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힘 Philos 시리즈 4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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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화학자 조셉 캠벨과 방송인 빌 모이어스 사이의 대담을 싣습니다. 책 자체는 한국어판이 십 수 년전에 이미 나왔더랬고, 생전에 이윤기 선생이 번역까지 하여 큰 관심을 모았던 책인데 이번에 21세기북스에서 새 장정으로 다시 출판되었습니다. 더 깔끔하고 보기 좋은 편집이 된 듯도 하고, 언제 읽어도 심오한 진리를 담은 대담 내용이라서 독자는 새롭고 경건한(그러면서도 유쾌하고 재미있는) 기분으로 정신을 물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일종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며 <천의 얼굴을 가진...> 같은 책이 큰 화제가 된 적도 있죠.

"그 영적 잠재력이라는 것은... 우리가 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까?- 모이어스"(p30)
"선생님께서는 신화의 정의를 의미의 모색에서 의미의 체험으로 바꾸신 거죠?-모이어스"(같은 페이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캠벨은 석가의 염화시중 고사를 인용합니다. 누군가 삶의 오의를 물었고 석가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꽃을 들었을 뿐이며, 이에 좌중의 단 한 사람만 의미를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는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모두 알듯 이 좌중의 한 사람은 석가모니의 제자 중 한 분인 마하가섭이죠. 참된 의미는 이미 분석의 대상이 아니고, 실제로 체험(육체적, 감각적인 것이든 순수 내적인 것이든 간에)을 해 봐야 알 수 있을 뿐이라는 게 캠벨의 의도이겠습니다. 그 전까지 서양의 거의 모든 신화학자(나아가 인문학자)들이 취한 태도와는 사뭇 대조적이고, 여기서 우리는 동양인 독자로서 뿌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다음 페이지에서 뜬금없이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데, 캠벨 박사께서 무슨 인생 상담을 해 주시나 싶지만 일단 그는 신화의 한 화소로서 결혼을 언급할 뿐입니다... 만 읽다 보면 진짜 인생 상담도 겸하는 걸 우리 독자들은 느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상대와 결혼해야 우리는 육화한 신의 이미지를 재건할 수 있게 되는데..." 이건 인간이 신의 모상이라는, 신의 이미지를 따라 만들어졌다는 원형적 발상이 깔려 있고, 결혼할 때 서양의 남녀들이 "You complete me."라고 말하는 뜻을 이해해야 더 잘 와 닿을 듯합니다.

"나(캠벨)에게는 이것이 바로 비교신화학에 입문한 계기였습니다.(p40)" 이 책의 날개에 보면 "북미대륙 원주민 신화와 아더왕 전설(sic.)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걸 깨달은 캠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특히 이 대목을 염두에 둔 요약 소개이겠습니다. "고만고만한 중류 가정 출신의 처녀들에게 어떻게 정통 종교와 다른 이 신화를 가르쳤습니까?"라고 묻는 모이어스는, 이 무렵만 해도 구식 기독교 가정 문화에서 압도적인 영향을 받고 자란 여성들에게 자유분방한(때로는 문란한) 신화 이야기를 들려 주고 의미를 교습(이 아니라 체험이라고 말했지만)하려는 시도가 적잖이 어려웠으리라는 짐작을 하는 거죠. 그에 대해 켐벨은 "젊은 사람들은 덥석 집는다"는 말로 한칼에 자릅니다. 뒤에 나온 설명을 요약하면, "신화가 곧 생생한 삶의 표현인데 이를 받아들이는 데 무슨 장애가 있겠냐"는 겁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캠벨의 내러티브가 워낙 힘이 있기에 가능했겠죠?

