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조노믹스 - 미래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아마존 혁신 경영의 비밀
브라이언 두메인 지음, 안세민 옮김, 김용준 감수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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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닷컴은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했으나 이제는 (사이버) 매장 안에서 다루지 않는 것이 없는 일종의 백화점으로 만인의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20여년 전 탄생시에도 화제가 되었지만, 당시 비슷한 포지션이었던 반스앤노블(물론 훨씬 오랜 역사의, 오프라인 유통망을 지닌 굴지의 도서 유통업체였지만)은 지금도 그저 온라인서점일 뿐이고, 1990년대 리테일 최강자였던 월마트 등은 입지가 현저히 위축되었습니다. 당시에도 잘나갔지만 지금은 아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마존닷컴의 성공 비결은 분명 심층 분석의 가치가 있습니다. 아울러 전도 유망한 벤처기업인 레벨에서 이제 세계 굴지의 기업가가 된, 오너 베조스의 천재성과 경영 철학 역시 궁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p46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베조스가 온라인 소매 산업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빠르게 확대해 나가며 전통 소매업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지만, 이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도 우리는 "책 팔다가 백화점 된 곳" 정도로 아마존을 인식하지만, 아마존의 사업 영역과 그 혁신의 여파는 이미 소매업을 넘어 산업 전 분야, 전 방위에 미친다는 뜻입니다. 다음 문장은 "아마존이 고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인공지능 분야에 투자하면, 이것이 인공지능 플라이휠을 더욱 세게 구동시켜 때로는 아마존의 자체 산업이 되는 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하기도 한다." 즉, 타 산업에 침투하여 기존의 강자들을 몰아낼 뿐 아니라, 산업의 재편과 해체를 유도하는가 하면, 아예 전에 없던 산업과 제품,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한다는 뜻입니다.

아이폰 안에 시리가 있듯이, 아마존은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알렉사는 가정에 있는 각종 전자기기, 설비를 원격으로 작동, 제어할 수 있고, 유저의 취향을 파악하여 음악을 골라 틀어 주는가 하면, 이 체제를 탑재하고서 앞으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의 두뇌 구실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아마존은 이제 주요 가전 기기 기업이 되었다(p49)."고도 합니다. 물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며, 예전부터 삼성, 엘지 등 하드웨어 영역(아무리 고부가가치 하이엔드 제품을 만든다 해도)의 강자가 결국 이들 소프트웨어의 지배자들에게 종속되고 말리라는 오랜 우려를 다시 상기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번다는 말처럼요.

몇 년 전 트럼프가 아마존을 두고 "우체국을 후려쳐서 돈을 버는 악덕 기업"이라 폄하한 적이 있었는데, 의외지만 아마존은 미국 정부와도 꽤 친하며 오히려 유착 관계를 의심받을 정도입니다(이래서 트럼프와 따로 놀며 대립하는 딥 스테이트 음모론이 인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라고 해도 마냥 방산업체에 우호적인 건 아닌데, 역사상 최초로 "군산복합체"란 말을 만들어낸 이가 바로 아이젠하워였습니다. 여튼 아마존은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통해 CIA, 국방부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p62)"고 합니다. 바로 앞 페이지에는 사업가, 공직자로서 크게 성공했던, 제프 베조스의 할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분은 1960년대(민주당 집권기죠) 기밀 군사시설 고위직으로 봉직했으며, 간접적으로 인터넷의 탄생(본래 미 국방부 인프라)에 기여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손자 제프의 이런 빛나는 인생 행보와 방향성이 결코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

예전에 경제학자 케인즈는 "장기적으로는 모든 게 균형을 이룬다"는 반대 진영의 주장에 대해 "장기적으로는(=결국) 우리 모두가 죽는다"고 되받아침으로써, 당장 우리가 활동하고 살아가는 "단기, 지금"에 효용이 없는 모든 정책, 이론에 대한 깊은 회의를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제프 베조스는 반대로, "모든 것이 장기적이다"라고 일찍부터 지지자, 주주, 투자자들에게 말해 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장기적으로는 결국 이익이 된다"거나 "올바르고 유익하다"고 말할 때, 그 숨은 뜻은 "단기적으로는 바보짓하는 거다"라는 말에 별 다름 아닙니다. 사업도 마찬가지라서, 길게 보고 정도 사업 경영한다고 하면 조롱이나 당하기 좋죠.

