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업가 김대중 1 - 섬마을 소년
스튜디오 질풍 지음 / 그린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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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위대한 사람의 발자취를 뜨겁게 더듬는 작업은 역시 그 어린 시절부터가 되어야 할 듯합니다. 운동 신경이 뛰어난 스포츠맨(여성 포함)들도 그렇고, 요즘 저는 왜 뛰어난 사람들이 이렇게 벽지, 섬 지역에서 많이들 출생할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 있습니다. 농담으로 하는 말 중에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 같은 게 있듯, 맑고 웅대한 자연과 접하며 성장해야 한 인물의 가슴 안에 어떤 웅지 같은 게 배양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년 김대중은 우리가 다들 잘 알듯 전남 신안 하의도 태생입니다. 이 1권에서는 아주 어린 시절은 생략하고, 1930년대 일제가 편 민족 말살 정책에 따라 "조선어"를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심지어 말하지도 못하게 하는 조치를 편 시점부터 그 시작을 잡습니다. 항구에 큰 배가 들어올 때 다른 아이들은 그저 그 사이즈에 감탄하지만, 소년은 "저처럼 큰 배에,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아닌, 모두가 잘 살게끔 물자와 인력을 싣고 교류하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생각을 합니다. 같은 물을 마셔도 독사가 마시면 독액이 되며,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는 이치와 비슷합니다.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 저희 아버지도 아주 가끔, 자주는 아니고 가끔 우산을 들고 학교까지 찾아와 주시곤 했는데, 이 만화에서도 그 가부장적인 풍조가 지배하던 시절 소년의 부친께서 찾아와 아들의 손을 잡고 귀가하려 합니다. 이때, 소년의 친구 중 하나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학교에서는 조선말 쓰면 안되는데요."

북한에서도 어려서부터 주제사상, 유일체제의 우월성을 열심히 가르치기에 어린이들이 멋도 모르고 독재자를 찬양하는 게 몸에 배어 있을 겁니다. 1930년대에는 이처럼 민족 말살 정책이 치를 떨 만큼 집요하게 이뤄졌기에, 저 철없는 어린이가 동급생의 부친에게 이치에 닿지 않는 저런 말을 하는 겁니다. 뭐 아저씨가 혹 훈도에게 제재나 받지 않을까 염려되어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여튼 어린이한테 이런 몹쓸 일을 시키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는 느낌입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혹 생각이 난다면 얼마나 수치심과 죄책감이 크게 떠오르겠습니까. 물론 그런 걸 모르는 한심한 성인, 자기 자신의 잘못을 전혀 성찰 못하는 인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우리 커서 큰사람이 되불자."
사실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런 야망, 야무진 뜻 같은 걸 품지 못합니다. 그저 들판을 뛰놀고 흘러내린 코를 들이마시며 친구들과 웃고 떠들 뿐이죠. 하지만 먼 훗날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큰 인물은 어려서부터 그 태도가 남다르죠. 이런 큰 인물은 철없는 친구들에게조차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래서 저 말을, 그 뜻도 모르면서 친구들이 같이 되뇌는 겁니다. "되"는 "돼"로 썼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 서남 방언의 "되불자"는 "되어 버리자" 정도의 뜻인데, 그렇다면 연결 어미 "~어"가 생략된 꼴이기 때문입니다. 서남방언에서 "왜"와 "외"는 대체로 구별이 되는 편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예전에는 고교생 정도면 골격이 다 자라 거의 성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학부생이라고 해도 아직 어린 인상이죠. 아무튼 상급 학교(당시 명문이었던 공립 목상)에 진학한 그는, 또래 일본인 학생들과 충돌을 빚습니다. 물론 원인 제공은 일인들이 먼저 한 것인데, 조선 여학생을 희롱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년은 일인들을 혼 내 주는데, 이 때문에 저쪽에서도 힘 좀 쓴다는 놈이 찾아와 대결을 요청합니다. 이름은 타케다라고 나오는데, 행실이 불량해서인지 상의를 거의 탈의한 상태입니다. 이런 양아치들이 특정 동네에 가면 요즘도 자주 보이죠. ㅋ

이때 저 타케다라는 덩치의 대사가 걸작인데,
"나라를 빼앗기고, 여자들마저 빼앗길 것 같은 위기의식에서 나온 질투가 원인인 건가?"
입니다. 물론 말도 안되는 헛소린데, 그래도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 양아치 입에서 나온 것치고는 제법 말의 구조를 갖춘 꼴이니 말입니다.

소년은 일단 "선빵"을 맞는데, 반격을 하다 그의 "소중이(이 책에 나오는 표현입니다)"를 걷어차고, 이를 보며 격분한 왜놈 학생들이 금기를 깼다며 떼로 그를 공격합니다. 콧수염을 키운 히라이시 준위라는 자가 폭력 사태를 저지하고, 소년은 학교에서 심한 체벌을 받습니다. 잘못은 왜인 학생들이 먼저 저질렀는데도 말입니다.

"나라 잃은 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소년은 절규합니다.

여러 곡절을 거쳐, 저 타케다와 주인공은 이제 제법 친한 사이가 되며, 지금도 그렇지만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각별한 존경심을 갖는 경향이 있는 일본인들은, 제법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주인공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이때부터도 "선생님"이란 호칭을 얻게 되네요.

일 잘하는 주인공은 그 젊은 나이에 조선은행 목포지점 지점장으로부터 직접 전화까지 받습니다. 여기 나오는 일인들은, 지점장부터 그 준위, 또 타케다까지 거진 모두 코 밑에 수염을 기르는 게 독특합니다. 여튼 지점장과의 회식 자리에서 주인공은 "일본이 밀리고 있다"는 전황(2차대전) 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다시 한 번 지점장과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지점장은 비록 일본인이었지만 사태를 정확히 직시했던 현인이었던 거죠. 하긴 그런 안목이 있으니 사람도 알아 본 것이고 말입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나. 맞는 말을 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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