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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 유물과 유적으로 매 순간 다시 쓰는 다이나믹 한국 고대사 ㅣ 서가명강 시리즈 12
권오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역사는 유물과 유적에 의해 구체적인 내용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막연히 그러려니 하는 상상과 억측에 의해 지탱되는 분야가 아니겠습니다. 저자 권오영 교수는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등에 출연하여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분이라고 하며, 천안 청당동 유적, 순천 대곡리 유적을 발굴한 당사자라고 책날개의 설명에 나옵니다. 저자의 이런 이력이, 우리 독자들로 하여금 "유물, 유적에 의해 밝혀지는 역사의 진실, 그리고 반전"에 대해 공감을 보내게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같습니다.
행주산성이라 하면 임진란 당시 권율 장군이 주도한 대첩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이 성의 축조 사실 자체는 무려 7세기 삼국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자의 말씀이 재미있습니다. "통설은 계속 무너지고 있다(p22)." 어느 학문 분야이건 한 시점의 압도적 통설이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는 일은 드뭅니다. 그러나 특히 국민들이 중등 교육 과정에서 배워 알아 오던 사항 중 통설들이 바뀌는 것은, 혹은 심지어 "계속 무너지는" 건, 적잖이 충격적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역사, 특히 한국사의 "반전"도 대개 이를 가리키는 취지겠습니다. 물론 진실을 향한 반전은 설령 충격적일망정 결국은 누구에게나 유쾌한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중국에서는 목간이 계속 출토되어, 서력 기원 즈음이나 그 이전의 사실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목간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하며, 종이로 쓰인 문헌이래봐야 7세기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게 드물다고 합니다. 전란과 외침을 많이 겪은 한국사라서 그러려니 이해하지만, 뭔가 크게 아쉽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p25에서 "조금 힘들더라도 쏟아지는 고고학적 물질자료에 눈을 돌려 보석을 캐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말합니다. 책을 계속 읽어 보기 전까지는, 고고학적 물질자료마저 "쏟아지듯" 풍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짐작했으나, 다음 페이지에서 저자가 말씀하시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독자인 제게는 일종의 반전으로 다가왔을 만큼.
"쏟아지듯"의 이유는 국토 곳곳에서 이뤄지는 건설, 토목 공사의 왕성한 진행 상황에 있다고 합니다(p26). 발굴조사의 건수는 매년 1500~1800건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상고사의 문헌 자료는 빈약하게 남았으나, 워낙 이 반도에 조상들이 터잡고 산 역사가 길다 보니 이런 종류의 유물은 풍성하게 나오는 거겠죠.
유물 유적 발굴 연구의 최대 적은 바로 도굴꾼입니다. 책에서도 여러 번 이 기막힌 도굴꾼들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p32의 창원 다호리 유적이라든가, p;106의 함안 밀산리 유적 등이 그것입니다. 함안 아라가야의 유물을 훔쳐 간 자들은 버젓이 붉은 페인트로 현장에 "196X년 부산 삼부자 다녀감"이라 적어 놓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한국처럼 단일 민족 공동체의 자부심이 강한 나라가 또 없고, 학교 교육 과정에서 민족적 윤리관을 강조하는 사례가 없는데 이런 사람들이 여튼 나오는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유물을 혹 사후에 회수하더라도 한번 도굴꾼의 손을 타면 그 가치가 C급으로 전락한다는 말씀도 있네요.
예전 국사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다가 근래 중요성이 높아진 게 "환호"입니다.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둘러싼 호수란 뜻이겠는데, 방형을 한 내부의 환호를 하나 더 짓는 양식은 종전까지 일본의 요시노가리 유적에서나 볼 수 있는 그들 고유의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으나, 최근 춘천 중도 유적 발굴(p145)로 그런 통념이 깨어졌습니다. 여기서도 문헌 위주의 연구가 아니라 유적 발굴에 의해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고 이의 타당성을 심화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튼 여기서 저자는 취락의 발전과 계급의 탄생이라는 명제를 다시 끌어냅니다.
한국에서는 도처에서 볼 수 있는 게 산성이고 그 시대도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올라가지만 (위에서 행주산성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이런 게 발견 안 된다고들 했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기술적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건 대륙으로부터 최신의 기술을 익힌 백제의 인력이 가세해야 했다는 거죠.
백제는 오래 전부터 현재의 서울 지역에 본거지를 둔 국가였습니다. 책에서도 여러 번 강조되지만 풍납토성 유적의 경우 현재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의 반발 때문에 본격 연구와 발굴이 여러 난관에 봉착하는데, 역으로 고대 유적 하면 무조건 지방에 소재한 걸 떠올리는 현대인들에게, 서울의 꽤 발달한 주거지에 이런 유적이 있다는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기도 합니다. 고대부터 한강 유역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삼국 간에 각축이 벌어졌고, 이를 선점했던 백제가 뛰어난 문명을 누린 선진 권역이었겠음은 자연스럽게 추측이 가능합니다. 남쪽의 풍요한 산출과 노동력을 노린 고구려가 이후 남진해 왔고, 백제가 공주, 부여 등으로 도읍을 옮긴 건 오히려 국력 쇠퇴의 추세와 궤를 같이합니다. 본디 백제는 북방에서 남하한 이들이 주도 세력이었으니 말입니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좁은 한반도에 애써 우리의 역사공간을 한정할 게 아니라 멀리 터키, 중앙아, 심지어 동남아로 시선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중은 오히려 역사 지평의 확대에 환호하지만, 사실 요즘 지적으로 크게 각성한 일반인들은 더 많은 과학적 근거와 연구 성과에 목말라합니다. 학자들이 충실한 연구 성과를 더 많이 내어놓을 때, 이미 준비된 마음가짐을 한 대중은 보다 편한 마음으로 이를 수용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