그런데 제프 베조스는 이런 통념을 정면으로 깬 사람입니다. p148에는 그가 프라임 배송 서비스를 론칭시켰을 때의 일화가 나옵니다. 당시 이미 아마존은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천천히 받고 싶은 사람은 낮은 배송료를 물고, 빨리 받고 싶은 사람은 특급 수수료를 내게 하여 배송을 차별화했는데 이런 게 무슨 악덕 상혼도 아니고 상식의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마니아층(혹은 주머니가 넉넉한 소비자)에서는 구태여 특급배송을 선택하곤 했죠. 경제학 기본 원리 중 하나가, 생산자(판매자)는 (그게 가능하다면) 가급적 가격 차별을 실시하여, 더 지불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에게 높은 가격을 받아내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겁니다. 꼭 나쁜 것도 아니어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기 효용만큼 더 내고, 없는 사람은 소비를 줄이거나 안쓰면 되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베조스는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결정을 내립니다. 프라임 서비스(일정 금액 이상 배송비 무료 정책)를 도입해서, 아마존을 더 자주 이용하고 충성하는 고객에게는 더 큰 혜택을 준 거죠. 경영진은 당연히, 자발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내겠다는 소비자에게 왜 불필요하게 회사가 손해를 감수하냐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베조스의 대꾸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편익을 제공하여, 아마존에서의 소비가 아주 습관이 되어 버린 유저를 더 많이 확보하는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건 크게 봐서 "박리다매" 정책이고 큰 그림을 본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지만 말이 쉽다고 행동까지 쉬운 건 아닙니다. 눈 앞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걸 사업자 입장에서 편하게 바라볼 수는 없죠.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한때 국민 SNS였던 싸이월드의 몰락 과정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도토리나 배경음악 아이템으로 유저의 호주머니를 알뜰하게 털어가는 영리한 사업체였지만 플랫폼으로서 결국 단명했죠. 단기와 장기를 분별할 줄 아는 비전의 차이이며, 글로벌 강자는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p101). "베조스의 장기적인 전략으로 아마존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20년 동안 베조스는 현금 자산의 많은 부분을 주주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사업을확장하고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우수한 직원을 고용하는 데 사용했다. 월스트리트가 분기별 수익을 절실히 요구하고, 아마존 주식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을 때, 베조스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만의 성전에 몰두했다." 어떻습니까? 우리네 통념으로는 상장법인이라 함은 시장의 요구에 민감해야 하고, CEO가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해 있으면 그건 퇴출 1순위감이라며 비웃기나 십상입니다.

베조스가 만약 한국식으로 경영했다면 모르긴 해도 단기에 떼돈을 벌긴 했겠지만,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사업이 위축되다 문을 닫고 몰래 꿍쳐 놓은 비자금이나 뜯어먹으며 노년을 살았을 겁니다. 그것도 그 나름 뭐 폼나는 삶입니다만 도덕적이지는 못하고, "세계적 레벨의 위대한 기업가"로서 얻는 존경과는 극과 극으로 먼 경로 아니겠습니까. 이게 한국과 글로벌 스탠다드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프라임 프로그램은 상식을 벗어난 역발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만, 책에서는 그 성공 비결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다룹니다(p150). 저자는 이른바 "단절 모델"과 프라임 프로그램을 대조시키는데, 단절 모델이라 함은 책에서도 설명되듯 피트니스 클럽 회원제라든가 무제한 뷔페 식당 같은 것입니다. 혜택이 큰 듯하지만 결국 다수의 소비자들은 혜택을 다 못 찾아먹고 업자 좋은 일만 시킵니다. 마음이 여간 독하지 않고서는, 허용된 시간 안에 제공되는 이익을 다 못 챙길 텐데, 아마존 프라임은 이런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아마존 프라임은 광범위하고 양적으로도 풍부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소비자는 아깝게 뭘 찾아먹고 연회비를 날리는 일이 없습니다. 적어도 회원권제로 업계가 부리는 전형적인 얄팍한 꼼수로는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마존이 얻는 이익이 무엇인가. 소비자는 개별상품을 인터넷에서 살 때, 아마존에 "중독"되어 다른 곳에서 더 이상 가격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소비행위를 할 때 그 소비가 주는 객관적 효용에 의한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주관적 효용에 따라 행동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손해가 나도, 나는 이걸 소비함으로써 행복해진다면, 또 주관적 가치가 부여된다면 그 선택을 하는 거죠. 이래서 아마존은 충성스러운 소비자들을 자신의 (광범위한) 생태계 안에 가둬 둡니다. 뭐 아마존 유저들이 그 안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제3자가 뭐라할 건 아닙니다. 프라임 서비스는 또한, 다른 프로바이더가 제공하지 못하고 아예 상품의 컨셉 자체를 상상 못하는 여러 다양한 "체험"을 하게 돕는데, "체험"은 확실히 이 시대의 키워드이자 아마존이 창립 초기부터 내세웠던 사업 지향성 중 하나입니다.

