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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업가 김대중 3 - 길이 아니어도 좋다
스튜디오 질풍 지음 / 그린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그나마 안경잡이 과장은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 여직원의 서랍 안에서 복표가 발견되자 바로 가책을 느끼며 부장과 상의하려 들지만, 부장 이놈이 인간이 아닙니다.
"어차피 조선인 하나 나간다고 문제 될 것 없어."
"이건 처음부터 잘못된 겁니다!"
아무튼 과장은 생각보다 강한 태도로 제 잘못을 바로잡고, 주인공뿐 아니라 "그의 책상"도 함께 사무실로 다시 들입니다.
이 대목에서 주인공은 드디어 미인 차용애씨와 장래를 약속합니다. 선남선녀가 연을 맺는 장면은 언제나, 누가 봐도 흐뭇합니다. 한편 강남진도 친구에 질세라 홍숙희라는 여인을 데리고 오는데, 초면인 주인공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고 "그짝 야그는 이짝에게 많이 들었소."라며 걸쭉한 서남 방언으로 말을 건네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매력적입니다. 이 시절에도 이처럼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여성이 있었겠죠. 후편에서 이 캐릭터가 맹활약하는 에피소드들이 나올까요? 왠지 기대가 되면서도 살짝 걱정이 앞섭니다.
주인공은 말을 더듬으며 대답합니다. "반갑습니다. 김대중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 장면에서도 가네보 공장의 혹독한 착취상이 다시 언급됩니다. 이야기가 우습고 재미있어서 서사 자체에 빠져들다가도 독자로 하여금 곧 긴장의 고삐를 잡게 하는 이런 점이 뛰어납니다.
성격이 괄괄한 홍숙희는 예비 신랑을 다그치며 당장 공장을 관두라고 합니다. 알고 보면 생각이 깊고 나이 어린 남편을 배려하는 마음이 사실 지극한 점이 이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강남진은 올 때마다 빈대떡만 시키는데, 아주머니는 정겹게 나무라며 물리지도 않냐고 말합니다.
양동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명물이죠. 작품에서는 세피아 톤으로 이 시대 풍경을 잘 살려 표현하여 나이 든 독자에게나 젊은 층에게나레트로 정서를 어필하도록 세심한 배려를 베풉니다.

이제 상황은 바뀌고 일본인들이 물러간 후 대앙조선공업의 간부들이 찾아와 청년 주인공(위원장)에게 대표직 취임을 부탁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조선인들이므로 대화 중에 다 사투리를 씁니다. 여기서 큰 포부를 다지게 된 주인공은 다시 회사를 나오고 자신이 창업하여 "목포해운공사"를 차립니다. 월급도 많이 주는데 구태여 왜 힘든 창업을 하냐는 질문에, 주인공은 "답이 앞에 있지 않냐"고 대꾸합니다.
창업하면 고생길이 훤하죠. 맞습니다. 그래도 큰 뜻을 품은 사람은 자기 사업을 해야 합니다. 또 주인공과 같은 사람은 어딜 가도 보스 노릇을 해야지 남 밑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또 일은 야무지게 해서 어느 보스 밑에서도 인정을 받고 출세를 하는 타입이지만 말입니다.
주인공의 대사 중에서 "가당치도 않아라~"에서 "않어라"라고 했으면 더 서남 방언 다웠을 뻔했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대양조선공업 전무의 대사가 참 우스운데 "김대중 위원장님 참 거시기하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가 그것입니다. 주인공도 이 말에 당황했는지 "거시기.요?"로 말을 받습니다.
대표로 취임한 주인공의 표정은 야심만만하면서도 샤프합니다. 멋지게 태평양으로 갈 일만 남았다는 현장 감독의 설명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인공은 부탁합니다.
"저 배는 제 꿈이자 희망입니다."
어떤 정치인, 인물의 전기라고 구태여 생각할 필요 없이, 스토리가 치밀하게 짜여진 한 편의 재미있는 만화로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특별한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이는 당연 독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