이어 캠벨은 말합니다(p43). "신문을 한번 보세요. 엉망진창입니다. 예전에는 미덕이던 게 오늘날에는 악덕이 되었구요. 예전에 악덕이던 게 오늘날에는 필요악 정도가 되었습니다." 캠벨은 사회와 시대상이 변한 만큼, 종교는 이제 더 이상 윤리와 도덕률로 작용하기 어렵게 낡은 틀이 되어 버렸고, 반면 유연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화는 시공을 초월하여 "낡은 종교"를 (어느 정도는) 대신할 수 있다는, 이미 (그 여학생들에게) 대신하고 있었다는 게 캠벨의 암시이겠습니다. 게다가 신화는 종교와 달리 재미있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미국 독립의 아버지들이 왜 하필 13개의 주(州)로 출발을 잡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고, 멀쩡한 주를 두 개로 쪼개어 14개로 출범한다든가, 아직 제도가 미비한 테리토리가 더 성숙하길 기다린다든가 하는 여유를 부리기에는 현실이 급박했겠죠. 고작 미신 때문에 말입니다(버지니아에서 웨스트버지니아를 분리한 건 그보다 훨씬 후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여기서 캠벨은 그 연혁적 이유를 설명하는 건 아니고(역사학자가 아니니까요), 피라미드의 몸체에 나 있는 구획이 13개이며, 미국 독립 연도인 1776에서 숫자 하나하나를 다 더하면 이성의 숫자 21이 된다며 수비학(?)적 풀이를 합니다. 13 역시 불길한 숫자가 아니라, 예수와 십이 사도가 곧 죽어서 재생(원문 그대로입니다)하니 이는 현세 초극의 상징이라고까지 말합니다(독자는 바로 이런 맛에 캠벨을 읽는 것입니다). 12궁 역시 태양의 숫자를 더하면 13이 되지 않냐고 합니다. 여기서 그는 대담하게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이런 사정까지 다 감안하여 독립 당시 연방 가입 주 수를 13으로 정했다고까지 하는데 ㅎㅎ 과연 켐벨 답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인문적 상상력으로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부활과 재생과 새 생명의 상징이 13이라는 게 그의 결론 - 그 다음에는 "이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라는 강조까지 덧붙이네요. 이러니 여대생들에게 인기를 끌죠ㅋㅋ 그에 그치지 않고 국장에 나오는 라틴어 "노부스 오르도 세클로룸"이라는 구절 역시 자신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합니다. 저승의 그 국부들이 들으면 무척 흐뭇해할 것 같습니다.

다만 그저 웃어넘길 게 아닌 대목은, 캠벨은 이 책(이 대담)에서뿐 아니라 전(全) 저작, 전 강의를 통해 일관되게 강조하는 주제가 있다는 겁니다. 바로 "삶의 재생, 신의 모방(을 통한 인간의 불멸 동경)"인데 13이라는 숫자에까지 이런 의미를 부여, 강조하는 대목에서도 독자는 그의 사상과 주제의식의 일관성을 감 잡아야 할 듯합니다. "동경"이라는 주제어에 대해서는 책 좀 앞으로 돌아가서 p43에 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또 그의 주된 필드가 비교신화학이라는 사실과, 기발하게도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미국 국장 사이의 유사점을 찾아내는 그의 시야를 우리는 동시에 염두에 둘 필요가 있죠.

"인류는 어떤 것을 노리고 이런 식으로 산화를 다룬다고 생각하십니까?(p108)" 모이어스의 질문에서 "이런 식"이라는 건 각국, 각 종족의 창세 신화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일종의 원형을 공유하는 걸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켐벨은 "삶의 체험과 초극 의지의 조화(상반되는 둘 사이의)"를 의도한 것이라고 정리합니다.

p270에서 두 사람은 "녹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녹기사를 다룬 영화로는 <용사의 검>이라는 숀 코너리 주연의 1984년작이 있는데 꽤 재미있고 예전에 KBS 2TV 토요명화 시간에 더빙으로 틀어 준 적이 있습니다. p151에서 두 사람은 아름다움의 창조라는 관점에서 샤머니즘을 분석하는데 왜 저기 토테미즘을 보면 부족이 특정 동물을 숭배하죠.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왜 짐승 따위를 숭배하는지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어색할 때가 있는데 이 두 분 대담 속에서 그 모순점이 거의 해명되는 듯합니다. 물론 이게 유일한 해명은 아니고 많은 설명, 답안 들 중 하나이겠죠. p237에는 불(의 이용과 발견) 덕분에 인간은 짐승과 비로소 결별할 수 있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p151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옵니다. 일본 사무라이 특유의 恩과 恥의 관념에 대해 다루는데, 어느 사무라이가 주군의 원수를 갚을 기회를 잡았는데, 상대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더랍니다. 그러자 이 자는 원수를 그냥 놓아주는데, 이유인즉슨 "지금 원수를 갚자고 처단하면 이는 내 개인의 감정 풀이일 뿐 대의의 실현이 아닌 게 된다"는 거랍니다. 그래서 원수를 다시 놓아주고 추적해 들어가는, 처음부터 다시 그 기나긴, 고된 과정이 되풀이된다는 거죠.

