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 맡긴다는 것 - 리더가 일 잘하는 것은 쓸모없고, 일 잘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CEO의 서재 23
아사노 스스무 지음, 김정환 옮김 / 센시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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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일 잘하는 건 쓸모없고, 일 잘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 말 자체는 조금 과장되었습니다. 리더도 일을 잘해야 하고, 리더부터가 일을 못 하면 아랫사람들이 뭘 해도 소용없죠. 그러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 아무리 작은 회사라 해도 사장이 모든 일을 일일이 관장할 수 없습니다. 제갈량 역시 작은 서무까지 본인이 직접 챙기다 단명했다는 말도 있죠. 만기친람형 리더는 의외로 현대 사회에서 비효율적이며, 차라리 본인은 펑펑 놀망정 일 잘하는 사람을 각 분야에 확실하고 꽂고 전권을 위임한다면 결과가 더 낫습니다. 역설적이긴 해도 솜솜 뜯어 보면 이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죠.

일이 잘 안 될 경우를 대비해서 필요 이상의 일을 만들어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상사들을 봅니다. p30에는, 필요한 일이 10이라면 14를 만들어 직속 부하에게 시키고, 그 부하는 다시 자신의 아랫사람에게 40%를 늘려서 부과하는 리더의 예가 나오네요. 고교 과정에서 등비수열을 조금만 공부해 본 사람이면 이게 몇 단계를 거쳐서 얼마나 크게 늘어나는지 계산이 가능합니다. 조직 전체에 필요 없는 과부하를 빚으며, 사내 역량이 얼마나 낭비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게 바로 "일을 잘못 맡기는 상사의 대표적인 예"이며, 이런 사람들이 소심하기는 해서 끊임없는(필요도 없는) 보고를 요구하는 경향까지 있습니다. 한정된 인적 자원이 공회전에 낭비되는 안타까운 과정입니다.

"일을 잘 맡기라고 했지, 방임하거나 떠넘기기를 하라는 게 아니다."(p33) 책에서 권하는 건 적절한 "위임"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방임이라는 건 상대의 상황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p34) 업무를 맡기는 것이며, 떠넘기기는 일의 양, 수준, 처리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네요. 저로서는 잘 구분이 안 되는데, 아마 주관적 측면(일을 맡은 부하)을 고려하는 게 전자, 객관적 측면(일 자체)을 고려하는 게 후자라는 뜻 같습니다. 이런 실패한 리더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일까요?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성공하는 리더, 즉 이 책에서 말하는 일 잘 하는 리더는, 평소부터 부하, 타인들에게 관심을 잘 쏟는 부지런한 리더입니다. 일을 관심 있게 보는 것보다, 자기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인적 자원)의 장점을 세심히 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도 됩니다.

속수무책형 리더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가설 사고, 즉 이럴 경우에는 이렇게 하자는 사고가 몸에 밴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죠. 이런 사고를 가지려면 첫째 성과가 달성되었을 때 구체적인 이미지까지 모두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처음에 가설이라고 해서 "플랜 B. 혹은 컨틴전시 플랜"을 항상 준비하는 태도인 줄 알았는데, 그걸 넘어서서 목표 자체의 구체성 역시 요구하는 사고를 말하는 거더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모르면서 이러이러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 남 보여주기 위한 강박 루틴에 지나지 않습니다. 절실히 무엇인가를 원한다면, 그림이 막연히 그려질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 일이 안 될 때는, 그 일에 대한 분명하고 구체적인 그림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가 많았습니다.

"90년대생이 실무를 맡게 된다." 역시 일본도 한국과 다를 바 없어 실무 라인에는 이들이 대거 포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선 세대와는 성향이 매우 다른 이들의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무작정 이거 하라 저거 하라는 식으로 과업을 떠넘겨서야(혹은, 방임해서야) 일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이들(p45)이 그들입니다. 어떻게든 이 일을 하고야 만다는 식의 사고로는 그들을 이해 못 합니다. 일개인이 시대 정신에 저항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2장에서는 다양한 부하 직원 유형을 분석합니다. 독자로서 참 마음에 드는 건, 실용서에는 이처럼 최소한 상황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좀 제시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구체적인 건 당신이 직접 겪어 보고 판단, 결정, 실행하라"는 식이면 책을 읽는 보람이 없습니다.

