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경제 전쟁 - 세계 석학들이 내다본
리처드 볼드윈.베아트리스 베더 디 마우로 엮음, 매경출판 편역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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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전세계가 고통에 신음합니다. 엊그제 빌 게이츠가 "세계 3차대전"에 작금의 상황을 비교했습니다만 그보다 훨씬 앞서 이 책의 저자, 세계의 석학들이 이미 "전쟁 상태"를 선언하고 우리 시민들이 어떻게 사태를 대처해야 할지 자세히, 친절히 조언해 주고 있더군요. 분량은 220쪽 정도이지만 폰트가 작기 때문에 내용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또, 매 챕터가 마치 기업의 상급자에게 올리는 보고서처럼 분석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읽다 보면 마치 독자가 중요 포스트를 차지한 고위급 인사 같은 착각이 듭니다. 하긴, 요즘 상황이 엄중하니 일반 독자가 읽는 책도 각 잡고 쓴 텐션이 느껴져야 제격일지도 모릅니다.

"신속하게, 그리고 무엇이든 최대한으로." 리처드 볼드윈과 베아트리스 베더 디 마우르 교수의 첫번째 아티클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단어는 "평탄화"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급격히 솟아오르는 확진자 그래프"의 높이를 보고 경악한 적 있습니다. p20에는 누적 확진자 수에 대한 그래프가 나오는데 이게 원 숫자가 아닌, 그에 로그를 취한 값입니다. 너무나도 가파르게,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니 한정된 공간에 제대로 그래프를 그릴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로그값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겠죠(이것도 어찌 보면 기술적 측면에서의 평탄화입니다). 어떻게 이 그래프를 진정시키겠습니까? 평탄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당장, 당장" 억제 정책을 집행하지 않으면 재앙을 막지 못합니다. 이 챕터에서, 신속하게 액션을 취한 나라는 평탄화의 추세를 보여 주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그래프가 천장을 찌릅니다.

누구든 최대한의 신속한 조치로 상황을 진정시키고 그래프를 달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는데 그건 바로 "돈"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한국 역시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조달할 것인가, 아니면 (김종인 씨 등이 주장한 것처럼) 기존 예산 항목 변경을 시도할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이 책 해당 챕터의 저자들 역시 1) 유럽연합 예산 안에서 재분배하는 방법, 2) 예산 외에, EU 회원국이 분담하는 방법 3) 팬데믹 채권을 새로 발행하는 방법 등이 논의되는데 사람 사는 곳은 달라도 생각이 미치는 범위는 비슷하다는 점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동시에, 머리를 아무리 짜내고 짜내어도, 기발하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안이란 참으로 나오기 힘들다는 점도 다시 새기는 중이네요.

제이슨 퍼먼 박사는 "사람이 먼저이며, 경제는 그다음"이라고도 합니다. 마치 한국의 어떤 정치인이 예전 선거에서 내세운 구호도 떠올리게 합니다만 역시 실행 방법이 무엇이냐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짚는 "정책의 근본적 제약"은 세 가지입니다. 불확실성, 시간, 역량. 이 중에서도 저는 "역량"의 문제야말로 정치인의 자질과 실력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라고 생각이 드네요.

사자성어에 "과유불급"이란 게 있지만 책에서는 정반대로 말합니다(왜? 경제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했으니까요). 즉, 미미하고 느린 조치보다는 차라리 과도한 조치가 낫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가능하면 기존에 마련된 매뉴얼이나 방법에 의존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로 FDR의 실험이 결국 10년 간의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실례를 듭니다(사람은 실험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대응 과정은 다각화하고 어느 한 방법에만 기대지 말라고 합니다. 정부 주도보다는 민간의 참여가 낫고(한국의 현 정부가 "민간 기부"를 기대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활발하고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잊지 않습니다. 그 외, 시민들에게 인당 최소 천 달러 정도를 현금 지원하라는 말도 있는데 이 사항은 트럼프가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현재 집행 중입니다. 책이 훨씬 이전에 쓰여졌다는 점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래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거죠).

과감하고 신속한 정책을 집행해도 언제나 비평가들이 우려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느 사회건 "제도를 악용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책에서는 이를 가리켜 도덕적 해이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글까요? 찰스 위폴로즈 박사는 "도덕적 해이를 무서워하지 말고, 병목 현상은 초기에 찾아내어 제거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우리는 지금 경제위기를 걱정해야 하며, 금융위기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입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도덕적 해이에 대해 더 주의를 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며, 위기의 종류와 본질이 다르니 역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속시원한 충고였습니다.