아마존은 물론 원가 절감을 위한 혁신에 주력하는 기업입니다. 그런 기업은 각종 자동화 시스템 도입을 위해, 기존의 생산성 떨어지는 많은 노동집약적 일자리를 퇴출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IT 기업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잃게 한다며 강하게 비판한 적 있습니다. 확실히, 드론으로 택배가 이뤄지면 트럭 운전수, 창고 근로자, 계산원 등이 설 자리가 없어지긴 합니다(p209).

그러나 저자는 "거꾸로, 이런 기계가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섬세하고 창의적인 일자리가 새로 등장할 것"이며, "아마존 고" 매장에서 젊은이들이 일부나마 이런 일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글쎄 앞으로 아마존 계열 기업이 얼마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모르겠습니다만, 폴 버호벤이 묘사한, "로봇이 모든 일을 대신하고 실업자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디스토피아(p210)가 도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네요. 이에 대해 저자는 마냥 낙관하지도 않고 모호한 말로 괜한 기대를 품게 하지도 않으며, 다만 개별 노동자가 "긱 경제"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보편적 아젠다로 부상한 지금, 근거가 있든 없든 아마존닷컴이 저런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괴물"이란 비판에 대해 마냥 눈감고 귀닫을 수는 없을 겁니다. 이에 대해 그들은 "아마존닷컴에 서비스와 제품을 납품하는, 이전 같으면 판로를 못 찾고 사장되었을 수많은 중소업체들이 아마존이란 플랫폼에서 활로를 찾았고, 그들은 다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p223)."고 합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아마존은 약품 유통 산업, 헬스케어 산업에도 진출하려 시도합니다.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게, 충성스러운 유저들의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시스템을 경쟁력 있게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임직원 중 적지 않은 수가 의약학을 전공한 사실도 그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게 단지 개별 기업의 탐욕과 야망이 아니라, 미국은 본디 공보험체계의 미비로 아프면 그냥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만 봐도 알 수 있죠. 아마존은 혁신을 통해 조기에 병의 징후를 발견하고, 유통망 혁신을 통해 약값을 낮출 수 있다고 공언합니다. 사실이라면 아마존에 충성스러운 유저들은 뜻밖의 곳에서 진짜 낙원을 발견한 셈입니다.

마지막에는 "그럼, 이렇게 사방에 문어발을 뻗치는 공룡 기업과, 지난시절 독점의 폐해 때문에 철퇴를 맞았던 각종 트러스트, 카르텔과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만합니다. 이 책의 장점은 외부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그것대로 소개하면서, 아마존의 지향점을 과장 없이 설명한다는 데 있습니다. 책에는 20세기 초 마크 트웨인이 말한 "도금시대(gilded age)"란 유명한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들 암울한 시대의 약탈적 독과점 기업과 아마존의 차이점이라면 결국 소비자와 얼마나 긴밀히 소통하고 공감하느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돈을 치르고 거래가 끝나면 안면몰수였던 지난시대의 기업과 달리, 아마존닷컴은 초심을 잃지 않고 고객의 입장을 중시하는 친구로 남는다고 말합니다. 여튼 기업이 이 정도로나마 대중을 상대로 정서적 배려를 하는 제스처도 처음 보는 모습인 건 분명합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이 기업이 전례 없던 혁신을 이어나가는 이상 아마 소비자와 함께 나눌 몫, 되돌려 줄 몫도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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