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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즐기기 -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닐 포스트먼 지음, 홍윤선 옮김 / 굿인포메이션 / 2020년 4월
평점 :
제 기억으로 예전에는 TV 오락 프로그램이 그리 재미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보면서 그 유치함에 혀를 끌끌 차기도 했습니다. 반면 요즘은, 오히려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의 예능 감각을 따라가기가 버거운 포인트가 간혹 발견될 정도입니다. 최소한, 시간이 남아돌아가는 인생이 지루함 때문에 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입니다.
TV나 미디어가 삶의 핵심에 자리하여 대중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 건 20세기 중반 이후입니다. 이때 등장한 학자들도 있는데 지금 이 책의 저자 닐 포스트먼, 그리고 캐나다 출신 마셜 맥루언 같은 인물이 그들입니다. 전자는 지금 이 책, 이름난 고전에서 보듯 신랄히 그 부작용을 비판하는 경향이며, 후자는 반대로 미디어 자체의 의의와 막강한 영향력을 일단 긍정하고 분석한 인물이죠.
"죽도록 즐기기." 다른 말로 하면 "당신, 즐기기만 하다가 죽을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우선 미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법과 제도를 마련하며 그에 걸맞게 "문자와 배움"을 활용하였는지 그 독특한 개성에 대해 분석합니다. 지배 엘리트의 개성과 독특한 정신 구조는 판결문 등 법률 문헌에서 잘 드러나는데, 그 현학성이라든가 복잡한 표현 방식은 현재 TV를 통해 길들여진 우리 현대인들의 즉물적 감성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정치인들도 지금처럼 TV에 나와 감성적인 언사 몇 마디로 대중을 현혹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이고 냉정한 논리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식이었습니다. 많은 대중들이 이를 이해 못 했겠지만 그렇다고 "쓸데없이 어려운 말을 쓴다"느니, "잘난척한다"느니 하는 폄하를 일삼지는 않았습니다. 내공 깊은 독서 과정을 거친 이가 으레 도달할 만한 성취이겠거니 하며 합리적인 이해, 승복을 했기 때문이죠. 반면 현대인들에게 링컨 같은 이가 차분한 논리를 통해 국민을 설득하려 든다면 빈축의 휘파람을 날리기나 했을 겁니다. 이 시대는 위대한 정신을 이해 못 하는 중증의 병에 걸린 것이며, 그 주범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싸구려 감성을 퍼뜨리는 TV임에 다름 아니죠.
뉴스는 일찌감치 쇼로 전락하였으며, 광고에서 사용하는 충동적이고 말초적인 소통 방식은 이미 세상을 지배하여 올바른 이성을 마비시킨 지 오래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대중은 그저 선동의 대상이며, 사회는 오웰(<1984>)식 세계를 넘어 이미 헉슬리식 세계(<멋진 신세계>)로 접어들었다는 게 저자의 개탄(p214)입니다. 싸구려 선동과 감성팔이에 길들여진 우중(愚衆)에게는, 차라리 독재자의 출현이라는 번거로운 중간과정도 필요 없이, 기계화하고 획일적인 사회로의 타락이라는 처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독서와 사색이 이 미친 엔터테인먼트의 지배를 즉각 대체하지 않는 한, 우리 자손들은 아마 현재보다 훨씬 암울한 생을 미래에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