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시장의 조건 - 동양의 애덤 스미스 이시다 바이간에게 배우다
모리타 켄지 지음, 한원 옮김, 이용택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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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정의로운 시장일까요? 그 전에, 시장이란 게 정의로워질 수는 있을까요? 경제학의 개조 애덤 스미스는 일찍이 "사람들의 자비심이나 정의감에 호소하기보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이기심에 기대는 게 효율성 면에서 훨씬 바람직한 시장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후 수백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이 결국 지극히 타당하다는 게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효율적이기만 한 것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시장까지를 실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당연히 가집니다. 이런 바람을 가지는 걸 보면 그간 어지간히 효율적인 시장을 달성하기는 했나 봅니다. 여튼 우리는 정의로운 시장을 가질 자격이 있고, 또 그를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시다 바이간은 아직 덕천 막부의 교묘한 통치술이 열도를 잘 지배하던 17세기에 태어나 18세기에 활약한 인물입니다. 일본도 당시 우리처럼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가 사회를 통제하던 시절이지만, 우리보다는 경제적으로 훨씬 풍요했던 듯하며 이는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등 다양한 문헌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튼 이시다 바이간은 "성씨"를 지닌 집안에서 태어나고 훈육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빈농은 면한 환경"인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제가 보기엔 그 정도로 박한 평가에 그칠 게 아니라, 적어도 가업 같은 걸 논할 만한 풍족한 집안이었던 듯하며, 자식에게 어떤 생업의 기술(그것도 물리적인 기술이 아닌), 기법 같은 걸 전수할 정도면 상당히 재산을 모았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18세기 일본 같은 신분제 사회였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여튼 이시다 바이간은 마치 초년의 벤자민 프랭클린처럼(생몰 연도도 비슷하네요) 청년시기 여기저기 고용살이를 하며 사회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가 한 일도 다양한 점포의 지배인 비슷한 것이었는데 이 점에서도 프랭클린과 비슷합니다(물론 후자는 찢어질 듯 가난한 출신이었지만).

세상에는 기이하게도 죽고 나서야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이 꼭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불꽃 같은 생을 살았으나 생전에는 전혀 인정을 못 받다시피했죠. 이시다 바이간은 무난한, 지극히 무난한 생을 살았을 뿐이었으나, 대체로는 그처럼 상인이었던 제자들에 의해 그의 "사상"이 연구되었고, 나중에는 상인 계급을 넘어 무사들까지 그를 존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어쩌면 조선과 일본이 결정적으로 근대 이후에 갈라지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조선의 지배 계급은 지극히 편협한 성리학적 세계관을 갈수록 교조화했으나, 일본은 반대로 일개 상인의 "생각"이라는 것을 사회 개량과 진보를 위해 연구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석문심학은 결과적으로 우수한 노동자를 길러내는 사상이었다" 바로 뒤에는 "그렇다고, 노동자의 정신을 마비시켜 시스템에서 효율적으로 부려 먹는 도구를 길러내는 건 아니었다"고 뒷붙입니다. 역시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점에서도 프랭클린 사상과 비슷한 점을 발견합니다. 정치가 안정되면 활발한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고, 사람들은 가업 비슷한 테두리 안에서만 자아 실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자기 분야에서 더 뚜렷한 성취를 이루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에 보다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상에서 강조하는 노동자상은 "근면 검약 정직"입니다. 뭐 현대가 요구하는 직업인상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도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아무리 창의력을 강조하더라도, 게으르고 허황한 거짓말을 일삼는 이가 대우 받을 리야 없지 않겠습니까.

