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화국
요스트 더프리스 지음, 금경숙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인터넷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세계에 몰입하는 이들의 모임을 보면 놀라울 때가 많습니다. 때로 일반인들이 상상하기조차 싫어하는, 생각만 해도 비위가 상할 듯한 주제를 놓고 심도 있게 토론하며 무아지경으로 몰입하기도 합니다. 때로 이런 모임에서 놀랄 만한 결론도 도출되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나올 법하지 않은 성과입니다.
만약,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인류사 악마와도 같은 존재에 대한 몰입이라면, 반드시 그 인물에 대한 존경, 숭배의 마음가짐 그 소산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히틀러 같은 악인에 대해 100% 완전한 객관화가 이뤄지려면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할 수 있겠으나, 이들 마니아들은 그저 역사상에 놓인 특이점 하나만으로도 열광하며 관심을 쏟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지적 호기심으로 인류사가 발전하는 법이며, 이 과정에서 탄생한 여러 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얼마든지 응용될 수 있습니다.
히틀러에 대한 진지한 연구자들은 현실 세계에 아주 많습니다. 그 대부분이 연구 대상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이며, 구태여 마음가짐(윤리적 태도)을 그쪽으로 쏟지 않더라도, 악마의 삶에 대한 연구란 어떤 경향성을 별반 필요로 하지 않기에, 파다파다 보면 단죄와 지탄, 탄식 쪽으로 자연히 마음이 향하게 된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대상이 비록 히틀러 같은 악마일망정 그 연구 대상에 대한 최고 권위자의 평판을 지니려는 욕망, 어설픈 야망, 공명심은 누구도 비껴갈 수 없습니다. 그 분야 일인자 명성이라면 차라리 사양하겠다... 네덜란드는 2차 대전 당시 특별히 나치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은 나라인데도 이 소설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딱히 이런 생각을 갖진 않습니다. 단죄를 위해서라도 연구는 철저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마음가짐일까요? 그런 면도 크겠지만, 그보다는 그저 지적 호기심과 열정의 출구를 찾고자 함입니다. 처음에는 이처럼 유쾌한 발놀림이었는데, 나중에는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를 보면 주인공들은 젊은 시절 급진 좌파 단체에 몸을 담던 청년들입니다. 이들이 우연히(?) 프랑스 혁명사 한 끝자락에 엮인 음산한 저주("자끄 드 몰레, 드디어 우리는 당신의 복수를 완성했습니다.")와, 그로부터 수백 년 전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몰살한 기사단 이야기를, "날조"를 통해 연결시킴으로써, 장난으로 시작된 파문이 연쇄 살인극으로까지 스노볼처럼 발전합니다.
이 소설도 비슷합니다. "너는 나의 도팽(왕세자로서 후계자)이 될 것인가, 아니면 로베스피에르(왕정을 파멸시킨 공화파의 독재자)가 될 것인가?(p10)" 저 가상의 세계에서 히틀러 연구의 최고봉인 요시프 레길리멘스 브리크 교수의 뜻하지 않은 죽음 후, 그의 후계자로 인정 받고 싶었던 프리소는 엉뚱한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깁니다. 엉뚱하게도 먼 나라 칠레에 브리크의 진짜 후계자가 살고 있었던 거죠.
책 중에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 사람 역시 히틀러의 대를 이어 제국을 통치하리라는 기대로 가득했던 악당이었습니다. 히틀러라든가 저 하이드리히에 대해 우리의 프리소가 설마 동경 같은 걸 품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싶지만, 소박하고 어찌 보면 우습기까지 한 질투심, 공명심에 눈이 멀었을 때 적어도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한 어리석음만큼은 저 둘을 매우 빼닮아 보이는 게 안타깝죠.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개봉된 어느 미국 영화의 제목인데, 구태여 이 작을 끄집어 내 농담의 소재로 삼는 데에서 어느 정도 "스승(?)에 대한 프리소의 배신감"이 암시됩니다. 역주에 패러디라고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 외에도 영단어 you(당신)와 Jew(유대인)의 발음이 비슷한 사정까지 감안해야 더 재미있어지겠습니다.