"체험"은 이 책 내내 되풀이되는 관념으로서, 역시 캠벨 사상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p124에는 메시지에 이르는 단서를 간취(看取)하기 위해서는 체험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며 예로 "스키를 책으로 배울 수 없다"고도 듭니다. "간취" 같은 번역어에서 이윤기 선생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하죠? 다음 페이지에는 성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聖別로 씁니다(남녀라는 뜻이 아닙니다). p183을 보면 consecration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거하고 서로 통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겠네요.

p221에는 "인생에 있어 자신만의 천복(天福)을 소중히 여김"이란 대목이 있습니다. 뭐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저 개인적으로 좀 울림이 깊은 문장이었네요.

저 앞에서도 "변화한 시대를 더 이상 포용할 수 없는 낡은 종교의 옷"이 여러 번 언급되었는데 p259에도 또 비슷한 지적이 있습니다. "강령, 계명 때문에 종교는 신학으로 축소되었다." 물론 강령이나 계명, 나아가 신학에도 특별히 긍정적인 의미 부여가 가능하지만 여튼 켐벨은 그런 뜻으로 썼다는 것입니다. p214에는 살바도르 달리의 십자가형 그림이 도판으로 나오는데 네이버에 보면 달리가 특별히 4차원으로 고안해 그린 그림이라는 멋진 수학적 설명이 나오니 한번 참조하십시오.

pp.54~55, pp.264~265 두 군데에 걸쳐 영화 프랜차이즈인 스타워즈에 대한 재미있는 수다가 펼쳐집니다. 이로써 왜 캠벨의 신화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고 현대의 독자들에게 광폭의 호응을 얻는지가 잘 설명됩니다. 해당 페이지에는 영화의 스틸 사진 몇 컷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참고로 p49에는 존 웨인의 어느 출연작에 대해서도 도판 하나와 함께 언급이 있는데 이게 바로 "왜 조셉 캠벨인가?"에 대한 대답 그 작은 실마리 하나를 제공한다고나 해야겠네요.

p204에는 유명한 안드레아 만테냐의 <악덕을 제압한 지혜의 승리> 도판이 나옵니다. 이 페이지 전후로 약 열 쪽에 걸쳐 컬러 도판이 모여 있고 독자는 작품 언급이 나오는 해당 챕터를 비교해 하며 읽는성의를 좀 보여야 합니다. 만테냐는 대표작 <십자가형>으로 잘 알려진 르네상스 화가인데 참 무서운 그림이고 이후 후배들의 많은 작품에 영향도 주었죠. p211에는 구원(atonement)이란 단어를 "at-one-ment"라고 재미있게 파자(破字)했는데 이게 그저 말장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캠벨 사상에서의 "생각과 하나되는 체험(과 그를 통한 깨달음)"을 함께 떠올려야 합니다.

p211에는 영웅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그는 자신의 물리적 삶을 진리 인식의 질서에다 바친 사람"이라는 건데, 멋지지 않습니까? 몇 페이지 뒤로 가면(p211) 예수의 말,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을 인용합니다. 이게 바로 켐벨이 파악하는 신화상의 영웅인 것입니다. p363에는 그노시스 계열에서 중시하는 토마 복음에 대한 짧지 않은 평가도 나옵니다. 이 모든 이질적인 토픽이 "신화"라는 캠벨식 개념에서 하나로 엮이는 것입니다.

신화가 어렵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일상에서 매번 겪는 체험의 연장선상이며 가장 소박한 진리의 표명이라는 점은 캠벨만이 구사할 수 있는 친숙한 내러티브 속에서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이래서 고전 명작은 언제 어디서 읽어도 유익하며, 매번 새롭고 재미있기까지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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