1) 업무를 완수하는 게 원칙이다. 두 가지를 유념하라고 하는데 하나는 여튼 그 직원의 특징과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여튼 일의 완수가 목적이지 "그 직원의 기분을 맞추는 게 목적은 아니다"는 겁니다(p51). 아니 부하 직원의 기분 맞추는 게 위주가 되는 상사가 어디 있겠냐고 물을 수 있으나, 조직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가능합니다. 어떤 경우는 조직을 분위기를 띄운다고 상사가 부하직원들에 끌려 다니기도 하죠. 부하에게 "너의 능력 범위 안"임을 분명히 인식시키되, 그래도 일은 일대로 마쳐야 함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충고는 마치 현장에서 선배가 들려 주듯 현실감이 있어서 좋습니다.

2) 지나치게 큰 기대를 갖지 말라. 이에는 여러 주문 사항이 포함되는데, 첫째 학력이 높다고 해도 일 못하는 사람은 못하기 마련이고 학력이 능력과 정비례하는 게 절대 아닌 점 유념하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학력 떨어지는 사람이 능력으로라도 보충을 하느냐면 그건 또 전혀 아니죠.^^ 직장에는 반드시 전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겉도는 인간, 그야말로 월급 루팡이 꼭 있기 마련이라며, 이런 사람한테까지 좋은 상사 대접, 인정 받는 건 불가능하니 적정선에서 기대를 포기하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3) 업무 성과는 인사 고과에 확실히 반영하라, 이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니, 어떤 조직이건, 일을 열심히 했는데 그게 남의 성과로 넘어가거나 멀뚱멀뚱 뭔지도 못 알아본다면 그런 조직에서 누가 열심히 하며 창의력을 발휘하겠습니까. 물론 열심히 일을 한다는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일의 결과라는 객관적 평가가 중요하죠. 또 저자는, 달성도뿐 아니라 "책임의 범위"까지도 분명히 정해서 행여 직원이 "일 다 했는데 왜 결과가 이럼?" 같은 불만을 갖지 않게 하라고 조언하네요.

이런 사원이 우리 나라에 있을까 싶지만 만약 부서 안에 배째라형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사실 이런 사람은 이전 단계에서 누가 걸러 주고 시작했으면 좋겠지만 조직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한테 폭탄이 넘겨지기도 합니다. "일상적인 업무 중심으로 맡기되 혹 사고가 나지 않는지 양을 세밀히 조절해서 맡길 것"을 주문합니다(일일이 그의 행동에 반응하지 말고). 그 불안정한 감정까지 살피라고 하니 과연 어떤 조직을 이끄는 건(팀장급 책임이라 해도) 쉽지 않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일을 그만둘 수도 있고,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업무를 (다른 인력에) 예비적으로 맡길 준비를 하되 그가 내는 사표는 마음 변하기 전에 수리하라고 하네요.

성실하기는 한데 아주 그 범위가 좁은 사원 역시 괜히 눈치를 주거나 하지 말고, 또 어차피 말을 못 알아먹으니 번거로운 말(지시)을 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것 저것 범위를 지정해서 시키라고 합니다. 일을 못하는 사원을 돕는 건 좋은데, 이런 도움을 받는 게 남한테 얼마나 폐를 끼치는 건지 확실히 인식시키라고 합니다. 과연 맞는 말입니다.

일 잘하는 사원에게도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도전적인 일을 맡긴다는 명목으로 그 부하(部下)에게 업무의 부하(負荷)를 무작정 늘려도 안 된다(p79)."고 하네요. 이 사람이 기대에 부응하려다 번아웃 증후군에 빠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디테일한 충고까지 말하는 걸 보면 저자가 확실히 경험이 많은 분입니다. 회사에 그 정도로 일 잘하는 직원을 일생에 몇 번이나 만난다고 말이죠.