저자는 책 내내 석문심학, 즉 이시다 바이간의 사상과 애덤 스미스의 사상 체계에서 유사한 점을 발견합니다. p73에서는 스미스의 명저 <도덕감정론>의 일부가 인용됩니다. 그 책은 대체로 종교를 거르고 이성과 논리의 영역에서 도덕을 정의하려는 의도에서 저술되었으므로, 오늘날 우리 독자가 지레 착각하듯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기"만을 강조한 책은 아닙니다. 공맹을 숭앙하는 유교 문화권에서는 어떤 일방적인 지령, 주문이 도덕의 전부인 양 착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서양 고전은 도덕의 배후를 캐며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 깊게 파고듭니다. 물론 칸트는 정언 명법이라는 것도 지적했으나, 그 방법론에 정언명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자체가, 이유 불문하고 뭘 무조건 해야 한다는 맹목적 사고를 지양하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이기심을 억제하고 박애를 발휘하는 것이 인간 본성의 완성이다." 이기심이 시장 작동의 근원임을 강조한 <국부론>의 핵심 테마를 생각하면, 이것이 과연 같은 저자에게서 나온 말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지만 애초에 스미스가 "이기심 예찬, 만능론자"는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말입니다. 그 전에, "이기심이면 다 된다"를 외치는  사람이라면 제 정신이 아니라고 봐야겠죠. 책에는 더 의미심장한 말도 나옵니다. "시장참여자라면 일단 도덕적이라야 한다." 오히려 이기심에 의해 작동되는 시장이므로, 참여자가 비도덕적이라면 바로 그 시장과 체제는 파탄이 나기 마련입니다.

이시다 바이간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공맹의 법리를 인용합니다. 아니 인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당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공맹의 사상, 심지어 그에 주석을 단 주희의 말마저도 "모두 천리에 공명하는 것"이라며 도그마화합니다. 이 대목에서 실망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사람은 그가 산 시대의 한계를 절대 벗어날 수 없고, 오히려 시대의 요구에 적응하여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설파한 바이간의 지혜에 감탄하는 게 맞습니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고 설파하려는 자는 대체로 그 의도부터가 순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최근에 어느 공직 후보자의 모난 언동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미국 같은 나라에서 저런 사람이 고위직이 되려고 나섰다는 자체가 예삿일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고 할지.

예전에 고 정운영 교수 같은 분은 "소비가 미덕이라는 얼빠진 말을 하는 자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의 어떤 정치인을 겨냥하여)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경기도 점점 좋아집니다" 같은 발언을 맹비판합니다. 소비이건 뭐건 공동체 구성원이 인정한 범위 안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의도이며, 또 그가 인용하는 이시다 바이간의 사상 핵심이라는 겁니다. 사실 이 말, 즉 소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디플레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한 정책적 독려이며 특정 시대 일본 특정 정치인만이 아니라 누구든 해 온 말이지만, 여튼 저자는 비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정치인은 우리 한국인도 잘 아는 누구이지 싶습니다.

일본인들은 불교 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사회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우리도 그랬으나 조선의 성립 이후에는 불교가 천시되었고, 그의 건설적인 유산은 정신적으로 거의 배제되다시피했습니다. 물론 이에는 불교가 고려 시대 내내 관제화, 형식화, 부패한 자체 잘못이 크게 작용했지만, 이는 일본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귀한 것은 천한 것을 죽여도 좋다" 같은 바이간의 말은 일견 충격적이지만, 동아시아 당대 풍조를 생각하면 상식선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도였을 겁니다. 어떤 선비라면 이를 "파사현정" 정도의 맥락으로 해석했겠지요.

조선도 수시로 찾아오는 자연 재해에 큰 타격을 받았지만 18세기의 교도 역시 사회적 재난에 신음하는 이가 많았나 봅니다. 바이간 역시 자원 봉사 활동에 나서 많은 이들을 구제하였으며, 바로 이런 점에서 그가 입으로 떠드는 위선자에 그치지 않고, 아는 바를 실천에 옮기는 지성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내것으로 받아들여라." "소비에 매몰되어 본분을 잊지 말라.""환경을 탓하기 전에 나의 문제를 돌아보라." 어느 시대에나 두루 적용될 만한 금언이요 행동 철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사상가를 배출할 만한 역량이 갖추어졌기에 에도 중후반기가 그토록 번성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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