본문과 역주에도 잘 나오지만 앤디 워홀은 실제로 그 사고를 겪은 후 자신의 모든 체험이 마치 TV를 통해 겪는 듯 느껴졌다고 합니다. 실감의 상실, 현실로부터의 자기 소외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p180에 처음 이 말이 나오고, p199 이하 호텔의 TV를 켠 후 그녀와 나의 정사 영상을 마치 남의 모습처럼 담담히 시청하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대목에서 우리는 주객이 전도된 광대의 파토스를 전달받습니다.
프리소에게 마뜩지 않은 경쟁자가 출현한 곳은 칠레입니다. 칠레는 과연 그럴 만도 한 곳인 게, 20세기 초 경제적 활황을 누릴 때에도 인종주의가 만연한 고장이었으며, 이 책에도 나오듯 일종의 "멜팅 팟(미국처럼)"을 만들기 위해(p204) 비정형적 이름을 권하는 풍조가 지배적이기도 했습니다. 그 실험은 결국 실패로 바뀌어 갔으며, 남미의 허약한 등뼈(p202, p128)라는 비유가 적절하게도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마침내 피노셰(피노체트) 같은 군부 독재자가 등장합니다. 히틀러 같은 주제에 깊숙이 침잠하려면 이런 나라가 배경이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맘마 미아>로 유명한 아바의 히트곡 중 "워털루"란 게 있죠. 실제 나폴레옹은 워털루가 아니라 더 떨어진 로슈포르에서 항복했다는 필립의 말(p252)은 매우 냉소적이지만, 한편으로 프리소의 무리가 어디서 길을 잃기 시작했는지 날카롭게 짚습니다. 히틀러는 (책 역주에도 나오지만) 그 의회 연설에서 "몽유병자"의 길을 스스로 천명한 이래 정말 갈 데까지 가 보자는 도박꾼의 심정으로 막된 길을 걸었는데, 안타깝지만 소설에 나오는 누구의 행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판돈으로 건 몫이 어느 정도 무모했는지 사이즈의 차이가 있을 뿐.
"롱기누스의 창(p95)"은 중세인들이 광신을 투영하던 가짜 성물인데, 어이없게도 히틀러 역시 비이성적인 열정을 이런 가짜 상징물에 퍼부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도 나오죠. 우리가 나치식 경례로 아는 그 동작도 훨씬 유구한 역사를 지니는데, 히틀러 아닌 그보다 훨씬 오랜 역사에 호기심과 지적 능력을 투자하는 이들이 박탈감에 억울해할 만합니다. 히틀러는 살아생전에 수많은 무고한 목숨을 빼앗았고, 죽은 지 반 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은 마니아들에게서 그들의 호기심이 향할 정당한 권리를 빼앗고 있습니다.
"프리무스 인테르 파레스". 로마 공화정의 혼란을 극복하고 일인자 자리에 올랐지만 "나는 그저 일등 시민"일 뿐 황제가 아니라며 프린키파투스라는 호칭을 고집한 옥타비아누스 같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야심은 하늘을 찔렀지만 동시대 다른 이들의 컨센서스를 철저히 (겉으로만) 존중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현명한 정치인이었죠. 저 라틴어구는 영국 수상(총리) 등을 가리킬 때도 쓰이는데, 왕이나 대통령 같은 게 아닌, 그저 같은 위치의 장관들 중에서 으뜸일 뿐이라는 뜻이지만 사실상 현실의 권력 세계에 그런 겸손함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왕(브리크)은 죽었다. 왕(프리소) 만세!" 대관식을 하고 싶었던 프리소의 얼띤 야망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동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이중의 무지를 극복해야만(p284) 이 우행의 트랩, 루프에서 풀려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