여튼 유능한 상사는 사람 키우는 것도 유능하기 마련입니다. 앞에서 문제 사원의 경우 "적합한 만큼의 일을 맡기거나, 그 이하를 맡기라"고 했는데, 유능한 직원이라면 "그 이상"을 맡겨도 된다고 합니다. 단, 앞에서는 "능력치 이상의 일을 계속 맡겨서 부하를 높이는 것"을 두고 금물이라고 했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키우려면 능력치 이상의 일을 시켜 봐야 맞겠죠. 이때 저자는 "일을 함께 추진하는 것과 지도하는 건 서로 전혀 다르다"고 하며, 어떤 사람을 크게 키우려면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을 지도시켜 봐야 한다"고도 합니다.

p138에는 "상황적 리더십" 이론이 잠시 소개됩니다. 한국에도 그의 여러 자계서와 실용서가 번역되었는데 폴 허시와 켄 블랜차드의 작품이죠. 역량과 의욕에 따라 부하직원의 성숙도를 4등급으로 나누는데, 우리가 주목할 건 역량이 높고 의욕이 낮은 이가 3등급, 반대로 역량이 낮고 의욕이 높은 이가 더 아래 등급인 2등급이라는 점입니다. 2등급에는 지도형, 3등급에는 지원형으로 일을 맡기라고 하는군요. 의욕도 능력도 모두 상급인 4등급이라야 "위임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실상 이 책의 핵심 파트입니다.

요즘은 부하 직원에게 무작정 뭘 시키는 게 아니라, 그 업무를 왜 본인이 해야 하는지 납득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사 본인부터가 "왜 이 일을 다른 사람 아닌 이 사람에게 시키는지"를 납득하고 확신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건, 첫째 앞에서 말한 대로 요즘 실무진에 배치된 90년대생이 본래 그런 성향이라서이며, 둘째 (이게 더 본질적인 이유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소기의 노동생산성(p152)이 달성되는, 다시 말해 성과가 저질을 면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앞에서 소심한 리더는 방임하거나 떠맡기는 식의 일처리를 하며, 위임이 이처럼 시원찮게 되었기 때문에 혼자 초조해서 계속 보고를 받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보고는 어느 정도로 받아야 하는가, 일단 주관적 평가보다는 팩트 위주로 챙기는 게 바람직하며(p166), 정기적으로 앞에 정해 둔 몇 번의 횟수이면 충분하고, 업무 진행 상황은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두라고 합니다.

피드백의 3원칙도 유념해야겠습니다. 일선에서는 이 피드백이 너무 과하거나 반대로 부실해서 문제가 꼭 발생합니다. 1) 일을 맡긴 바로 그 상대에 대해서만 받고, 2) 감정이 아니라 의견을 소통해야 하며, 3) 문서가 아닌 말로 직접 전달하라(p174)고 합니다.

"신뢰를 만드는 건 균형감각이다."(p209) 어떤 일을 추진할 때, 자신있다거나 반대로 취약점이라고 해서 꼭 거기에만 역량, 감정을 쏟아붓는 약점은 누구도 피해가기 어렵죠. 직원 평가의 경우, 어떤 부하에게는 과도하게 신경을 써서(반드시 편애가 아닌데) 일을 마무리짓는데 거기까지는 뭐라 할 게 아니지만 이런 소문이 그 직원 입에서 다른 이들에게까지 퍼져 나갑니다. 그러면 반드시 뒷말이 생기고 조직의 분위기가 나빠지는 건 물론 상사 본인의 승진에까지 지장이 생기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업무 추진에 있어 일종의 계기판 구실을 하는 KPI, 일관성을 측정하는 PDCA 사이클 등 여러 이론적 틀도 제시됩니다. 특히 저는 마지막의 "균형감각"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에 실린 여러 유익한 충고들도, 독자가 마음에 드는 부분만 편식하려 실행할 게 아니라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도 고루고루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이 들수록 "아 이 정도도 내 마음대로 못 하나"며 오기가 발동하기 쉬운데, 그럴수록 경계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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