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2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2권부터 르네의 모험은 스케일이 훨씬 커지고, 전생들과의 치열한 소통이 이어질 뿐 아니라 그가 현생에서 맞닥뜨린 다른 골칫거리들과의 투쟁도 가속화합니다.

사실 역사선생 르네는 별 힘도 없고 유약한 개인일 뿐이기 때문에 그 혼자 힘만으로는 우리 독자가 뭘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p10에서는 "모두가 나의 전생"이라며 역사교사의 각성과 다짐이 두드러지며, 그 이상의 존재에 대한 열망도 다시 강조됩니다. 저 뒤 p90에서 "이폴리트의 용기와 피룬의 침착성"이 함께 강조되는 미덕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p107에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필연성의 지배를 받는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기억>이라는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저 뒤에 나오는 "과연 우연일까?(p232)"라든가 "우리 모두는 우연히 태어난 게 아니다(p348)"도 마찬가지입니다.

p140에는 오팔 역시 "현생의" 나쁜 기억 때문에 고통 받았다는 고백이 나오는데 1권에서 여친 엘로디가 사이비 같은 전문가의 꼬임에 넘어가 자기 삼촌을 감옥에 넣게 된 아픈 기억과 비슷합니다. p154에는 전생에 마녀사냥으로 희생자가 된 이들의 아픈 기억이 이어지는데 이와 반대로 p301에서는 "(가해자로서) 더 이상의 업(業)을 짓고 싶지 않다"는 르네의 충고가 나옵니다. 르네는, 평소에도 동양 사상에 깊이 천착한 작가 베르베르의 페르소나인 셈이네요.

p155에서 베르베르는 캐릭터들의 입을 빌려 저술가 쥘 미슐레를 또다시 까는데 이미 1권 후반부에서도 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나왔더랬습니다.

p119, p162에는 두 번, 르네의 이름을 딴 "네에의 방주"가 나오는데 이게 바로 우리가 아는 "노아의 방주"일 것입니다.


p164에서 비로소 "자네 키가 그렇게 작았나? "라며 게브가 놀라움을 표시하는데 우리 독자들도 2권 이 대목에서 그들이 거인족인 줄 처음 알게 됩니다. 1권에서는 p358에 게브 부부가 "서른 몇 살 짜리 아기"라며 르네를 부르는 대목이 있었죠. 근데 이건 그들의 장수성만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은 1권에서 우리 인간들보다 열 배의 수명을 사는 걸로 나옵니다. p169에서 멤피스가 "두번째 심장(그들 언어로)"이란 어원이 등장하네요.

p191 이하에서 "전에는 몰랐던 부정적인 감정을 발견"하는 게브들의 안타까운 투쟁에 대한 동정어린 언급이 있습니다. 한편 그들에게 선 문명의 존재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오팔의 말이 나오는데, 작가 베르베르가 십수 년 전 미국 영화 <프리퀀시>에서 아마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p213에 나오듯 "세상은 돌고도는 법"이며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습니다. p242에는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승자"란 말이 나오는데 작가 베르베르 자신에게도 해당되겠네요. "진실의 영역보다 믿음의 영역을 더 중시하는" 인간 종족의 불쌍한 한계도 다시 비판됩니다. p248에는 뉴스에 부정적인 평가가 다시 나오며, p219에는 "뉴스를 보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병원을 보고 파리 전체를 이해하려는 어리석음과 같다"는 말도 나옵니다.

p270에는 "살의가 한순간에 경외심으로 바뀌는 인간의 한심함"에 대한 비판이 있는데 러디야드 키플링의 고전 <왕이 되고자 한 사내> 중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p317에는 "우리를 섬기는 데서 희망을 찾는 소인족"을 보고 연민을 표현하는 게브 족의 말이 있는데, 글쎄요... 소설 후반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습니다. 이 대목은 종교에 대한 비판입니다.

p299, p334에는 각각 "선택을 피하는 손쉬운 삶"과 무조건적인 복종에 대한 회한이 언급되며, 우리 동양인들의 심성을 날카롭게 꿰뚫어봤다고 생각되네요.

앞서 언급했듯 르네 개인은 별반 힘이 없는 개인일 뿐입니다. p327, p355에는 "두 존재를 뛰어넘는 에너지"가 간절히 필요하다고 하는데, p389에 나오듯 "아직 113째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뿐입니다. 인간 존재의 존엄은 자유의지에 있으며, 순간의 선택과 자존의 추구를 통해 우리는 미미한 개인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뿐입니다. 약간 슬프면서도 묵직한 메시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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