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20년 6월
평점 :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혹 우리가 그럭저럭 착한 삶을 살았다면, 우리를 맞을 지 모르는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악한 생이 마주하게 될 지옥은 둘째치고라도, 천국 역시 전혀 우리가 알 수 없는 운명이란 점에서 두렵고 낯선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도 사미르의 입을 통해 언급이 되지만. 신약성경에도 "어린이의 목소리, 어른의 목소리..."처럼 그 영혼의 성장 단계에 따라 어떤 구분 같은 게 있나 봅니다. 또, 이 생에서 맺은 부모, 배우자, 자녀, 친구 같은 인연은 (역시 기독교의 성경 중에도 설명이 있지만) 거의 흔적도 없이 소멸한다고도 하죠. 그렇다면 현생에서 소중히 가꾼 관계, 사랑, 정 등은 다 무의미하단 뜻인지. 이런 데 생각이 미치면 유한한 생에 대해 한없이 슬퍼지는 감정이 드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여튼 어느 종교나 도덕적 가르침에서도 "현 생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우리들에게 당부하는 건 공통적이죠. 우리는 주어진 삶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며, 눈 앞의 과제에 최선을 다하되 타인의 감정과 이익도 살펴야 합니다.
주인공 애니는 이 작품 중에서도 설명이 되지만 나이아가라 캐나다 쪽 지역에서 실제 있었던 어느 용감한 여인의 이름을 따 그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죠. 작품 처음엔 그녀의 인생 가장 극적인 순간만을 먼저 보여줘서 몰랐는데, 알고 보니 굴곡과 시련이 많은 생을 산 (아직은 젊은) 여인이었습니다. 저는 1980년대 어느 고아의 삶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실제로 고아라고 해도 좋을 듯한, 남자 때문이건 혹은 그 부친 때문이건 여러 시련을 겪은 불쌍한 여인이더군요.
애니는 어렸을 때 어느 나이 든 엔지니어의 자기 희생 덕분에 카트 추락 사고에서 목숨을 건지지만 대신 한 손을 잃습니다. 이때 그 어머니는 애니를 무서운 기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이사까지 떠나는데,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더 있었습니다. 책임감, 죄의식이란 이처럼 영혼을 더 높은 단계로 성숙시키곤 한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지만 어떤 나쁜 일을 겪은 후에는 그 기억이 계속 환기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들게 됩니다.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까지도 자책하는데, 애니가 어렸을 때 그 부친이 자신과 어머니를 떠난 게 모두 스스로의 탓이라고 마음아파하는 장면이 또한 그렇습니다. 이런 애니는 아직은 어린 틴에이저 시절 한 청년을 만나게 되며, 그보다 좀 이른 시기에 파울로와 친해질 뻔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 역시 무책임한 남자 때문에 큰 시련을 겪은 어머니는 이런 관계를 걱정하며, 어머니의 진심을 이해 못한 애니는 도리어 모친과 멀어지죠. 그 과정에서 아이를 갖고 곧 그의 죽음을 마주하는 등 큰 시련을 겪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이어지는데도 소설 초반에 독자들은 전혀 감을 못 잡은 채 "웬 행복한 젊은 커플의 안타까운 사고"만 대뜸 접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더 가슴이 아파지는 사고였죠.
천국 초입에 잠시 들르게 된 애니는 어떤 노부인을 만나는데 낯이 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입니다. 알고보니 이 노부인은 친하게 지내던 개의 영혼이었고, 생의 순간에 어떤 식으로건 연을 맺은 모든 영혼들과 천국에서, 그것도 단 다섯 명 몫의 만남 안에 드는 식으로 마주친다는 발상이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애니의 인생은 왜 이렇게 불행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더 큰 비극을 면하기 위해 다른 이의 도움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받게 되고, 이 역시 운명, 혹은 신의 섭리 같은 것이 섬세히 예비해 둔 계획, 배려라는 설명이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늙은 관리자 에디 역시, 젊은 시절 참전했던 태평양 전쟁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앗긴 어느 일본 소녀에 대한 죄책감을 그런 식으로 풀었다는 진실 역시 마음이 찡해지더군요.
"남을 위한 일들은 절대 헛되지 않아(p114)."
"자녀가 필요로 하면, 그 부모의 욕구는 절로 사라지지(p133)."
우리 인생은 다 자신의 노력에 의해 성과가 나는 듯해도, 알고 보면 타인의 배려와 희생에 기대는 바가 큽니다. 또,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의 은혜란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슬프면서도 마음이 벅차 오르는, 동화 같은 감동에 젖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