코로나 위기가 세계를 뒤덮었고 그에 따라 증시도 휘청였습니다. 한국만 해도 순식간에 시총 상당액이 증발하는 등 이러다 나라가 망하지 않나 싶었지만 참여자들(특히 개미들)이 성숙하게 대응하고, 일부는 오히려 역으로 공격적 매수에 나서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시장이 안정되었습니다(놀라운 일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게 금모으기 운동과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국민과 소액 투자자들이 국가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게 다름 아닌 애국이죠. 책에는 물론 한국의 사례가 나오지 않습니다만 각국의 증시 현황(책의 출간 시점이란 한계가 있으므로 대략 2월 28일까지의 상황이 언급되네요)이 차분히 분석됩니다. p81에 나오는 휩소 패턴이라는 걸 우리 독자들은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p85에는 "위기 극복을 위한 열 가지 열쇠"라는 아티클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파트가 가장 인상적이고 유익했습니다. 저자 명의는 "샹진 웨이"인데,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없고 우리 동아시아식으로 성씨를 먼저 읽으면 "웨이샹진, 위상진"입니다. 유명한 분이죠. 짧으면서도 강력한 글인데 제가 통째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pp.86~91)

1) 급속도로 퍼지기 전 준비하라
2) 국내 공급이 부족하면 여유 있는 국가로부터 수입하라
3) 중환자실 병상을 충분히 확보하라 (우리도 초기에 대구에서 병상 부족으로 고생한 적 있죠)
4) 바이러스 확산 방지 방침을 분명하고 빠르고 단호하게 대중에 전달하라

대략 여기까지만 봐도, 두어 달이 지난 시점에서 왜 한국이 모범 대처국에 속하며 현재 피해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은 편인지 감이 옵니다. 마치 미리 이 책을 읽은 듯, 당국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했다는 점을 우리도 넉넉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단, 저자는 아홉째 조언에서 "각국이 독자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여러 나라들이 동조적으로 조치하는 편이 낫다"고 하는데 이는 현 시점에서조차 여전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들이 미온적이고 미숙하게 행동한 탓이 큽니다.

p116 이하에서 볼드윈, 디 마우르 교수 들(맨앞의 글을 쓴 그 저자들입니다)은 앞으로의 경제 상황을 예측합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기존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이 붕괴되고, 특히 그 중에서도 타격을 받는 건 중국인데 세계의 공장으로 그간 누렸던 지위와 신뢰가 붕괴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1990년대 중후반 WTO 체제의 확립으로 세계화 추세가 가속되었으나 이제 이런 트렌드가 퇴조하고 리쇼어링 붐이 일지 모른다는 암시로도 들립니다.

볼드윈 교수와 토미우라 박사가 함께 쓴 다음 아티클에서는 "공급망을 통한 전염"을 논하는데 물론 여기서 전염이란 바이러스 전염을 말하는 게 아니라(이것도 가능은 하겠죠), "한 나라가 입은 경제적 타격과 불황의 여파가 번져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어지는 글에서 세체티와 스코엔홀츠는 "전염 효과"로서 뱅크런의 확산을 거론하는데 사실 여기까지 간다면 정말 갈데까지 간 것입니다. 여기서 이들이 강조하는 대안은, "공시를 대중이 철저히 믿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네요. 문자 그대로의 뱅크런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가 발표하는 "전염병 확산 실태"를 못 믿어서 패닉에 빠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종의 비유이죠. 정부는 언제나, 전염병 확산 실태에 대해 100퍼센트의 진실만을 말해야 사회가 붕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유로존은 언제나 주위 관측자는 물론 당사자들의 걱정을 부릅니다. "이번 위기에 드디어 유로존이 무너지지나 않을까?" 실제로 며칠 전 나온 어느 기사에서는 이탈리아인들이 "EU(중에서도 독일)이 밉고 중국이 믿음직하다"고 하는 내용이 보도되었는데 물론 어디까지 믿을지는 의문입니다. 여튼 본래 하나의 나라가 아니던 게 다분히 무리를 해 가며 합친 통화권이고 그예 영국이 떨어져 나갔는데 이번 코로나 여파로 또 내상이나 입지 않을지 고민이죠. 이 파트를 올리비에 블랑샤르가 썼는데 역시 읽을 만합니다.

이후에는 좀더 장기전망으로 혹시 경제민족주의가 발흥하여 무너져가던 장벽이 다시 서지 않을지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이에 대한 처방은 교역 상대국을 선진국들이 착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네요. 폴 크루그먼은 경제 부양책을 쓰는데 전혀 주저하지 말고, 최근 일본의 과감한 화폐 증발책으로 경기가 살아나는 게 좋은 예라며 거의 롤모델로 삼아야한다고까지 말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오덴달, 스프링포드의 제언도 거의 같은 취지이며, 한국 정부가 현재 취하는 스탠스와도 사실상 일치합니다.

위기를 맞아 머뭇하다간 실기(때를 놓침)하고 더 큰 재앙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이거냐 저거냐 고민할 시간에 행동을 더 많이 취하는 게 낫다는 이치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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