪽의 태도였습니다(국교 회복 후에는 서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하는 게 암묵적인 합의였다는 뜻). 그런데 이 책에는 이 대통령이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각별한 위로의 뜻을 표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뒤통수라도 치듯 일본이 독도 문제를 거론했다고 나옵니다(p93). 그러니 일본의 도발이 (구간을 근거리에서 잡아도) 시간적으로 먼저이며, 이처럼 일본은 전후 사실 관계를 유리할 대로 잘라 왜곡하는 데 아주 이골이 난 나라입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핵실험 직후 시 주석에게 전화를 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한국 정부의 싸드 배치는 이에 상응한 조치인 셈인데, 중국은 배신이라도 당했다는 양 격노하며 한한령을 내리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상회복을 않고 있습니다. 이 역시 가소롭고 유치한 작태입니다. 책에서 이 문제를 상술하는 이유는, 4대 강국에 둘러싸인 한국이 번영과 생존을 이어갈 관건이 외교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외교에서는 초당적 대처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p124 이후에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보다 자세한 회고와 리뷰가 나옵니다. 미국의 주요 신문은 물론, 독일의 쥐트도이체차이퉁이라든가, 인민일보에서도 그의 묵직한 생애를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그의 생 내내 응원을 보내 준 이들 서방 언론(인민일보 제외)에 대해 감사를 표했고, 이에 대해 "그가 국내 언론보다는 해외 미디어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필진 중 한 분인 이구 교수는 말합니다. "김대중 죽이기"라는 용어는 1990년대 중반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고안한 용어인데, 야권의 유력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이 "죽이기"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이어지지 않았느냐는 게 적어도 김대중 대통령 본인의 인식이었다고 필자는 진단하는 듯합니다.

요즘은 기사가 아니라 팩트체크(체킹)이라는 형식의 아티클이 자주 눈에 띕니다. 이런 주장 저런 기사가 난무하는 중, 어떤 게 과연 주장일 뿐이며 어떤 게 명백한 허위인지, 혹은 사실인지는 분명한 확인이 필요하며, 사실이 아닌 것에 기반하여 이뤄지는 어떤 공방도 그저 소모적, 비생산적인 다툼일 뿐입니다. 팩트체크는 민주사회의 건설적 토의, 토론을 위한 필수 조건인데, 다만 요즘 나오는 자칭 팩트체크는 그 자체가 일방적 주장이거나 상대 진영에 대한 저급하고 교활한 비방인 경우가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차라리 그냥 주장이라고 했으면 그토록 보기 싫지는 않았을 텐데요. 이 대목 필자(역시 같은 이구 교수)는 특히 언론인들에 보내는 제언을 통해, 보다 엄격한 자기 성찰이 요구된다고 합니다. 백 번 맞는 말씀이죠.

오래 전에 함성득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이라는 저서에서 대통령의 실패 원인 다섯 개를 제시했다고 필자 허태회 박사는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당시 저도 그 저서를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 지금 읽는 이 책이 훨씬 발전된 방법론으로 무장하여 시대 정신을 더 절실히 반영한 듯하여 독자로서 기분이 뿌듯합니다. 이 부분 필자는 "행위자 vs 구조"의 프레임으로 접근하여, 왜 한국의 (전임)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운명을 맞는지 보다 체계적으로 접근합니다. 제왕적 대통령 곁에는 항상 실세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었는데, 노태우 시절에는 박 아무개, 김영삼 시절에는 김 아무개 등이 국정을 농단하다 결국 좋지 못한 끝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들 이름은 사실 우리가 다 아는 사항인데 책에서는 구태여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네요.

p159에는 정치학자 오도넬이 말한 "위임 민주주의의 위기"가 나옵니다. 책의 후주에는 허태회 장우영 공저 논문 <촛불시위와 한국정치>가 출전으로 언급되기만 하는데 여기서 오도넬은 아르헨티나 태생이며 2011년에 타계한 Guillermo O'Donnell 전 캠브리지大 교수를 가리킵니다. 아무래도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포맷으로 실현되기가 힘들고 국민이 뽑은 대표자의 손을 거쳐야 하는데, 의원과 달리 국민 전체가 참여하다시피하여 선출된 선거의 대표자는 그만큼 권력의 정당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오용되면 제왕적 대통령으로 타락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거죠.

현대 한국사에서는 여러 차례,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세력 사이의 연합이 있었습니다. 1990년의 3당 합당이라든가, 1997년의 소위 DJP연합 같은 게 그것입니다. 1990년 당시 김대중, 이기택, 노무현 등은 자신들이 소외된 저 정치적 동맹을 가리켜 "야합"이라고 맹비판했으며, 반대로 1997년의 DJP 연합에 대해서는 이회창씨가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비난한 적 있는데 이들의 이런 성명, 혹은 회고 모두가 이 책 중에 언급이 되어 흥미롭습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그 시대의 정치적 이벤트는 그 당시 국민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할 뿐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 드립니다.(p214)"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중 일부 구절인데, 이것이 최근에 나온 게 아니라 (책 후주에 의하면) 2012년의 연합뉴스 기사 인용이라서 참 묘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이처럼 강도 높은 워딩의 사과는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민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 필자들은 "결국은 평상시 소통이 부족하여 초래된 문제"로 성격을 정리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에게 결여된 건 바로 소통이며, 반대로 제왕적 대통령이 태생적으로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초심을 잃고 소통을 게을리하면 결국 끝이 나쁜 제왕적 대통령의 운명을 맞게 되는 거죠.

새 대통령이 취임만 하면 기존의 행정조직을 뜯어고치는데 문제는 이것이 정책적 적실성에 기인한 게 아니라 새로운 권력의 편의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입니다(p244 등). 과거 김영삼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서 정작 "재정경제부"라는 공룡을 탄생시켜 결국 외환위기의 한 원인을 만든 적도 있습니다. 현 정부는 의외로 몇 부처의 명칭 변경 외에는 출범 초기 크게 정부조직법을 손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공수처 설치 문제로 노이즈가 이는 중입니다. 공수처는 준사법기관이므로 이 책에서 거론하는 전 정부들의 행정조직 개편(남용)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슈입니다.

"국정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재 등용에 코드를 중시하지 않아야 합니다(p250)." 사실 못난 사람일수록 자기 밑에 똑똑한 사람을 두지 못하며, 역량이 부족한 자가 권력자의 측근에서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걸 우리는 이미 이기붕, 김 아무개 등등 숱한 예를 통해 봐 왔습니다. 대통령을 비롯 모든 선출직 대표들은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하며, 적재적소에 훌륭한 인재를 배치하여 능력을 발휘하게 해야 하고, 아울러 국민과 격의 없는 소통을 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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