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두 번
김멜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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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입니다. 모두 일곱 편이 수록되었는데 일곱 편 모두가 다, 젠더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한 소설들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런 소재, 내러티브가 불편한 분들은 뒤에서부터 읽어도 좋겠으며, 뒤에서부터 읽은 멋진 작품들이 마음에 들면 그때 앞의 문제작(?)들을 읽기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홍이>는 좀 무서운, 읽기에 따라서 호러처럼도 받아들여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중경은 형사인데, 어느 독거노인(할머니)의 죽음을 사건으로 처리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난생 처음 맡게 된 "시체 썩는 냄새"에 기겁합니다. 여기서 그는 할머니 말고 어떤 "개"와 만나게 되고, 아주 어렸을 적 시골 마을에서 만난 닭, 개, 그리고 훨씬 전 죽은 어떤 이름 모를 원혼에 공히 붙여진 이름 "홍이"를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중경과 그 삼촌은 여러 "홍이"들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을 공유하는데, 무슨 생각인지 우연히 만난 어느 여성과의 사이에 낳은 자신의 아이에게 "홍이"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그리고 그 아이(중경의 조카)는 커서...

<스프링클러>는 "불"에 대해 공포심을 가진 어머니, 그 어머니를 몹시도 미워하는 아버지와 형(세준), 어머니에 묘한 동료의식을 가지는 주인공 세방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 역시 "젠더"가 전면에 드러나는 이슈는 아닌데, 평론가 김건형은 권말의 해설(p264)에서 세방의 모친이 겪은 "비숙련 여성 노동자들의 기숙사에서 발생한 화재"를 환기하며, "감정의 젠더적 패턴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만 어째 좀 억지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뭘로 해석하건 읽는 독자의 자유이며, 정답이 있는 건 아니겠으니 각자 편안히 읽으면 좋을 듯하네요.

<에콜>는 어느 공시생의 이야기인데, "공무원"이나 "고시"라는 말은 한 번도 안 나오고 그 자리를 "리본"이라는 말이 대신 채웁니다("완장"이 아니라는 뜻이겠죠). 주인공은 고시나 공시에 합격해서 멋진 인생, 남들 앞에 군림하는 뽀대나는 인생을 누리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저 남을 돕고 기계적으로 성실한 일만 처리하는 "로봇"이 되는 게 그의 꿈입니다. ㅎㅎ 책소개글에서 이 부분을 잘못 읽어서 저는 이 작품이 SF 비슷한 건 줄 착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 역시 "에콜"이라는 단어를 "앵콜"로 처음에 잘못 읽었는데, 작품에는 정말로 간판의 탈자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왠지 엥콜보다 에콜이 더 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 그분은 풍속업을 영위하는데, 매번 시험에 떨어지는 주인공이 목소리만으로 해석하는 "그녀(들)의 전혀 다른 세계"가 볼만합니다.

<적어도 두 번>은 말이 안 통할 것 같은 교수 "유파고"에게 계속 말을 걸며 소통을 시도하는 어느 목소리가 들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지위"와 "X위"를 의도적으로 혼동하며, 특정 부위를 "그리스식으로" 바꿔 부르며 허위의 벽을 허물려는 집요한 말걸기가 인상적입니다. 말이 안 통하는 관계는 결국 두 맹인의 상호 응시나 마찬가지겠는데, 읽으면서 본문 안으로 유파고 씨를 좀 불러들여 말을 시키고 싶은 건 독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르몬을 춰줘요>는 어느 인터섹스 청소년의 이야기인데 읽으면서 징글징글해지는 대목도 많았지만 생각을 많이 하게 돕는 묘한 푸념, 호소, 당당한 표백이 좀 놀라웠습니다. <어린 왕자>가 좋은 이유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몰라서"라는데,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을 처음 해 볼 듯합니다. 마틴 가드너의 수학 대중서를 보면 "이 그림이 할머니로 보이는지 아니면..." 같은 게 있는데 모든 게 다 보는 사람 마음에 달려 있으며, <어린 왕자> 본문 중에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모자로 보이는 게 보통이라는 말이 나오죠.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이른바 "탈코 패션"을 한 여자처럼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어린왕자를 왕자라 부르는 건 남자라서가 아니라 자기의 왕국을 갖고 있어서이다(p21)"라는데, 글쎄요 소설의 맥락을 떠나 말 자체로만 놓고 보면, princess regnant도 역사상 엄연히 있었으므로 뭐 이게 맞는 말은 아니겠습니다.

"현대 음율 속에서
순간 속에 우리는
너의 새로운 춤에
마음을 뺏긴다오"

이 가사가 본문 중에 두 번 나오는데, 저 노래와 가수가 젠더 코드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저도 성장기에 저 노래를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태원의 어느 클럽에서 묘한 복장을 하고 묘한 춤을 추며 저 노래를 부르는 묘한 성별을 가진 분(작중에 묘사된)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비로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저 부분 가사가 "현대 음율 속에서"인지도 이 소설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그렇게 어려운!). TVN의 <놀라운 토요일>도 아니고....

사실 제가 놀란 건, 저 노래 가사 중에 특정 부분이 "리듬 쳐줘요"가 아니라, "리듬 춰줘요"였다는 점입니다. 이건 인터넷 검색을 해 보고 알았는데, 리듬은 "치는" 거지, "추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엄밀히 말하면 전자도 틀린 겁니다만). 하, 그런데 "춰줘요"였다니, "그 가수분(소설 속에 잠시 나오는 분 말고 유명한 그 연예인)"은 리듬을 추시는 분이었다는 건가... 여튼 그래서, 이 단편(읽고 나서 상당히 머리가 아파집니다만)은 제목이 "호르몬을 춰줘요"입니다. 하긴, 어떻게 해도 호르몬을 "칠" 수는 없죠.(그럼, 출 수는 있고?)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의 (개인적) 부작용 중 하나는, 앞으로 김XX님의 그 노래를 들을 때(자주는 아니겠지만)마다 IS가 생각날 것 같다는!

"그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는 <털 없는 원숭이>는 데스먼드 모리스의 고전인데, 그 책에는 젠더 이슈에 대한 설명은 여튼 없습니다. "교미"가 짧은 토픽으로 나오기는 하는데... 뭐 어쨌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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